강태중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
문·이과 통합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이 올해 처음으로 시행된다. 그런데 문과 계열 대학 지원자들이 수학에서 불리하다는 등 벌써부터 이런저런 말들이 나오고 있다. 선택과목에 따른 표준점수제도 도입으로 수험생들이 자신의 표준점수와 등급컷을 예측하기가 작년보다 어렵고, 교육방송(EBS) 연계 비율이 기존 70%에서 50%로 낮아져 사교육이 더욱 성행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수능을 총괄하고 있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강태중 원장을 지난 22일 충북 진천 평가원장실에서 만났다. 강 원장은 올 2월 취임했고, 이번이 언론과의 첫 인터뷰다.
- 지난 3월 치러진 고3 전국 연합학력평가에서 수학 1등급을 받은 학생의 대부분은 ‘미적분’이나 ‘기하’를 선택한 이과생들이라고 한다.
“문과(수학 나형), 이과(가형)로 구분해서 수학 시험을 치렀던 때에 비해 올해는 이공계 지원 학생들이 상대적으로 높은 점수 분포대를 차지할 가능성이 있다. 문과 계열 지원자들은 예전 같으면 1등급 수준이지만 올해는 2등급으로 떨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경우 정시모집에는 큰 영향이 없겠지만 수시모집에서는 수능 최저학력기준을 충족시키는 데 문과 계열 지원 수험생들이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이것은 대학들이 수시모집에서 작년까지 하던 대로 수능 최저학력기준을 설정할 경우 그렇게 된다는 뜻이다. 이번 수능체제는 이미 3년 전에 발표됐고 구체적인 시행계획도 작년에 발표됐다. 문·이과 통합 수능의 결과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대학들이 수시모집의 최저학력기준을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이야기는 달라질 수 있다. 대학들이 5월에 전형요강을 최종 확정한다. 적절히 대응할 것으로 기대한다.”
- 수시모집 전형요강이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는 말인가.
“대학별로 전형 시행계획을 작년에 발표했지만 최저학력기준 등을 고칠 수 있는 절차는 있다. 평가원에서 이래라저래라 할 사안은 아니다.”
문과생들 걱정이 많은데…
수학 선택과목 따른 유불리 주장
자신의 소비자 대변하기 위한 광고
일부 학생·수시에 영향 가능성
대학의 수능최저기준 수정이 해법
- 사교육이나 입시 컨설팅 업체들은 ‘문과 불리’ 주장을 한다.
“‘유불리’라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 수학 실력이 대입에 일반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실을 두고, 누가 유리하고 누가 불리하다고 말하는 것은 적확하지 않다. 사교육 업체들이 어떤 관점에서 누구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는지 보아야 한다. 그들은 결국 자신의 소비자들을 대변하면서 자신들을 광고하고 있다. 상위권 수험생 일부에게나 해당할 수 있는 계산을 마치 전체 수험생에 해당하는 것처럼 부풀리고 있다. 그런 주장을 언론마저도 증폭해서 중계하고 있다. 이때 무시되고 있는 다른 많은 학생들에게 미칠 영향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공적인 대입제도에서는 이렇게 소외되는 수험생들까지도 고려해야 하고, 더 근본적으로는 제도 변화에 따른 일부 수험생의 유불리보다 우리 사회와 교육 전반의 발전을 우선 고려해야 한다.”
- 제도 변경으로 올해는 학생들의 혼란이 예년보다 클 것이라고 한다. 평가원이 가채점을 해서 영역별 등급컷 예상치를 발표할 수는 없는가.
“한 치의 오차나 오류도 용납하지 않는 우리 수능 현실에서 국민적인 절대 요구가 없는 한 평가원으로서는 그런 서비스를 할 수 없다. 가채점은 어디까지나 가채점이다. 표본으로 전체를 추정하는 것이다. 최종 결과와 다를 수밖에 없다. 가채점과 최종 채점 결과가 다를 때 야기될 민원과 혼선은 걷잡을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수능이 끝난 후부터 평가원은 정말 바쁘다. 발표한 정답에 대한 이의 제기를 받으며 문항의 오류 가능성을 검토해야 하고, 답안지를 점검하면서 채점을 하고, 공식 발표를 위한 각종 통계분석 작업도 해야 한다. 불과 4주 안에 이 모든 것을 끝내야 한다. 채점은 수험번호 기입 오류, 홀수·짝수형 표기 잘못 등을 모두 바로잡으면서 한다. 그야말로 숨 가쁘게 돌아가는 작업이다. 만에 하나 가채점 서비스를 해야 한다면, 채점 기간을 늘려야 하고, 결국 시험 날짜까지 당겨야 할 것이다.”
상대적으로 어렵고 학습 분량이 많은 선택과목에 점수를 더 주기 위한 제도이다. 공통 과목 점수를 활용해 선택과목의 표준점수를 조정한다. 올해 수능은 탐구영역뿐 아니라 국어와 수학도 수험생이 응시 과목을 고른다. 수학은 ‘수학Ⅰ·Ⅱ’가 공통이고, ‘확률과 통계(확통)’ ‘미적분’ ‘기하’ 중 하나를 선택한다. 보통 문과 계열 진학 학생들은 ‘확통’을, 이공계 지원자는 ‘미적분’이나 ‘기하’를 선택한다. ‘미적분’은 ‘확통’보다 공부해야 하는 양이 많고 문제의 난도도 높다. 따라서 점수 보정이 이뤄지지 않으면 ‘미적분’ 선택자는 불리하다. 지난 3월 고3 학력평가에 응시한 수험생들의 수학 성적을 보면 원점수 기준으로 만점이어도 표준점수로는 ‘확통’ 선택자 150점, ‘미적분’ 선택자 157점이었다.
평가원은 ‘컷 예상치’ 발표 못하나
국민들 절대 요구 없는 한 불가능
가채점 시장 막기는 어렵지만
사교육 업체가 제공하는 서비스
정확성 떨어지는 경우 많아 유의
- 수시모집 논술이나 면접에 응할지를 결정하려면 수험생으로서는 가채점으로 자신의 등급을 추정해야 한다. 결국 사교육에 의존하게 되고 비용이 발생한다.
“이해한다. 가채점 시장이 생겨나는 것을 막기는 어려울 것이다. 사교육 업체들이 하나의 서비스 상품을 만들어 유혹하고 있지만 그 서비스는 교육상 해롭고 정확하지도 않다. 수험생 입장에서는 대입에 도움을 받기 위해 조그만 정보라도 얻고 싶은 게 당연하다. 그렇지만 사교육 업체가 제공하는 가채점 서비스가 당장의 궁금증에 부응할 수는 있겠지만, 실제로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 수능 시험지를 수험생들에게 주는 것은 어떤가. 시험지를 주면 수험표 뒤에 가채점용 표기를 안 해도 되니 시간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다.
“문제지를 돌려주지 못하는 것은 수험생이나 감독관의 실수에서 비롯되는 채점 결과의 피해에서 수험생을 구제할 필요도 있고, 문제지가 시험 중에 유출되어 부정행위로 이어질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해야 할 필요도 있기 때문이다.”
- 1교시에 ‘한국사’를 치러 수험생들의 부담을 줄여주자는 아이디어가 있다.
“작년에 엄밀하게 검토했다. 그런데 ‘한국사’를 1교시에 치르면 점심시간이 40분 정도 미뤄져야 하고 시험 끝나는 시간도 늦춰져야 한다. 그렇다고 다른 영역의 시험 시간을 조정하거나 단축할 수도 없다. 이와 관련해서 설문조사까지 해보았는데, ‘오전 시간대에 국어나 수학같이 비중이 큰 시험을 쳐야 한다’는 요구도 많았다. 특히, 장애 학생은 시험 시간 연장으로 불편함이 더욱 커진다.”
EBS 연계 50%로 축소·킬러 문항
기울어진 운동장 조금 바로잡혀
비중 줄였지만 체감연계율은 유지
변별력 확보 위해 불가피한 측면
초고난도 문항 출제는 계속 지양
- EBS 수능 교재 연계율이 50%로 올해부터 낮아진다. 사교육이 확대될까 우려된다.
“EBS 연계 정책의 취지를 살릴 수 있도록 학생들의 체감 연계율은 최대한 유지할 수 있게 애쓰겠다. 교육적으로만 보면 EBS 연계는 바람직하지 않다. 영어를 영어로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EBS 교재 지문을 한국어로 번역한 뒤 그것을 암기하는 사례까지 생겨났다. 교육만 걱정한다면 연계율을 유지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수능은 교육 경쟁이 공정하고 정의롭도록 해야 한다. 가정 배경이 좋고, 가용 자원도 많고, 큰 도시에 살면 사교육 서비스 기회에 가깝고, 수능에 유리한 측면이 있다. 반면, 도서벽지 학생이나 형편이 어려운 가정의 학생들은 불리하다. 그렇게 대입 경쟁의 운동장이 기울어져 있는 것을 조금이라도 평평하게 만들기 위해서, 교육적인 문제를 감수하면서 EBS 연계 정책을 채택해야 했다. 기존 70%에서 이번에 50%로 연계율을 낮춘 것은 그동안 교육복지 투자 등을 통해 기울어진 운동장이 조금은 바로잡혔으니 이제라도 교육적인 부작용을 고려하자고 해서 그렇게 결정됐다고 본다.”
- 올해 수능의 전반적 난도는 어떻게 할 계획인가.
“예년의 난이도 기조를 유지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수능에 대한 국민들 관심은 지대하고 기대 또한 다양하다. 고등학교 교육을 정상적으로 유도하면서도 전국 수험생을 9등급으로 정확하게 나누길 기대한다. 타당도와 변별력을 모두 갖추어야 한다는 주문인데, 사실 이 두 과제를 동시에 해결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 ‘킬러 문항’ 때문에 사교육이 발생한다는 지적이 있다.
“‘킬러 문항’이라는 말은 적절하지 않다. 변별력을 갖추어야 하는 수능이 다양한 난도의 문항을 포함해야 하지만, 수험생에게 해를 끼치기 위한 문항을 출제하지는 않는다. 특히 작년부터는 이른바 초고난도 문항 출제도 지양하고 있다. 어려운 문항 때문에 사교육이 늘어난다는 말은 지엽적이다. 사교육의 연원은 수능 문항에 있는 것이 아니라 수능 자체에 걸려 있는 보상의 몫이 너무 크다는 데 있다. 대입 당락뿐만 아니라 취업, 결혼 등 남은 생애의 각종 기회가 수능 성적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이렇게 큰 몫이 걸려 있는데 누군들 최대한으로 투자하지 않고 배기겠는가. 사람은 꾸준히 성장하고 변화한다. 사회적·경제적 보상은 그때그때 적절하게 주어져야 한다. 스무 살도 되기 전에 수능에서 높은 점수를 얻었다고 해서 유효기간이 평생인 보상이 주어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수능이 그렇게 활용되는 점이 문제의 핵심이다. 이런 본질적인 문제는 잘 보이지 않지만, 고난도 문항에 대한 논란은 눈에 금방 띈다. 수능 문항을 문제 삼는 것은, 마치 열쇠를 깜깜한 곳에서 잃어버리고는 밝게 보인다는 이유로 가로등 아래로 가서 찾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학교 교육과정과 수능의 괴리
졸업 자격·동기 부여·입학 당락
수능에 부여된 역할 분산해야
경쟁 관리 장치가 된 학교에선
학생과 교사가 서로 경계하고 감시
- 학교 교육과정과 수능이 괴리되고 있다고 한다.
“수능은 고교 교육을 총괄 정리하는 시험인 동시에 대입에서 당락을 결정하는 데 쓰여야 하는 시험이다. 수능이 학교 교육을 훼손하지 않을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러나 수능은 특정 시점에 한시적인 시간 조건 아래에서 치러진다. 수능에서 모든 교과가 대등하게 존중되기는 어렵다. 국어·수학·영어 비중은 크게 되어 있고, 실기 평가 등은 포함시킬 수도 없다. 수능에 요구되는 역할을 분산시켜야 한다. 고교 졸업 자격의 평가, 학습 동기를 북돋기 위한 평가, 대입 당락을 결정하는 평가 등이 모두 수능 하나에서 이루어지길 요구하고 있다. 충족될 수 없는 요구이다. 이런 요구들을 먼저 해소해야 한다.”
- 이른바 ‘조국 사태’로 입시 불공정이 부각되면서 정시모집의 수능 중심 전형이 공정한 것처럼 비치고 있다.
“대입제도에서 이해 충돌은 복잡하고 또 피할 수 없다. 과반수의 지지를 얻었더라도, 그런 제도가 교육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을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입시제도는 초미의 관심사이다. 정치는 민의를 수렴하는 것이고, 정치인들이 입시 개선에 의욕을 갖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그런 의욕이 교육에 바람직할지 따져보면 걱정스러운 점이 적지 않다. 하나의 정책이 뿌리를 내려서 교육이 바뀌려면 적어도 10년은 걸릴 것이다. 그러나 대선 주기는 5년, 국회의원과 교육감 선거 주기는 4년이다. 선출된 사람들의 공약은 임기가 끝날 때까지 법제화되지 못할 수도 있고, 법제화된대도 교육 현장에서 여러 이해관계에 흔들릴 수도 있다. 이렇게 흔들리는 동안 후임으로 선출된 사람은 개혁이 지지부진하다고 새로운 개혁을 추진할 가능성이 크다. 교육 문제는 결국 해결되지 못하고, 개혁만 지속될 위험이 있다.”
- 학교와 교사에 대한 신뢰 하락이 입시에서도 문제인 것 같다.
“학교 교육에 전제된 경쟁이 불신의 근원이다. 학교의 본래 사명은 사회적이다. 학생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또 문화적으로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게 준비시키는 것이 학교의 사명이다. 그러나 우리 학교는 공적 역할보다는 사적인 요구 해결에 몰두해야 하는 형편에 몰리고 있다. 학교는 지위 경쟁의 장이 되고 있고, 교사에게는 학생을 평가하면서 동시에 경쟁을 무난하게 관리해야 할 책임이 부과되고 있다. 스포츠 경기에 비유하면 교사는 심판이고 학생은 선수가 돼버린 셈이다. 게임에서는 심판이 선수를 도우면 비리고 부패다. 이런 상황에서는 학생과 교사가 서로를 경계하고 감시하게 된다. 학생이나 가정에서는 심판이 돼버린 교사들의 판정, 즉 평가를 불신하고 항의하게 되기 마련이다. 교사와 학생 관계는 멘토·멘티나 코치·선수의 관계로 변해야 하지만 그렇게 되기 어려운 구조다. 지금까지 교육 정책은 교육을 불신의 늪에서 건지는 것이라고 표방해 왔다. 그러나 학교를 경쟁 관리 장치로 전제함으로써 학교 교육을 불신의 늪으로 계속 밀어 넣은 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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