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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가족' 테두리 지우는 첫걸음 이제 시작” - 한겨레

‘건강가정기본계획’ 당사자들 생각은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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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출생신고를 위해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는 비혼부, 엄마 성을 물려줄 때만 챙겨야 하는 각종 서류를 없애기 위해 헌법재판소 앞에 선 부부, ‘법적 부부’가 아니라는 이유로 다른 커플보다 몇 배로 파트너의 건강을 바라야 하는 비혼 커플…. 이들은 ‘결혼 뒤 아이를 낳고 키우는 부부’라는 ‘정상가족’에서 빗겨 선 만큼 항상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고, 법적 권리에서 소외됐다. 27일 정부는 ‘정상가족’이라는 테두리를 지움으로써 늦어도 2025년부터는 이들처럼 그동안 가족으로 인정받지 못한 다양한 집단을 포용하겠다는 내용의 ‘제4차 건강가정기본계획’을 발표했다. 28일 ‘비정상 가족’으로 불려온 이들은 정부의 발표에 “다양한 가족형태를 현실로 인정한 데 의미가 있다”고 기대감을 보이면서도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입을 모았다.
 ‘비혼부 아이’ 출생신고 ‘1보 전진’
비혼부 김아무개(29)씨는 지난 2월16일 태어난 아이의 출생 신고를 하는데 두 달 넘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현행 제도에서 비혼부 혼자 아이의 출생신고를 하는데 여러 절차를 밟아야 하기 때문이다. 가족관계등록법 제46조 2항 신고의무자 조항을 보면, 혼인 외 출생자의 신고는 ‘모’가 해야 한다고 돼 있다. 지난 2015년 이를 보완하기 위해 ‘사랑이법’이 생겼다. ‘모’의 이름·주소·주민등록번호 등을 알 수 없는 경우, ‘부’가 가정법원의 확인을 받아 출생신고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하지만 ‘사랑이법’은 엄마의 정보를 알지 못하는 경우만 허용하기 때문에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김씨처럼 아이 엄마의 정보를 알지만 갈등 끝에 교류가 없는 경우엔 법 적용을 받을 수 없다. 주민센터·구청·사회복지센터·법률상담소 등을 돌아다니고 있는 그는 “출생신고가 이렇게 힘든 일인 줄 몰랐다”고 토로했다. 정부는 건강가정기본계획을 통해 김씨처럼 아이 친모의 정부를 알고 있어도 아이 출생신고를 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줄 방침이다. 김씨는 “뉴스를 보고 제가 겪는 고통을 다른 비혼부는 덜 겪을 수 있을 것 같아 기뻤다”고 했다. 그러나 아이의 출생신고를 위해 가정법원 재판을 거쳐야 하는 것은 변함없다. 비혼부를 지원하는 단체 ‘세상에서 제일 좋은 아빠의 품’ 김지환 대표는 “아버지의 권리를 넘어 아이의 권리까지 보장돼야 한다”며 “부모의 사연 때문에 아이가 재판받는 것 자체가 아이의 기본권 침해”라며 비혼부라도 쉽게 출생신고를 할 수 있는 길이 열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자녀 성 부모 협의, “정상가족 벗어나는 첫걸음”
“부성 우선주의에서 벗어나 누구의 성을 물려줄지 동등한 선택권을 주고, 어머니 성을 따르는 것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게 ‘정상가족’에서 벗어나는 첫걸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달 2일 헌법재판소에 아이가 아버지의 성을 우선 따르도록 한 민법 조항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한 시민단체 활동가 이설아(27)·직장인 장동현(30)씨 부부가 자녀 성을 출생신고 시 부모 협의로 결정하게 하겠다는 건강가정기본계획에 기대감을 보였다. 이들은 이날 <한겨레>와 만나 “이미 기존의 가부장적 시각의 ‘정상가족’을 벗어난 다양한 가족들이 살아가고 있는데, 뒤늦게나마 이들을 제도 안으로 포함하려는 논의가 시작된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말했다.
지난 3월 헌법재판소에 아이가 아버지의 성을 우선 따르도록 한 민법 제781조 제1항에 헌법소원을 제기한 활동가 이설아(27)·직장인 장동현(30)씨 부부가 28일 서울 영등포구 한 카페에서 &lt;한겨레&gt;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윤주 기자
지난 3월 헌법재판소에 아이가 아버지의 성을 우선 따르도록 한 민법 제781조 제1항에 헌법소원을 제기한 활동가 이설아(27)·직장인 장동현(30)씨 부부가 28일 서울 영등포구 한 카페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윤주 기자
이 부부는 자녀에게 이씨의 성을 물려주기로 합의하고 지난해 12월 혼인신고를 위해 동사무소를 찾았다가 문제를 느끼기 시작했다. “어머니 성을 물려주려면 혼인신고 양식에 따로 체크해야 하는 것은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협의서까지 제출해야 한다고 해 당황스러웠습니다. 아버지 성을 물려주는 것은 기본값이기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데, 협의서를 쓰면서 부당하다고 느꼈죠.”(이설아씨) 부부는 자녀 성을 결정하는데 출생 때가 아닌, 혼인신고 때 정하고 이후 법원을 거치지 않는 이상 바꿀 수 없다는 것도 문제로 느꼈다. 이들은 아버지의 성을 우선 따르도록 한 민법의 ‘부성 우선주의’ 원칙이 헌법상 혼인·가족생활 기본권과 인격권, 자기결정권 등을 침해했다는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결혼 자금으로 모은 돈을 변호사 수임료에 썼다. 이들은 구시대적 ‘정상가족’을 해체하기 위해 지금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상가족이라는 틀을 조금만 벗어나면 바로 비정상이라는 낙인을 찍는 건 누구에게나 억압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동성혼 법제화, 차별금지법 제정 등으로 보다 다양한 가족을 포용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장동현씨)
 ‘법적 가족’이라는 안정감
그동안 ‘법적 가족’이 아니어서 각종 제도의 혜택을 받지 못한 이들은 변화를 크게 반겼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서울가정위탁지원센터를 통해 17년간 두 아이를 위탁해 온 60대 조아무개씨는 “10년 넘게 두 아이를 키우면서 ‘엄마’가 됐고 위탁가정도 입양가족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런데도 미성년자인 아이들의 휴대폰을 개통해주거나 적금을 넣어주려고 해도 가족관계 증명 문제로 힘든 점이 많았다. 법정대리인이 되기까지도 법원에서 1년이 걸렸는데 법이 바뀌면 이런 문제가 해결될 것 같다”고 말했다. 동거 커플인 백승철(31)씨는 “혼인신고 없어도 부부라고 생각하며 5년째 함께 살고 있는데, 둘 중 하나 사고라도 나면 1순위로 연락을 못 받을 수도 있다는 근본적인 불안함이 있었다”며 “각종 제도에 편입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비혼이나 동거 커플이 ‘가족’으로 묶여 조금 더 책임감을 느끼고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변화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날 한국한부모연합은 정부 발표에 대해 “현재 한국 사회에 등장하는 다양한 가족 형태를 현실로 인정하고, 이를 정책에 반영한다는 결정은 새로운 가족 담론의 시작으로 보아 환영한다”고 밝혔다. 다만 한부모연합은 △지원 정책 대상 중 ‘한부모, 다문화, 청소년 미혼모·부’ 등을 ‘돌봄 취약계층’으로 지정해 여전히 특정 가족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강화하는 점 △모든 아동의 출생 등록을 보장하는 ‘보편적 출생등록제’ 도입을 유예한 점 △아동학대 사건과 가정폭력방지 대책 소관 부처를 분리한 것은 복합적인 가정 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행정 편의적 접근이라고 지적했다. 이주빈 김윤주 장예지 기자 ye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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