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노동절…‘ㅅㅇ ㄴㄷㅅㄱ’을 아시나요
밤낮 없는 대기·조기 출근·뒷정리…
법으로 인정된 휴게시간조차 근무
일하고도 보상 못받는 ‘숨은 노동시간’
관행 들어 강제…편법·압박 일삼기도
요양원에서 일하는 요양보호사가 휴게시간에 대기하는 모습(왼쪽과 오른쪽 위 사진)과 휴게실(오른쪽 아래 사진) 모습.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국요양서비스 노조 제공
서울 강서구의 한 요양원. 밤 9시나 새벽 1시가 되면, 요양보호사 김현숙(가명·57)씨는 방바닥에 이불을 깔고 몸을 누인다. 침대 위에는 입소자 노인들이 누워있다. 코 고는 소리, 앓는 소리, 중얼대는 소리들 틈에서 혹시 긴급한 상황이 생기진 않는지, 김씨는 누워서도 귀를 기울이고 있어야 한다. 김씨는 일주일에 두번 정도 오후 6시부터 다음날 오전 9시까지 야간근무를 하는데, 이때 2인1조로 돌봐야 하는 입소 노인은 모두 26명이다. 요양원은 김씨와 동료에게 밤 9시부터 새벽 1시, 새벽 1시부터 새벽 5시까지로 시간을 나눠 ‘가수면 시간’을 준다. 이름처럼 가수면 시간이어선지 김씨는 잠을 잘 수 없다. 쉴 수도 없다. 최근에도 한 할아버지가 김씨의 가수면 시간에 “나 집에 가고 싶어”라고 하소연하며 문을 두드리고 나서는 바람에 동료와 함께 할아버지를 붙잡고 10분이 넘도록 실랑이를 했다. “밤에 주무시지 않는 어르신들이 많은데 그만하시라고 해도 물건을 집어 던지거나 하는 경우도 있어요. 가수면은 꿈도 못 꾸는데, 이런 날이 허다해요.” 이렇듯 김씨의 실제 노동시간은 사실상 하루 15시간이다. 하지만 요양원은 가수면 시간 4시간을 뺀 11시간에만 임금을 지급한다. 가수면 시간은 휴게시간으로 보는 것이다. 요양원은 “쉬라고 휴게실까지 마련해줬다”고 했다. 하지만 김씨가 휴게실을 이용하기는 쉽지 않다. 급한 상황이 생기면 동료를 도와야 하기 때문에 지하에 있는 휴게실에 가 있을 수 없다. 휴게실은 세탁실을 겸하고 있어 습기도 가득하다. 근로기준법은 휴게시간을 노동자가 회사에 얽매이지 않는 시간으로 규정하고 있다. 대법원은 지난 1월 요양원이 요양보호사들에게 야간근무 중 휴게시간을 지정한 일에 대해 “불규칙적이라도 요양보호사들을 필요로하는 이들이 존재했기에 휴게시간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취지의 판결을 확정했다. 하지만 현장은 법과 유리되어 있다. 김씨의 가수면 시간처럼 실제로는 일을 하지만 임금 보상 체계에는 배제된 ‘공짜’ 노동시간이 ‘숨은 노동’이라는 이름으로 횡행하고 있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국요양서비스노조가 지난해 6월 요양원에서 일하는 요양보호사 622명을 조사한 결과, 정해진 휴게시간에 제대로 쉬지 못했다는 응답은 68.1%에 이르렀다. 충남의 한 요양원에서 일하는 요양보호사 이현승(가명·58)씨는 “야간근무 중 휴게시간에 집에 급한 일이 있어서 다녀오려고 했더니 사업주가 ‘왜 미리 말하지 않았느냐’며 거부했다”고 말했다. 김경미 전국보건의료노조 전략조직국장은 “요양보호사와 간호사 등 입소자와 환자를 돌보는 노동자들은 주어진 휴게시간을 희생하지 않으면 돌봄 공백이 생기는 경우가 많아 휴게시간을 제대로 쓰지 못한다”고 말했다.
숨은 노동은 요양보호사들에게만 있는 게 아니다. 기업 임원의 운전기사로 일하는 박현욱(가명·52)씨는 평소 새벽 5시40분께 집을 나선다. 6시30분까지는 임원의 집 앞에 가서 대기해야 한다. 임원을 태우고 출근하면 오전 8시30분 정도가 된다. 박씨는 평소 차량이나 회사 내 사무실에서 대기하다가 일정이 생기면 차를 운행한다. 오후 6시 이후에도 임원이 야근하거나 저녁 약속이 있으면 운전을 한다. 임원의 물품을 챙기거나 업무상 작은 지시를 따르는 등 수행 비서 역할을 겸할 때도 있다. 회사에서도 박씨에게 박씨가 맡은 차뿐만 아니라 회사 법인 차에 대한 정비와 관리 업무를 맡긴다. “코로나19로 인해 많이 줄었지만, 여전히 밤까지 저녁 자리가 이어지면 무작정 기다릴 수밖에 없죠. 코로나19 이전에는 술자리가 새벽에 끝나 임원을 집에 내려주고 퇴근하면 거의 아침 무렵이었던 적도 있어요.” 박씨의 근로계약서에는 대기시간과 야간근무 시간, 수행 비서 업무와 법인 차 정비·관리 업무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회사는 박씨의 노동시간을 ‘주 40시간’으로 명시해두고, 이에 대한 임금만 지급한다. 임원 차 운행시간을 빼면 모두 ‘휴게시간’으로 간주해 “1주 차량 운행시간이 40시간보다 적으니 추가수당은 없다”고 회사는 설명했다. 박씨의 사례처럼 장시간 업무 대기 또는 감시를 하다 호출을 받고 업무에 나서는 직군은 고용노동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 ‘감시·단속적 근로자’(감단직)로 등록할 수 있다. 아파트 등 경비원, 전기와 보일러 기사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회사는 휴게시설 마련 등으로 업무에 대한 감단직 승인을 받아야만 합법적으로 근로기준법상 휴게 규정에서 벗어나 노동자에게 장시간 대기 등을 시킬 수 있다. 승인이 없으면 장시간 대기시간도 회사의 지휘·감독을 받은 경우 노동시간으로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현장에선 편법이 만연하고 있다. 돌꽃 노동법률사무소 김유경 노무사는 “현실에서는 휴게시설 마련 등 감단직 승인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 회사에서 임금을 적게 주기 위해 실제로 일하는 시간임에도 휴게시간으로 책정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이른 출근이나 늦은 퇴근 또한 적절한 보상이 없는 숨은 노동의 영역이다. 고용노동부 행정 해석을 보면, 사용자가 명백하게 이른 출근·늦은 퇴근 지시를 내렸고, 노동자가 이를 따르지 않았을 때 불이익이 있다면 이는 노동시간으로 인정된다. 그러나 역시 현장의 관행은 이런 행정 해석의 상상을 넘어선다. 한 외주 방송제작사 드라마 분장팀에서 일하는 50대 강현수(가명)씨는 늘 다른 이들에 견줘 2시간은 먼저 현장에 도착해 있어야 한다. “현장 촬영 집합이 오전 8시면 분장 스태프들은 ‘선출’(조기 출근)을 해요. 현장에서 미리 보조출연 연기자 옷도 입히고 분장과 미용도 모두 끝내야 하죠. 어떤 날은 보조출연자 200명을 분장해야 해서 4시간 일찍 나온 적도 있어요.” 선출 시간에 대한 보상은 없다. 외주제작사가 작성한 강씨의 계약서에는 ‘촬영 시작부터 촬영 종료 때까지’만 노동시간으로 기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숨은 노동을 법적으로 인정받기 위한 일도 쉽지 않다. 사쪽의 ‘지시’나 그에 따른 불이익을 인정할 정황이 있어야 하고, 이를 증명할 구체적인 증거도 필요하다. 명품 브랜드 샤넬의 한국지사인 샤넬코리아도 2015년 매장 직원들에게 회사가 정한 오전 9시보다 30분 이른 출근을 지시하면서 ‘매장 관리 매뉴얼’에 이렇게 적었다. ‘20~30분 더 일찍 출근하는 것이 아까운가요!!? 손해 보는 것처럼 느껴지나요!!?’ 회사의 ‘무언의 압박’에 직원들은 조기 출근 조처를 따랐지만 이 역시 노동시간으로 인정되지 않았다. 일부 직원이 오전 9시 전에 출근했음을 상사에게 카카오톡으로 보고하기도 했지만, 대법원은 회사가 지시를 했다기보다는 ‘경각심을 일깨운’ 정도라고 봤고, 불이익을 줬다는 정황도 없다는 이유로 2019년 판결에서 조기 출근 시간을 노동시간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회사는 같은해 노사협상을 통해서야 조기 출근을 없앴다. 매장을 뒷정리하는 일도 숨은 노동에 해당한다. 카페 아르바이트 일을 하는 조아름(가명·26)씨의 공식 퇴근 시간은 밤 10시지만, 실제 퇴근은 밤 10시20분에야 이뤄진다. 밤 10시에 문을 닫고도 가게 정리를 하다 보면 꼭 20여분가량 퇴근이 지체된다. 조씨는 사장에게 불편한 말을 하기가 어려워 숨은 노동에 대한 임금을 요구하지 않았다고 했다. 신정웅 알바노조 위원장은 “24시간 프랜차이즈 기업의 경우 근무자들끼리 인수인계하는 시간도 있고, 아침시간대 손님이 몰려서 응대하다가 30~40분씩 늦게 퇴근하기도 하는데 이런 시간이 전혀 근무기록에 반영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경우에도 역시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시간을 따로 기록하는 등 직접 증거를 모으고 노동청에 진정을 넣어야만 구제받을 수 있다. 맥도날드 아르바이트로 일하는 노동자 이희권(가명·24)씨는 매일 업무일지를 쓴 덕에 상사가 자신에게 연장근로 수당을 주지 않으려고 이씨의 업무시간을 수시로 조정한 사실을 알게 됐다. 이씨가 문제를 제기하자 맥도날드 지점은 근무 스케줄을 짜면서 1주일에 4~5일이었던 이씨의 근무를 하루로 줄여버렸다. 이씨가 지방노동청에 진정을 넣은 뒤로는 아예 스케줄 표에서 이씨를 빼버렸다. 사실상 ‘해고’를 종용당한 셈이다.
출장지로 이동하는 시간은 어떨까. 드라마 제작 현장에서 조명 담당으로 10년 이상 일하고 있는 50대 이수현(가명)씨는 서울과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 촬영이 있는 전날에는 휴일이 없어진다. 서울 상암동이나 여의도에서 스태프를 태우고 출발하는 버스는 주로 촬영 전날 오후에 출발한다. 제작비를 줄이기 위해 촬영 당일 아침 일찍부터 일하도록 자리 잡은 ‘선출발’ 관행이다. 이씨는 현장에 도착한 뒤 제작사가 제공한 숙소에서 자고, 촬영 당일 아침 7시부터 밤늦게까지 촬영 일정을 소화한다. 촬영 일정이 끝나면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 출발해 그 다음날 새벽에야 서울에 도착한다. 하지만 역시 그의 계약서에는 출장지까지 오가는 시간이 삭제되어 있다. “전라도나 경상도 촬영이 많고, 경기도라고 해도 교통이 불편한 곳에서 촬영이 많아요. 3시간에서 6시간까지 걸리죠. 어떨 땐 출장 가던 길에 연기자가 스케줄이 안 된다고 해서 도로 차를 돌려서 온 적도 있어요. 보상은 없죠.” 노동부의 행정해석을 보면, 일상적인 출퇴근 시간은 노동시간으로 분류되지 않지만 타 지역 출장 등으로 인한 이동시간은 회사의 지휘·명령이 있었다면 노동시간으로 인정된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노동위원인 정병욱 변호사는 “출장으로 인해 원래 가지 않아도 되는 곳에 이동해야 하는 거라면 결과적으로 지휘·감독 관계에 의한 이동으로 당연히 노동시간에 포함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가전제품 수리공인 안형준(가명·58)씨 역시 이런 행정해석 범위 밖에서 일한다. 하청업체 정규직인데도 사실상 월급이 아닌 ‘건당 수수료’를 받는다는 안씨는 주행거리가 30㎞ 이상인 장거리에만 수수료를 일부 올려 받고, 그 이하 거리의 이동 시간은 보상 받지 못한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근무하는데요. 대전으로 치면 딱 오후 6시 무렵에 공주나 옥천 이런 시외 지역으로 출장이 잡히는 경우가 있어요. 그럴 땐 수리가 끝나면 오후 8시, 집으로 오면 오후 9시에요. 그래도 낮시간대 업무랑 동일한 수수료를 받아요.” 박준용 신다은 기자
juney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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