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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돌봄노동자에게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 한겨레

[토요판] 조한진희의 잘 아플 권리
⑤ 돌봄의 예의

활동지원 등 돌봄받는 과정에서
노동 강도·시간 분배하며 ‘배려’
예의는 노동자만의 몫 아니야

며느리·아내·엄마가 전담했던 일
가족 밖으로 나오며 ‘학대’ 여전
돌봄노동자 인권보장도 고민해야

돌봄을 받는 사람도 돌봄노동자의 노동 시간과 강도를 세심하게 분배하는 방법으로 그를 돌본다. 돌봄은 그 과정에서 서로 주고받는 상호작용이어야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돌봄을 받는 사람도 돌봄노동자의 노동 시간과 강도를 세심하게 분배하는 방법으로 그를 돌본다. 돌봄은 그 과정에서 서로 주고받는 상호작용이어야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돌봄 받을 때도 노력이 필요해!” 돌봄노동이 고도의 감정노동이고 여러 기술이 필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그런데 돌봄을 받을 때도 노력이 필요하다고? 내가 처음 저 말을 들은 것은 오래전 사무실에서 함께 일하던 중증장애가 있는 동료 주영에게서였다. 당시는 2006년이었고, 지금처럼 장애인활동지원이 제도화되기 이전이었다. 제도가 없으니, 주영은 집에서 생활할 때는 교회나 지역사회 자원봉사자의 지원을 받았다. 그가 자신의 몸에서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은 한쪽 손 정도였고, 자원봉사자들이 돌아가며 집으로 왔다. 주영은 그들의 공평한 노동을 위해 자주 고심했다. 그의 목욕 보조는 빨래나 청소에 비해 고된 노동이고, 장보기나 외출 동행은 상대적으로 쉬운 노동이었다. 특정인에게 고된 노동이 몰리지 않도록 다이어리에 꼼꼼히 기록했다. 사무실에서는 주로 동료들이 활동지원을 했는데, 상대가 덜 힘들 방법을 늘 궁리했다. 화장실 갈 때는 그의 몸을 반쯤 들어서 옮기는 과정이 필요했는데, 사무실의 유일한 여성 동료인 나와 주영은 체격 차이가 제법 났다. 여러 시도 끝에 주영이 찾아낸 방식은 ‘호흡 맞추기’였다. 주영이 하나둘셋을 외치면, 둘이 동시에 숨을 들이마시며 각자의 몸을 힘껏 움직였다. 물론 주영이 실제로 자신의 몸을 움직일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가 몸을 올린다는 느낌으로 강하게 호흡을 하면, 신기하게도 정말 힘이 덜 들었다. 그는 상대가 조금이라도 덜 힘들 방법을 열심히 찾아내고 함께 호흡을 맞추는 것으로, 힘껏 나를 ‘돌봤다’. 누군가는 주영의 태도에 대해, ‘권리’로 주어진 장애인활동지원사가 아니라 자원봉사자나 동료의 ‘선의’에 의존했던 시절이라, ‘눈치’를 본 것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닐 수 있지만, 제도로써 활동지원사가 있는 지금도 여러 중증장애인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활동지원사 노동자들을 ‘돌본다’.
세심한 배려의 ‘역방향 돌봄’
또 다른 지인 영미는 질병의 급격한 진행으로 몇해 전 장애인등록을 했는데, 장애인활동지원사 노동자 3명이 번갈아가며 집을 방문한다. 그는 3명의 노동 강도는 물론 노동 시간도 매우 신경써서 분배한다. 노동 시간은 임금과 직결되기 때문에 적절히 조율하지 않으면 활동지원사들의 불만이 쌓이기 쉽다. 그의 노력은 활동지원사 간의 분쟁을 최소화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고, 그들의 노동자라는 위치를 존중하는 태도이기도 하다. 그는 돌봄에서 민감한 영역인 용변 처리에 대해서도 자주 말한다. 통상 용변 처리에서 강조되는 것은 당사자가 불편함이나 수치심을 느끼지 않도록 돌봄노동자가 사려 깊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영미는 돌봄노동자가 분변 냄새 등에 불쾌감을 느끼지 않을지 고려하고, 환기와 탈취제 사용으로 쾌적한 노동 환경을 만드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게 바로 이용자가 돌봄노동자에게 갖춰야 할 적절한 태도라고 늘 주장한다. 이처럼 장애인, 아픈 몸, 그 보호자들 중 적지 않은 이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돌봄노동자를 ‘돌본다’. 게다가 그들이 돌봄노동자를 돌보는 내용(노동 강도나 시간 조절 등)은 작은 행위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돌봄노동자의 노동 환경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나는 일련의 이런 행위를 ‘역방향 돌봄’이라고 부른다. ‘역방향 돌봄’은 장애인, 아픈 몸과 돌봄노동자 사이에는 ‘일방적 의존’과 ‘일방적 돌봄’만 존재한다는 이분법적 사고에 균열을 만든다. 물론 돌봄이 필요한 이들의 특성(취약성)과 조건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누구나 이런 식으로 돌봄노동자를 대할 수 있는 게 아니고, 대해야 한다고 말할 수도 없다. 다만 이런 ‘역방향 돌봄’을 통해, ‘돌봄의 상호의존성’이나 ‘우리 모두는 서로에게 의존하는 존재’라는 말의 의미를 다시 사유하게 된다. 이와 함께 최근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돌봄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과도 연결해서 고민하게 된다. 장애인, 아픈 몸, 노인 등에 대한 차별과 폭력에 대해 오랫동안 문제 제기가 이뤄졌고, 그에 따라 신고와 감시제도 등이 강화되고 관련 법률이 제정돼왔다. 반면 돌봄노동자에 대한 차별이나 폭력은 아직 사회적으로 제대로 논의되지 못하고 있다. 돌봄노동자들을 만나보면, 주로 성폭력 그리고 ‘잡일’과 ‘하대’에 시달린다고 토로한다. 노동 특성상 신체적 접촉이 많은데, 그 과정에서 상상 초월의 성폭력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또한 제사 음식, 김장, 가족들의 잔심부름 같은 것을 우기듯 시키고 ‘부엌데기’처럼 대하는 무례함도 상당하다. 지난해 서울시의회가 주최한 요양보호사 실태에 관한 토론회 자료를 보면, 요양보호사 퇴직 이유의 50%가 부당 업무, 낮은 처우, 성희롱으로 나타났다. 그 50%라는 숫자 안에는 맹렬한 ‘직장 갑질’로 인한 분노·한숨·트라우마가 촘촘히 박혀 있을 것이다. 돌봄노동자는 시민의 생명과 안전, 사회 유지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노동자임에도, 돌봄노동자들은 스스로를 필요할 때 요긴하게 쓰이고 버려지는 일회용 물티슈라고 부른다.
돌보는 이를 왜 함부로 대하는가
돌봄노동자에게 이토록 함부로 대하는 태도가 왜 이리 만연한 것일까. 한국에서 2000년대 이후 ‘돌봄의 사회화’라는 말로 돌봄노동이 상당 부분 시장화되면서, 일정 정도 돌봄이 가족 밖으로 나왔다. 하지만 이에 상응하는 윤리는 제대로 형성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돌봄노동자와 이용자 사이에는 상호 간 적절한 태도와 윤리가 작동해야 한다. 그런데 오랫동안 요양원이나 장애인시설 등에서 심각한 인권침해가 발생하면서, 요양보호사나 장애인활동지원사 양성 과정에서부터, 이용자의 자기결정권 존중이나 차별과 편견 없는 태도 같은 것을 교육하고 강조했다. 반면 이용자가 돌봄노동자에게 지켜야 할 태도나 윤리에 대해서는 공론장에서 제대로 논의되지 못한 듯하다. 돌봄은 관계성을 중시하는데 일방향의 관계성만 강조된 것이다. 돌봄노동자의 열악한 현실이 존재하게 된 데는 수많은 맥락이 있다. 그중 하나는 돌봄이 오랫동안 가부장적 가족 안에 갇혀 있었다는 점이다. 며느리·아내·엄마라는 역할 안에 무수한 돌봄노동이 포함돼 있었고, 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윤리가 있었을지언정, ‘돌보는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관한 태도나 윤리는 당연히 별도로 존재하지 않았다. 사실 그런 게 있었다 한들, 가족은 헌신이 강조되고 성역할과 위계가 강고한 지대다. 노환의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갖춰야 할 태도, 아픈 남편이 자신을 돌봐주는 아내에게 갖춰야 할 윤리, 아픈 자식이 엄마에게 갖춰야 할 예의가 무엇이었겠는가. 효부, 헌신적 아내, 모성 가득한 엄마라는 말로 많은 것을 감내하게 만들면서, 일정 정도 그들을 ‘함부로’ 대했던 태도가 현재 돌봄노동자들에게 ‘승계’됐을 것이다. 우리는 연로한 부모 혹은 아프거나 장애가 있는 몸들을 돌봄노동자가 잘 돌봐주기를 바라고, 학대나 괴롭힘이 없는지 살핀다. 그러나 돌봄 받는 이들이 돌봄노동자를 어떤 태도로 대하고 있는지 적극적으로 살펴보고 있었나? 돌봄노동자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우리 사회는 알고 있을까? 사회적으로 돌봄노동자를 어떻게 돌보고 인권을 보장할 것인가에 대한 담론과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요양서비스노조, 활동지원사노조 등이 좀 더 힘을 갖길 바라고, 몇년 전부터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어르신돌봄종사자지원센터가 좀 더 적극적으로 권리 옹호 활동을 하길 바란다. 더불어 요즘 나는 멀지 않은 미래에 대해 생각한다. 내가 적극적 돌봄에 의존해야 할 때, 돌봄노동자와 어떻게 관계 맺을 것인가. 돌봄노동자의 적절한 소양을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돌봄노동자에게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도 질문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역방향 돌봄’을 자주 떠올린다. 돌봄의 유속량은 다르지만, 일방향이 아닌 양방향으로 서로에게 흐르게 될 때, 관계의 형태나 책임성도 달라질 수 있다. 나는 돌봄 받는 자로서 어떤 노력을 하고 태도를 가져야 할까?
▶ 여성, 평화, 장애 관련 운동을 넘나들며 활동하는 탈식민페미니스트. 국제 현장 연대 활동에서 건강이 손상된 뒤 투병 경험을 정치사회적으로 접근한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를 썼다. 공저로 <라피끄: 팔레스타인과 나> <비거닝> <포스트 코로나 사회>가 있다. 신생 단체 다른몸들에서 활동 중이다. 아픈 몸을 둘러싼 사회·경제·정치적 문제를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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