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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썰] 경항모, 21세기 거북선인가 돈먹는 하마인가 - 한겨레

[논썰] 경항모, 21세기 거북선인가 돈먹는 하마인가 한겨레TV
“미래 세대를 위한 ‘21세기 거북선’을 지금부터 건조해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전력을 다해야 합니다.”(부석종 해군참모총장 올해 신년사) 이 신년사처럼 해군은 요즘 경항모를 홍보할 때 ‘21세기 거북선’이라고 부쩍 강조하고 있습니다. 해군은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 거북선을 만든 선견지명 덕분에 조선이 국난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처럼, 경항모가 21세기 다양한 안보 위협에 대비하는 거북선 구실을 할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과연 경항모는 21세기 거북선일까요? 여러분 생각은 어떻습니까? 저는 따져볼 대목이 좀 있다고 생각합니다. 조금 있다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경항모, 경항모 하는데 경항모가 뭘까 먼저 경항모, 경항모 하는데 경항모가 뭘까요? 자동차를 생각하면 쉽습니다. 자동차가 배기량에 따라 대형차, 중형차, 소형차, 경차로 나누죠. 항공모함은 배수량에 따라 대형, 중형, 경항모로 구분합니다. 배가 물에 떠 있을 때는 부력이 작용하고, 배가 밀어낸 물의 무게는 부력과 같으므로 배수량은 곧 배의 무게와 같습니다. 배수량 9만톤이 넘으면 대형항공모함, 4~6만톤급은 중형항공모함, 2~3만톤은 경항모라고 하죠.
항공모함은 배수량에 따라 대형, 중형, 경항모로 구분한다. 배수량 9만톤이 넘으면 대형항공모함, 4~6만톤급은 중형항공모함, 2~3만톤은 경항모이다. 한겨레TV
토니 스콧 감독의 영화 <탑건>에 나왔던 배는 대형항모이다. 한겨레TV
탐 크루즈가 나왔던 <탑건> 같은 영화나 뉴스 화면에서 많이 보는 미국 항공모함들이 대형항모입니다. 배수량이 10만t에 육박하죠. 전투기 등 각종 항공기를 80대가량 싣고요, 대형항모가 전투력은 막강한데, 너무 비쌉니다. 미국 기준으로 대형항모 1대 만드는데 62억달러, 우리 돈으로 7조원이 넘게 듭니다. 다시 자동차 이야기를 하면, 대형차가 성능이 좋지만, 주머니 사정상 중형차, 소형차를 사는 거죠. 대형항모를 갖고 싶지만 형편이 안되는 나라들이 경항모를 선택합니다. 경함모는 전투기를 20대가량 실을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가성비 항모입니다. 그럼 항공모함이 왜 필요할까요? 항모는 영문 명칭이 aircraft carrier인데요. 캐리어 하면 여행가방 생각나시죠. 항모는 배가 중요한 게 아니라 전투기를 실어나르는 게 기본 목적입니다. 항모는 바다 위의 움직이는 비행기지입니다.
항공모함는 배가 중요한 게 아니라 전투기를 실어나르는 게 기본 목적이다. 한겨레TV
2차 세계대전 전까지 전세계 해군은 파괴력이 엄청나고 구경이 큰 대포로 무장한 거대한 전함(戰艦 battleship)이 함포 사격으로 상대방 군함을 격침시키는 해상전투를 했습니다. 이를 ‘거함거포(巨艦巨砲)주의’라고 합니다. 1941년 12월 일본의 진주만 기습은 항공모함의 위력을 실전에서 보여줬습니다. 당시 일본 항공기 성능을 감안하면, 일본 본토 기지를 이륙한 일본군 항공기가 드넓은 태평양을 가로질러 진주만을 기습하기란 불가능했지요. 이 때문에 미국은 감히 일본 전투기가 진주만을 공격하리라 상상조차 못했습니다. 그런데 일본은 1941년 12월7일 6대의 항공모함에 420대의 항공기를 싣고 공격 지점인 진주만 근처까지 가서 기습공격에 성공했습니다. 일본의 진주만 기습은 전함을 해군력의 중추로 인식하던 거함거포주의 통념을 깨고, 항공모함과 항공기의 조합만으로 달성한 새로운 해군 전략의 승리입니다. 2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바다의 왕자가 전함에서 항모로 바뀌게 됩니다.
마이클베이 감독의 영화 <진주만>의 한 장면. 한겨레TV
중국·일본을 ‘잠재 적국’으로 간주할 건가 국방부가 2조원 넘게 투입해 국산 경항공모함을 건조하고 2033년까지 실전에 배치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미국과 달리 우리는 먼바다까지 항모에 전투기를 싣고 가 작전하는 군사적 필요성 자체를 상상하기 힘듭니다. 이를 군사용어로 ‘원거리 무력투사’라고 하는데요, 세계의 경찰 역할을 자처하는 미국은 자국의 이익을 지키려고 세계 분쟁 지역에 항모 전단을 보냅니다. 해군은 유사시 주변국과의 분쟁 등에서 제공권을 장악하고 해상 교통로를 보호하기 위해 항모가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석유, 곡물 등 자원을 해상을 통해 수입하고, 수출입을 해상 교통로에 의존하는 등 바다는 우리 경제와 국민 생활의 생명줄이란 거죠. 만약 해상 교통로가 차단되면 감당할 수 없는 피해가 발생하기 때문에 우리가 경함모를 도입해 최소한의 억제력을 갖춰야 한다는 게 해군의 설명입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중국과 일본이 항모를 이미 갖고 있거나 추가로 만들고 있으니 우리도 준비해야 한다는 겁니다. 해상 교통로 보호에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겁니다. 하지만 누가 해상 교통로 차단을 위협하고 그 위협의 정도가 얼마나 심각한지, 그리고 우리가 이에 대처할 수 있는 군사적, 외교적 수단이 뭐가 있는지, 그 우선순위는 어떻게 할지 명확히 제시해야 하는데 해군은 너무 허술하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경함모는 단순히 무기체계 도입 문제가 아니라 한국 안보의 근본적인 방향에 관한 문제입니다. 이런 질문이 필요합니다. 앞으로 중국, 일본을 ‘잠재 적국’으로 간주할 건가? 미국과 중국이 남중국해나 동중국해에서 싸우면 우리는 미국과 공조해 중국에 대항할 건가? 해군, ‘경항모가 왜 필요하냐’ 질문에 동문서답 정부는 경항모가 21세기 거북선이란 감성적 구호가 아니라, 우리가 경항모로 어떤 이익을 지키고 주변국에 어떤 메시지를 줄지, 특히 미-중 패권경쟁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 명확한 큰 그림을 제시해야 합니다. 해군은 일단 경항모부터 만들어 미래의 ‘잠재 위협’에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경항모가 왜 필요하냐’고 물었는데 질문에 대한 구체적인 답은 하지 않고 ‘나중에 필요할 수도 있으니 일단 하고 보자’는 식입니다. 동문서답을 하는 겁니다.
경항모가 1996년에 대통령에 첫 보고하고 추진됐지만 1997년 IMF가 터지자 무산됐다. 한겨레TV
경항모 필요성은 김영삼 정권 때인 1996년 3월 대통령에게 처음 보고됐으니 경항모 논란도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요즘 벌어지는 쟁점은 경함모의 가성비입니다. 건조비, 유지비가 얼마이고 이 비용 대비 효과가 어느 정도냐인데요. 국내 업체에서 3만톤급 경함모를 설계하고 선체를 만드는 데 약 2조300억원, 경항모에 탑재될 수직이착륙전투기 20여대 도입에 약 3조원, 모두 합치면 경항모 도입에는 5조원이 듭니다. 유지 관리비는 매년 2천억원가량 듭니다. 경함모는 적의 미사일, 어뢰에 대한 방어력이 취약해 혼자 다니지 않고 보호자들과 무리를 지어 다녀야 합니다. 이를 ‘경항모 전단’이라고 하는데요. 해군이 추진하는 경항모 전단은 1~2척의 이지스 순양함, 3~4척의 이지스 구축함, 미사일 프리깃함, 원자력추진잠수함 등 10척가량입니다. 일부에서는 1개 경함모 전단을 꾸리는 데 최대 40조원이 든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2020년 8월26일 한겨레 “경항모 운용에 30조~40조…예산 낭비”
우리나라 한해 국방예산이 50조원이 약간 넘는데요, 경함모 전단 하나 완성하는 데 한해 국방예산의 80%가량이 든다는 이야기죠. 자칫 경함모가 돈 먹는 하마가 되면 육군, 공군 사업이 유탄을 맞아 쪼그라들 수도 있어 육군, 공군은 해군에 ‘경항모, 그거 꼭 해야 하느냐’며 비판적입니다. 이에 대해 해군은 경함모 전단의 호위전력은 대부분 이미 확보돼 운용 중이라서 추가 예산이 많이 들지 않고, 10년 이상 분산 투입하기 때문에 우리 국방예산 규모 안에서 마련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거북선이란 하드웨어보다 이순신의 소프트웨어 주목해야 경항모는 21세기 거북선일까요? 글쎄요! 임진왜란 당시 일본 수군은 상대 배에 올라 타 육박전으로 결판을 내는 전략을 사용했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거북선을 이용한 돌격 전법과 판옥선에 장착한 원거리 화포를 활용한 함대 운용 전략을 도입했는데요. 당시 조선 수군은 일본 수군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선진적이고 독창적인 전략을 구사했습니다. 이순신 장군의 창의적 전략은 마치 2차 세계대전 때 항공모함과 항공기를 결합한 전략이 거함거포주의를 대체한 만큼이나 세계 해전사에서 획기적이었습니다. 이순신 장군이 만든 거북선이란 하드웨어만 강조할 게 아니라 이순신 장관이 선보인 새로운 전략, 전술이란 소프트웨어에 주목해야 합니다. 이순신 장군의 후예를 자처하는 해군이 소프트웨어에 해당하는 전략과 교리보다는 하드웨어인 경항모에만 관심을 보이는 건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경함모, 필요하면 해야 합니다. 그런데 왜 필요하냐는 질문에 제대로 답변도 못 하면서, 일단 하고 보자는 식의 추진 방식에는 반대합니다. 더구나 민생이 어려운 코로나 시대에 경항모를 강행하니, 더 답답한 노릇입니다. 국민의 성원과 지지 없이는 경함모가 만들어질 수 없습니다. 기획·출연 권혁철 논설위원 nura@hani.co.kr 연출·편집 조소영 PD azu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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