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와 작업실을 겸하는 경기도 여주 소재 ‘소운’.
작업실 ‘소율’에서 만난 김승회 건축가. 사진 이승원 작가
이런 사람을 생각하면 설렌다. 자신이 꿈꾸는 공간을 직접 설계하고 창조하는 사람. 자신이 꿈꾸는 공간에 매일 출근하는 사람. 게다가 타인의 꿈을 이루어주는 공간을 매일 손으로 빚어내는 사람. 건축가 김승회는 바로 그런 사람이다. 그는 거대하고 화려한 건축물이 아니더라도 우리의 꿈을 이룰 수 있는 일상 속의 작고 아름다운 공간은 얼마든지 가능함을 보여준다. 코로나 시대 이후 ‘내가 꿈꾸는 나의 공간’에 대한 대중의 열망은 더욱 커졌다. 늘어난 실내생활 시간 탓에, 집 안에서 집 밖을 그리워하는 시간도 늘어났다. 실내에서도 실외를 꿈꾸게 만드는 이중적 공간을 향한 갈망이 급증한 것이다. 옛집의 대청마루처럼, 정원의 담장을 뛰어넘어 밖으로 뻗어나가는 담쟁이덩굴처럼, 우리의 마음은 집 안에서도 집 바깥을 간절히 꿈꾼다. 건축가 김승회의 ‘소율’(素聿, 후암동 작업실)과 ‘소운’(素雲, 여주 서재)은 바로 그런 꿈을 이룬 공간이다. 나는 후암동 소율을 직접 찾아, 건축가의 일상과 예술이 하나가 된 삶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인터뷰를 시작할 땐 본론을 시작하기 전의 ‘아이스브레이킹’(어색함을 깨기 위한 대화)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번에는 건물 앞에서 반갑게 인사를 한 뒤 ‘계단을 올라가면서’ 이미 직설적으로 질문을 해버리고 말았다.
하루를 머물러도 ‘집’이 된다 “이 공간이 정말 30평이라고요? 60평은 되어 보여요. 아니, 평수 자체를 잊어버리게 만드는 공간이에요.” “정교하게 설계하면 충분히 가능해요. 세밀하게 벽이나 계단의 두께 하나하나에 신경을 쓰고,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에요.” 첫 대화부터 우리는 어색함 없이 본론으로 들어갔다. 나는 이미 그의 책 <시간을 짓는 공간>을 통해 마음속으로 수없이 소율을 그려보았기에 사무실로 올라가는 ‘계단참’에서 이미 소율과 친밀해진 느낌이었다. 구조 프레임을 강렬한 빨강으로 칠한 것이 마음에 쏙 들었다. 이 잿빛 도시에서 유독 새빨간 피를 숨기지 않고 자신의 진심을 드러내 보이는 듯한 따스함이 건물의 붉은 프레임에서 느껴졌다. 한옥에서 나무로 된 기둥이 그대로 드러나 보이듯이, 소율은 철골 구조 프레임을 날것으로 노출한다. 무채색의 칙칙한 건물 외관에 익숙해진 우리 도시인의 눈에는 소율의 건물에 드러난 적색 프레임이 마치 새빨간 피가 흐르는 모세혈관처럼 선명해 보인다. ―교수님은 거의 모든 꿈을 다 이루시지 않았나요? 성공한 건축가이고, 서울대 교수이시고, 게다가 소율과 소운이라는 꿈의 공간을 소유하고 계시잖아요. “그래서 사실 미안해요.(웃음) 제가 노력해서 얻은 것들이라 해도, 모두가 이런 행운을 가지는 것은 아니니까요.” 나의 당돌한 질문에도 그는 당황하지 않고 차분하게 미소 짓는다. 그는 많은 것을 가졌지만 겸손하고 수줍다. 결코 자신의 업적을 과시하지 않는다. 그의 업적을 알아보기 위해 그의 설계작업실인 ‘경영위치’ 웹사이트를 열심히 탐구했다. 이우학교,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문학동네 사옥, 다니엘학교, 이화외고 비전관, 갤러리 더 월, 연남동 빵꼼마, 문경시보건소, 안동의료원, 모전교, 삼일교, 고성 치매전문요양시설, 원진녹색병원, 임마누엘교회, 영동교회, 판교의 수많은 단독주택들, 그리고 소율과 소운. 이 모두가 그의 작품이다. 하지만 내가 그를 찾은 것은 수많은 건축물의 아름다움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자신의 건물에 빨간색을 칠한 이유를 설명할 때 오르한 파묵의 <내 이름은 빨강>을 인용하며 미소 짓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인문학적 감성을 듬뿍 지닌 건축가이고, 여전히 가슴 뜨거운 문학청년이며, 무엇보다도 건축학 개론조차 못 들은 나 같은 사람에게도 친절하고 다정하게, 우리 가슴을 뛰게 할 건축의 아름다움을 기꺼이 설명해줄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건축은 많은 사람들이 남몰래 관심을 가지는 분야예요. ‘건알못’(건축은 알지 못합니다)이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나만의 공간을 기획하고 창조하고 싶은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지 않을까요. 저 같은 문외한도 내가 꿈꾸는 나의 공간을 구상하려면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여행 가서 잠깐씩 머무는 호텔도 여행을 하는 동안에는 ‘집’이 되잖아요. 내가 머무는 장소를 아주 잠깐일지라도 사랑하고, 가꾸고, 돌보는 연습을 해야 해요. 커튼 하나만 달아도, 화분 하나만 제대로 놓아도, 미닫이문을 반쯤만 열어놓아도, 공간의 느낌은 확 바뀌거든요. ‘여긴 잠시 머무르는 곳일 뿐이야’라고 생각하지 마시고, 아무리 잠시 머물더라도 내가 머무는 공간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야 해요. 그래야 애정이 생기고, 보살피고, 가꾸게 되니까요.” ―‘어차피 잠만 잘 거니까 숙소는 아무 데나 괜찮아’라고 생각하면 안 되는 거였네요. 저는 베를린에 있을 때 처음으로 호텔이 아닌 현지 주민의 집에서 하숙을 했거든요. 주인집 아주머니와 이야기도 나누고, 동네 주민과 수다도 떨고, 그렇게 ‘한 커뮤니티의 일원’이 된다는 사실이 너무 좋았어요. 건축가로서 ‘뜻밖의 기쁨’을 느끼게 해준 프로젝트가 있다면요?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짓는 것이었어요. 아이들은 참 신기했어요. 어른들이 공들여 건축하고 설계한 넓고 화려한 공간이 아니라, 자기만의 이야기가 담긴 의외의 공간들을 좋아했어요. 서울시교육청에서 주도했던 서울교육공간플랜을 기획하면서, ‘미래에 어떻게 학교 공간을 바꿀 것인가’라는 설문조사를 했어요. ‘학교에서 어느 공간이 제일 좋아요?’라고 물었어요. 교실도 아니고 식당도 아니고 제3의 공간이었어요. ‘3층에서 4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참에 오후 3시가 되면 햇빛이 비치는데, 거기가 제일 멋있어요.’ 아이들은 이런 식으로 대답하더라고요. 획일적인 표준설계에서도 아이들은 나만의 공간을 찾아요. 감동적이었어요. 담을 높이 쌓아서 학생들을 못 나가게 하는, 그렇게 획일적으로 만든 학교에서도 아이들은 자기만의 이야기가 담긴 공간을 찾아낸 것이지요. 교실도 중요하고 식당도 중요하지만 ‘사이공간’이 중요해요. 회랑이라든가 처마 밑이라든가 복도, 계단, 이런 제3의 공간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달았어요.”
김승회 건축가가 정여울 작가에게 소율을 지탱하는 붉은색 철골 구조 프레임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 이승원 작가
작업실에서 보이는 남산타워. 사진 이승원 작가
누구에게나 필요한 ‘자기만의 공간’ ―그 엉뚱한 사이공간에서 뜻밖의 사건들, 틈새의 열망들이 충돌하니까요. 나만의 이야기는 거의 그 ‘사이공간’에서 태어나요. 우리 인간은 아마 감옥에 가서도 나만의 공간을 찾을걸요. 저도 학교 다닐 때 ‘눈물벤치’라는 저만의 공간이 있었어요. 거기서 혼자 실컷 울고 나면 기분이 나아졌거든요. 인간은 결국 ‘아픔을 돌보고, 기쁨을 창조하는 공간’을 절실하게 갈망하는 것이 아닐까요. “맞아요. 그래서 저는 <존재에서 존재자로>를 쓴 철학자 레비나스를 좋아해요. 인간은 자기 공간을 가지고 나서야 비로소 남의 얼굴, 타인의 아픔을 돌아볼 여유가 생긴다는 거예요. 일단 아무리 작더라도 ‘자기만의 공간’이 생겨야 해요. 그 공간이 있어야 나의 꿈뿐만 아니라 타인의 꿈까지 돌보고 가꿀 여유가 생기지요.” ―나의 공간에서 행복을 찾아야 타인의 눈물을 닦아줄 여유가 생긴다는 말, 정말 공감해요. 살아남기 위해 투쟁했던 시절을 돌아보면, 타인에 대한 배려가 너무 부족했던 자신의 모습이 보이고, 늦었지만 지금에야 부끄러워지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시간을 짓는 공간>에서 ‘내게 왜 집이 필요했을까’라는 질문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참 좋았어요. 스스로 ‘나에게 정말 집이 필요한가’라고 먼저 질문을 던져야 해요. 왜 살고 있는 집 외의 다른 작업공간, ‘소운’이 필요하셨나요? “평생 건축 일을 했는데도, 저만의 작업공간이 없더라고요. 설계 마감이 다가오면 모든 것을 잊고 집중해서 일할 공간이 필요한데, 사무실과 집이 아닌 저만의 공간이 절실히 필요했어요. 지방의 콘도에 잠시 방을 얻어 혼자서 작업을 했지만, 그 무거운 짐들을 들고 매번 지방에 가려니 보통 일이 아니었어요. 부모님과 같이 살 때라 나만의 공간이 더욱 없었지요. 그래서 ‘소운’이라는 작업실을 짓게 되는데, 공간을 물색하고 설계하고 짓기까지 무려 15년이나 걸렸어요. 하지만 그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을 정도로 그 공간을 사랑하게 되었지요.” ―여주의 작업실 ‘소운’은 건축이라는 직업과 글쓰기라는 꿈이 어우러지는 공간이 아닐까 싶어요. 버지니아 울프가 이야기한 ‘자기만의 방’은 남자들에게도 필요해요. 누구에게나 생활공간이 아닌, ‘생각하고 창조하는 공간’이 필요하거든요. “저는 제가 일하는 작업실 서재 말고는 부엌이나 욕실 같은 공간에 대한 밑그림이 전혀 없더라고요. 서재만 원했지 욕실과 부엌 같은 건 생각도 못 했던 거예요.(웃음) 하지만 작업실에도 그런 생활공간과 휴식공간이 필요하잖아요. 그때부터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그제야 공간 하나하나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욕망했던 건축주들이 대단한 분들이었구나, 깨닫게 되었어요.” ―자기가 원하는 것을 들여다보고 공부할 줄 아는 사람이 결국 원하는 일을 해내죠. 뭘 원하는지 안다는 것이 굉장히 중요해요. 타인의 집을 설계할 때는 척척 해냈는데 나만의 집을 설계하려니까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에 대한 구상이 턱없이 부족했다는 말씀이 정말 와닿아요. “아이들에게 ‘밥 먹으러 내려와’라고 말하는 게 너무 힘들다고 호소하는 건축주가 있었어요. 이층집에서 아이들이 어떻게 하면 식사 시간에 제대로 내려오게 할 수 있을까요? 아이들은 자기 일에 빠져서 엄마가 불러도 좀처럼 내려오지 않았어요. 부엌과 식당에서 나는 밥 짓는 냄새가 2층까지 올라가도록 공간을 만들었어요. 건축주의 고민 때문에 지금까지 한번도 상상하지 못한 공간을 만들어낸 거예요. 이런 디테일한 요구를 들어주면서 새로운 공간이 만들어져요. 욕망의 디테일이 참 소중한 것이죠. 아주 사소한 것들이 중요해요.” ―멀리서 볼 때 사소해 보이는 건 알고 보면 결코 사소하지 않잖아요. 밥이 식기 전에 아이들이 내려와서 따순 밥을 먹었으면 좋겠다는 엄마의 커다란 사랑이잖아요. 사소한 순간들조차 소중하게 여기는 엄마의 사랑이 결국 아이들의 큰 꿈으로 성장하지요. 현대의 아파트들에는 동작과 동작 사이의 연결고리가 끊어져 있어요. 자기 방에서 휴대폰이나 컴퓨터를 끌어안고 거실로도 잘 안 나오니까요. 자기만의 방은 급증했지만, 따스한 소통의 공간은 줄어들었지요. “중요한 지적이에요. 예전에는 한옥 구조가 대청마루를 사이에 두고 앞마당도 있고 툇마루도 있어서, 공간이 열리고 닫히고 하는 경우의 수가 엄청나게 다양했어요. 현대의 아파트는 문이 ‘열린다·닫힌다’, 두 가지밖에 없지요. 실내에서도 여러 가지 간단한 ‘열림’의 장치를 해두면 좋을 것 같아요. 슬라이딩 도어로 바꿀 수 있다면 좋고, 실내에서도 안방과 거실 사이에 창문을 둘 수도 있어요. 커튼을 달아도 좋아요. 커튼이나 파티션이 있으면, 상황이 바뀔 때마다 장소의 분위기를 바꿀 수가 있어요.”
김승회 교수의 설계작업실 ‘경영위치건축사사무소’. 사진 이승원 작가
더 많은 이들에게 ‘건축의 별자리’를 ―사실은 아직도 꿈을 이룬 건축보다는 ‘꿈을 이루지 못한 사람들의 좌절된 건축’이 많다고 생각해요. 어떻게 ‘서울의 눈물’을 닦아주는 건축을 할 수 있을지, 서울뿐 아니라 모든 도시의 상처를 치유하는 건축은 어떻게 가능할까요. “무분별한 개발로 인해서 상처 입은 사람들, 자신이 원래 살던 공간에서 추방된 사람들이 많지요. 서울의 눈물을 닦아주는 건축은 더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자리에서 하나씩의 ‘행복한 별’이 되도록 도와주고, 건축가는 그들 사이를 이어주는 ‘행복의 별자리’를 그리는 사람이 되는 거예요. 아무리 작은 집이라도 그 집을 지음으로써 그 동네 전체가 좋아질 수 있는 희망을 주고 싶어요. 팬데믹 이후 우리는 엄청난 건축의 전환기에 서 있어요. 저도 건축가로서 새로운 갈림길에 서 있지요. 우리에게도 아름다운 건축물들, 아름다운 풍경들이 충분히 많아요. 궁궐도 좋고, 남산과 인왕산과 북한산도 아름답지요. 그 좋은 것들이 서로 이어져서 아름다운 건축의 별자리를 그렸으면 좋겠습니다.” ―건축은 결국 ‘의미 있는 타인들’이 만들어낸 공간의 별자리들이었군요. 아름다운 것들이 각각 따로 떨어져 있으면 ‘고립된 하나씩의 별들’이지만, 그 별들을 이어주는 것은 결국 사람들의 움직임이고, 사람들의 소통과 애정의 몸짓들이니까요. “맞아요. 이제 등산도 다르게 해보곤 해요. 예전에는 인왕산 올라가면 딱 인왕산만 보고 왔는데, 이제는 인왕산에서 수성계곡을 거쳐 서촌으로 해서 광화문까지 걸어서 내려와요. 그러면 또 하나의 아름다운 서울의 별자리가 그려져요. 이런 식으로 카페와 도서관과 집을 이어서 우리 동네만의 건축의 별자리를 만드는 거예요. 아름다운 길을 만들어주면 사람들은 걷고 싶어 하겠지요. 그 길을 따라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태어나겠지요. 그렇게 고립되어 있는 공간들이 서로 이어지면 더욱 아름다운 스토리텔링이 이루어지는, 서울이라는 이름을 지닌, 더욱더 큰 이야기의 별자리가 만들어지지 않을까요.” 이다음에 소유하고 싶은 더 넓은 공간만을 막연히 꿈꾸기보다는 지금 내가 머무는 이곳을 아름다운 머무름의 장소로 만들어보자. ‘미래의 소유지’가 아니라 ‘현재의 점유지’로서 ‘집’은 다시 창조되어야 한다. 이제는 ‘지긋지긋한 집구석’이 아니라 집을 카페나 도서관처럼 아늑하고 소담스럽게 꾸미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집이야말로 최고의 인테리어 공간, 최고의 삶을 꿈꾸게 하는 이상적 공간이 되어야 한다는 대중의 공감대가 커지고 있다. 가슴이 따뜻한 건축가와의 인터뷰를 통해 나는 새삼 깨닫는다. ‘집’이야말로 우리 모두가 끝내 포기해서는 안 될 ‘최후의 피난처’임을. 집은 가장 가까이 있기에 오히려 간과되는, 이상하게도 너무 쉽게 소외되는 공간이었다. 집이야말로 최고의 건축 실험장, 집이야말로 최고의 작업실, 집이야말로 우리의 꿈이 이루어지는 곳이 되기를. 그렇게 각자의 집이 ‘하나씩의 별’이 되어 우리가 서로의 집을 방문할 때마다 ‘아름다운 건축의 별자리’가 눈부시게 그려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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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울 _ 작가. 개성 넘치는 존재들이 한자리에 모여 서로의 꿈과 일상과 배움의 열정을 나누는 곳, 그곳이 바로 살롱이지요. 작가 정여울이 이 시대의 빛나는 사람들을 초대하여 속 깊은 정담을 나누는 코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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