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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이' 19명 더 있었다 : 인권·복지 : 사회 : 뉴스 - 한겨레

한겨레21> ‘아동 재학대 사망’ 추적

2013~2018년 최소 20명 사망 첫 확인
의사·교사들이 여러 번 신고해도
가해자 변명보다도 인정 못 받아

“전문 인력·제도적 환경 구축 없이
제2 정인이 사건 막을 수 없어”

2021년 10월20일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안데르센 공원 묘지에 있는 정인이의 묘지. 정인이는 생후 16개월 만에 양부모 학대로 사망했다. 박승화 한겨레21 기자 eyeshoot@hani.co.kr
2021년 10월20일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안데르센 공원 묘지에 있는 정인이의 묘지. 정인이는 생후 16개월 만에 양부모 학대로 사망했다. 박승화 한겨레21 기자 eyeshoot@hani.co.kr
2020년 10월13일 정인이가 양부모의 학대로 숨진 뒤 1년이 지났다. 태어난 지 16개월 된 정인이는 어린이집 원장과 소아과 의사 등이 세차례나 아동학대가 의심된다는 신고를 했지만, 끝내 숨지고 말았다. 정인이(아래 그래픽의 20번)가 숨진 2020년에만 ‘적어도’ 3명의 아이가 학대 의심 신고가 되고도 죽음을 맞았다. 경기도 여주에 살던 9살 다원(18번)이는 영하 3.1℃였던 1월10일, 베란다 욕조 찬물 속에서 벌받다 저체온증으로 숨졌다. 다원이는 5살 때 두차례나 아동학대가 의심된다고 신고된 적이 있다. 5월5일 어린이날, 온몸이 멍투성이인 채로 응급실에 실려왔던 8살 재민(19번)이는 2020년 6월3일 여행가방에 갇혀 숨졌다. 2020년 한해 동안 정부가 집계한 아동학대 신고 건수는 총 4만2251건, 이 가운데 ‘재학대’가 확인된 아이는 2876명에 이르고, 이 가운데 정인이를 포함해 최소 3명이 숨졌다. 아이들을 살릴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이 지금도 흐르고 있다. <한겨레21>은 정인이처럼 숨지기 전에 한차례라도 학대 의심 신고가 되었던 아이들의 사례를 추적 조사했다. 이를 위해 먼저 김상희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실이 입수한 보건복지부 집계 자료를 통해 과거에 학대 의심 신고가 된 적이 있는데 2013~2019년 숨진 아이들 12명 사례를 확보했다. 하지만 여기에는 2013년 칠곡 계모 아동학대 사망사건(4번) 등 주요 사건들조차 누락돼 있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아동인권위원회, 시민단체 ‘정치하는엄마들’과 함께 관련 판결문과 언론 보도를 종합해 정부 자료에 누락된 사례를 보완했다. 그 결과 2013~2020년 아동학대 신고된 사례 15만5159건 중 ‘적어도’ 20명의 아이가 학대로 숨졌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정부는 ‘재학대(최근 5년 이내에 한차례라도 아동학대로 판단된 적이 있는데 해당 연도에 또다시 신고접수) 사망 아동’ 수를 2019년 3명, 2020년 2명이라고 파악했으나 <한겨레21>은 2019년 4명, 2020년 3명으로 확인했다. ‘또 다른 정인이’를 막으려면 우리는 어디서부터 출발해야 할까. 김영주 민변 아동인권위원장 등 아동학대 전문가 6명이 자문위원단으로 참여해 사례 분석에 함께했다. 언론에 본명이 보도된 서현이, 원영이, 준희, 정인이 외의 아이 이름은 모두 가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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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고만으론 소용없었다
“소보로빵을 흘리며 먹는다”는 이유로 아빠는 5살 영진(위 그래픽의 6번)이를 심하게 때려 숨지게 했다. 영진이는 숨지기 1년6개월 전에 의사가 신고했던 아이다. 여러개의 멍, 부모의 의료방임 등 의사는 학대를 의심했지만, 조사를 나온 이들은 “친모의 양육 의지가 있다”며 일주일 입원 뒤 아이를 집으로 보냈다. 아이가 얼마나 학대당하고 있는지를 꼼꼼하게 일지로 남겼던 지역아동센터 교사의 신고에도 원영(8번)이는 죽임을 당했다. 두차례나 서로 다른 의사가 신고했던 은비(9번)도 죽음을 맞았다. 의사, 교사 등은 아동학대처벌법이 규정한 신고의무자임에도, 조사 나온 이들은 신고자 이야기보다 가해자 변명을 더 신뢰했다. 김희진 국제아동인권센터 사무국장(변호사)은 “신고의무자는 언어적 의사소통이 제한적인 아동을 대변하는 ‘옹호자’로서 해석돼야 한다. 나아가 신고의무자에게 권위를 인정하는 법제도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곽영호 서울대 교수(소아응급의학과)는 “가해자가 거짓으로 진술할 가능성이 있는데 전문적인 판단을 내릴 인력과 업무 프로세스가 없다”며 “사례 관리 실패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전문인력의 투입 없이 제2의 정인이 사건을 막을 수 없다”고 말했다.
무책임한 원가정 복귀
학대피해 아동으로 분류돼 영아일시보호소에 입소해 생활하던 2살 세웅(2번)이는 가해자인 친모가 집요하게 요구해 2013년 1월7일 가정으로 복귀했다. 세웅이는 그 뒤 24일 만에 맞아서 숨지고 말았다. 만 1살이던 2017년 첫 신고를 통해 친모의 학대가 밝혀져 아동보호시설로 분리됐던 지희(14번)는 2018년 5월, 친모가 양육 의지를 보인다는 이유로 집에 돌아갔다. 이후 2018년에만 두차례나 더 신고됐지만 원가정 보호 조치로 끝났고 지희는 결국 2019년 새해 첫날 숨을 거뒀다. 소라미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임상교수(변호사)는 “재학대 사망 사례의 경우 가해자였던 부모의 요청(때로는 심한 민원)으로 아동의 가정 복귀가 이뤄지는데 부모가 (상담 등을) 거부한다는 이유로 제대로 사후관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유관기관 사이의 불통
2017년생인 성연(12번)이는 생후 26일에 엄마에게 안긴 채 주먹으로 얼굴을 맞아 숨졌다. 세 아이를 키우던 엄마는 성연이를 임신한 2017년 8월8일, 성연이 언니 가연이(당시 3살)를 앞니가 빠질 정도로 폭행했다. 당시 가연이 어린이집 원장의 신고로 조사받았고 신고된 가연이만 분리 조치됐다. 성연이는 정부가 집계하는 ‘재학대’ 사례에는 해당하지 않는다. ‘재학대 사례’는 같은 아이에 대한 재신고를 기준으로 하는데, 성연이는 신고된 피해 당사자가 아니라 피해자의 형제자매이기 때문이다. 김영주 변호사는 “아보전(아동보호전문기관)은 경찰 탓, 경찰은 아보전 탓을 한다”며 “사건은 계속 같은 패턴으로 벌어지고 업무 주체들은 소통하지 않고 분절적으로 각자 업무만 수행한다”고 말했다.
방치된 부모
부모가 본드 흡입 뒤 아이를 방치하고 있다는 신고가 접수된 것은 2013년 3월24일이다. 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원은 조사 기록지에 “아이 집의 문을 열자 집 안에서 본드 냄새가 풍겨왔고 부모의 눈에 초점이 없었다”고 적었다. 그런데도 태어난 지 4개월밖에 되지 않은 주형(3번)이는 2살짜리 형과 함께 나흘간 할머니 집에 맡겨졌다가 다시 부모 집으로 돌아왔다. 주형이는 6월18일 숨졌다. 김희경 작가(전 여성가족부 차관)는 “학대 행위자가 경제적, 정서적 지원 없이 고립 상황에 처한 양육자이거나 준비 안 된 청소년 부모 혹은 미혼모일 때 이들이 아이를 돌볼 수 있도록 지원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치하는 엄마들’ 활동가들이 2020년 9월9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천안 아동학대 사망사건’과 관련해 천안시장, 경찰서장 등 유관기관 책임자들을 직무유기 및 아동복지법 위반으로 검찰에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정치하는 엄마들’ 활동가들이 2020년 9월9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천안 아동학대 사망사건’과 관련해 천안시장, 경찰서장 등 유관기관 책임자들을 직무유기 및 아동복지법 위반으로 검찰에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잊히는 아이들
사고가 일어난 이후 허술한 통계 관리도 문제다. 정부가 작성한 ‘2013-2019 재학대 사망 사례’ 자료에는 2013년 ‘칠곡 계모 아동학대 사망 사건’(4번)이 누락돼 있었다. 2013년 8월16일 8살 사랑(가명)이를 때려서 숨지게 한 가해자는 사랑이 언니(당시 만 11살)를 세탁기에 넣고 돌리는 등 고문하고, 사랑이를 숨지게 한 죄를 언니에게 뒤집어씌우려 했다. 그러나 아동보호전문기관의 조사 결과지에는 사랑이의 사망에 대해 ‘학대와의 연관성 확인 안 됨’이라 표시돼 있었다. 그렇게 사랑이 사례는 ‘재학대 사망’ 기록에서 지워졌다. 아이들이 신고된 뒤 숨지기까지를 민간 차원에서라도 보고서 형식으로 기록한 경우는 2건(2013년 ‘이서현 보고서’(5번)와 2016년 ‘은비 보고서’(9번)에 불과하다. 국회에는 조사 보고서 제출을 의무화한 ‘아동학대 사망 진상조사법안’이 계류 중이다. 2000년 영국에서 아동학대로 숨진 8살 클림비를 살릴 기회를 10여 차례 놓쳤다는 사실을 2년여 조사 끝에 밝혀낸 보고서를 펴냈듯이 ‘한국판 클림비 보고서’를 내놔야 한다는 취지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고한솔 <한겨레21> 기자 sol@hani.co.kr ▶관련기사 : [한겨레21] 아동학대 신고와 죽음 사이에 평균 493일
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113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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