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체불·감금 피해 주장한 전직 염부
단체숙식·생활비 가불 지급하는 구조
가불액 제하고 1년치 임금 받는 염부들
감시 ‘구멍’…지자체 현황 파악도 못해
29일 오후 전라남도 신안군의 한 염전에서 염부가 작업을 하고 있다. 장현은 기자 mix@hani.co.kr
갯벌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몇몇 관광객을 지나쳐 ‘일반인 출입 자제구역’이라는 팻말을 마주하자 140만평(462만8000㎡)에 달하는 염전이 도로 양옆으로 눈부시게 펼쳐졌다. 소금을 보관하는 창고와 염부(염전 인부)들이 지내는 집이 군데군데 보였다. 3명의 염부가 물의 염도를 재고 있었다. 지난 29일 찾은 전남 신안군의 ㄱ염전은 고즈넉했다. 그러나 전날인 28일, 이곳에서 일한 박영근(53)씨는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7년 동안 일하며 470만원가량(합의금·가불)을 빼고 한 푼도 받지 못하고 사실상 감금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전남경찰청은 박씨가 일한 염전 사장 ㄴ(48)씨를 입건해 조사에 나섰지만, ㄴ씨는 해당 사실을 강하게 부인하고 있어 경찰은 사실관계를 더 파악할 예정이다. 박씨의 피해 여부는 경찰 조사로 가려야 할 부분이다. 2014년 이 지역 염전에서 63명의 강제노역 피해자가 나온 뒤 7년이 지났음에도 비슷한 주장이 나온 배경에 단체 숙식을 하면서 임금을 ‘가불’ 형태로 지급하는 염전노동의 오래된 구조가 자리 잡고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지자체나 관련 기관의 시선이 미치지 못하면 임금체불·감금 같은 피해가 언제든 발생할 수 있는 환경이다.
31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박씨가 일한 염전은 법인인 ㄱ염전이 염전의 소유권을 갖고 있고, 염전 일부를 개인이 임대해 소금 생산 판매 수익을 나누는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박씨가 일한 염전은 ‘염사장’이라고 불리는 ㄴ씨가 10명 안팎의 염부를 두고, 중간관리자인 ‘염부장’이 염부들을 관리하는 방식으로 소금을 생산한다. 이는 이 지역 염전의 일반적인 사업 방식으로 박씨가 일한 염전을 관할하는 읍·면 사무소는 현재 지역에서 일하는 염부를 약 25∼35명으로 파악하고 있다. 문제는 염전 일이 고되고 위험한 대표적인 3디(D)업종인 데다, 염전철인 3∼10월(신안군 조례에는 3월28일∼10월15일로 제한)에만 한시적으로 노동하는 계절노동이라는 데서 불거진다. 육지와 떨어진 섬에 위치해 염부들은 염전 앞에서 단체로 숙식하며 공동생활을 해야 하고 저임금인 경우가 많아 언제나 염부를 구하는 데 애먹는다고 한다. 염전 사업 관계자들과 박씨 동료들의 말을 종합하면, 염사장들은 허가된 직업소개소는 물론, 무허가 직업소개소를 통해 인력을 충원하고 그 과정에서 법정 소개료(3개월 임금의 30%), 혹은 그 이상을 선불금으로 지불하고 염부를 데려온다. 염전노동의 기형적인 임금 지급 방식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선불금을 낸 염사장은 염부가 일을 그만두고 도망갈까 봐 염전 작업이 끝나는 10월에 1년치를 한꺼번에 정산한다. ㄱ염전에서 만난 박씨의 동료들도 재작년까지 1년 단위로 임금을 정산을 받았다고 했다. 단체생활을 하면서 구매하게 되는 술과 담배 등의 기호식품 등은 근처 마트에서 가불 형식으로 사용한 뒤 추후 받을 임금에서 제한다. 전기세와 수도세, 통신비, 병원비 등 다양한 비용도 가불액으로 잡힌다. 박씨가 일했던 염전의 염사장 ㄴ씨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염전 특성상 11월에 현금을 만지는데 저희도 사방에서 빚을 내서 운영한다. 박씨는 담뱃값이나 생활비로 임금을 상회하는 가불액을 사용했다”고 박씨의 임금체불 주장을 반박했다.
전라남도 신안군 ㄱ염전에서 작업을 하는 염부들이 지내는 숙소. 박 씨는 염전 사장의 감시로 염전 밖으로 나가는 게 자유롭지 않았으며,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장현은 기자 mix@hani.co.kr
염사장들은 이러한 임금 지급 구조가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 지역 염사장 출신 ㄷ씨는 “주민등록이 말소된 염부도 있고, 본인이 신용불량자라며 은행 계좌를 개설하지 않겠다는 염부도 있다. 이들에게 현찰로 임금을 주면 술을 먹는다고 다 써버리곤 한다”며 “분실의 우려도 있으니 현금보관증을 써주고 사장 명의의 통장에 임금을 보관하고 있다가 10월에 염전철이 끝나는 때 일괄 현금으로 지급하곤 한다. 이런 경우에는 어쩔 수 없는 거 아니냐”고 말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염사장이 열악한 처지에 있는 염부들에게 고의나 실수로 임금을 체불하거나 갈취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박씨처럼 판단능력이 부족한 경계성 지능장애인은 이러한 상황에 더 취약하다. 최갑인 경기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팀장은 “1년치 정산을 못 받으면 (염전을) 나갈 수 없는 부분에서 피해자는 감금이라고 느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장애인 단체 관계자는 “노숙인이나 판단 능력이 떨어지는 이들을 싸게 데리고 와서 쓸 수 있는 인신매매 형태의 사업 구조를 깨야 한다”고 말했다.
2014년 ‘염전노예 사건’ 이후 수많은 개선책이 쏟아졌지만 염전노동에 대한 관리·감독은 눈에 띄게 개선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박씨는 염전을 탈출한 이후 지난 6월 가족의 도움을 받아 광주지방고용노동청 목포지청에 임금체불 진정을 넣었지만 근로감독관은 염사장 ㄴ씨 진술만을 토대로 400만원 합의로 진정을 종결했다. <한겨레>가 윤미향 무소속 의원을 통해 확보한 박씨의 임금체불 관련 광주지방고용노동청 목포지청의 수사 관련 자료를 보면, 근로감독관은 1시간 동안 피진정인 ㄴ씨를 상대로 조사를 벌였을 뿐 박씨에 대한 조사는 진행하지 않았다. 담당 근로감독관은 “줘야 할 돈은 퇴직금 200만원과 임금 200만원“이라는 ㄴ씨의 진술을 토대로 400만원에 합의해 진정을 종결하도록 했다. ㄴ씨가 제출한 임금 지급 관련 자료 중 박씨의 ‘가불 내역서’에는 제대로 된 증빙 자료 없이 ‘가불(담배, 현금, 송금 등)-949만2000원’(박씨의 1년치 가불 내역)이라고만 쓰여 있었다. 신안군은 지난 7월 염전과 새우양식장 등의 장애인 불법 고용과 인권침해 방지 등을 위한 실태조사 계획을 수립해 읍·면 별로 조사를 진행했지만 아직 관련 사례가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박씨가 일한 염전의 관할 읍·면사무소 관계자는 “(염전) 종업원의 인적 사항은 저희도 모르고 있었다. 최근 (문제가 불거지고 난 뒤) 전남경찰청에서 염부들 인적 사항을 파악해서 넘기면서 고용 실태와 등록 장애인 여부를 파악해달라는 협조 요청이 왔지만 특이사항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전남경찰청은 입건된 염사장 ㄴ씨와 동료 염부들에 대한 1차 조사를 마치고, ㄴ씨의 집과 사업장을 압수수색했다. 경찰은 자치단체와 고용노동부, 전남장애인권익옹호기관 등과 신안군 염전을 대상으로 한 전수조사를 계획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도 박씨와 관련한 진정을 접수해 조사를 진행 중이다.
29일 오후 전라남도 신안군의 한 염전에서 염부가 작업을 하고 있다. 장현은 기자 mix@hani.co.kr
신안/이우연 장현은 기자
azar@hani.co.kr
Adblock test (Why?)
소스 뉴스 및 더 읽기 ( 7년 만에 또 “나는 염전노예” 주장…이면에는 감시받지 않는 염전노동 - 한겨레 )
https://ift.tt/3nIddOV
대한민국
Bagikan Berita Ini
0 Response to "7년 만에 또 “나는 염전노예” 주장…이면에는 감시받지 않는 염전노동 - 한겨레"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