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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로 돌아간다면 누구보다 맛있게, 감탄하며 먹을 자신이 있다 - 한겨레

[토요판] 양선아의 암&앎 - ⑫ 항암의 끝을 향해
일러스트레이션 장선환
일러스트레이션 장선환
“아… 악….” 항암제 도세탁셀을 맞은 뒤 3일째 되던 날, 아침에 일어나다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무릎과 엉덩이뼈에 통증이 느껴졌고, 발에 모래주머니를 찬 것처럼 몸이 무거웠다. 얼굴은 퉁퉁 붓고 다리는 ‘코끼리 다리’가 돼 있었다. 항암제의 부작용 증상이다. 왼쪽 유방과 왼쪽 겨드랑이 림프절에 암이 있었던 나는 항암제 아드리아마이신과 사이톡산(AC)을 4회 맞은 뒤, 도세탁셀이라는 약물로 바꿔 나머지 4회 항암을 진행하기로 했다. 도세탁셀은 유방암, 위암, 폐암, 전립선암, 두경부암을 치료하는 데 사용하는 약제인데, 암세포의 세포분열을 중지시켜 암세포를 죽인다. 에이시 항암 주사를 맞는 데 1시간~1시간 반 정도 걸렸다면, 도세탁셀은 전후 처리 시간까지 합하면 5시간~5시간 반 정도 걸렸다. 남은 절반의 항암치료제 도세탁셀
너무 극심한 통증에 눈물만 뚝뚝
“엄마, 뭐든 말해봐 내가 들어줄게”
울고 또 울며 넘긴 항암 끄트머리
 극한 통증에 나는 울기만 했다
도세탁셀을 맞기 전에는 구토방지제 등 부작용 방지약 두 가지를 주사로 맞았다. 약물이 혈관에 주입되면 회음부와 항문까지 찌릿찌릿한 느낌이 있었다. 간호사는 처음 도세탁셀을 맞는 것이니 부작용을 고려해 아주 느린 속도로 약물이 혈관에 들어가도록 했다. 항암제 에이시를 맞을 땐 예능 프로그램 ‘아는 형님’을 보면서 깔깔깔 웃으며 맞았다면, 도세탁셀을 맞을 땐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무기력감을 느꼈다. 스마트폰도 볼 수 없을 정도로 눈이 감겨서 그냥 눈을 감고 가만히 누워 있었다. 오후 3시부터 도세탁셀을 맞았는데, 3시간 정도 맞으니 저녁 식사 시간이 됐다. 간호사는 수시로 내 상태가 괜찮은지 확인했다. 혹시 심장이 두근거리거나 조금이라도 이상한 것이 있다면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했다. 약에 대한 과민반응이 나타나 숨이 차거나 가슴이 조여드는 등의 현상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과민반응은 없었다. 대신 무기력하고 졸리는 증상만 나타났다. 졸리는데 내 상태를 감각해야 하니 몽롱한 기분 속에서 계속 신경을 곤두세웠다. 중간에 목이 마르면 물을 마시고, 집에서 준비해 간 오렌지와 사과를 먹었다. 병원에 저녁 식사를 신청해서 흰밥에 소고기피망볶음, 두부조림, 깍두기, 나물 등이 나와 조금 먹었다. 저녁 식사 시간 이후로는 포도당 주사를 맞았다. 항암제를 싹 씻어주는 역할을 한다고 했다. 포도당까지 다 맞고 나니 저녁 7시 반이 됐고, 몽롱한 정신으로 집에 도착했다. 도세탁셀의 대표적인 부작용은 근육통과 손발 저림, 부종 등이다. 3일째 되던 날부터 나는 근육통과 부종이라는 부작용을 제대로 경험했다. 무릎과 엉덩이뼈를 누군가 큰 망치로 두드리는 것 같은 통증에 나는 울기만 했다. ‘완전관해’만 될 수 있다면 어떤 부작용도 견딜 수 있다던 나는 어디로 사라진 것인지…. 통증이 낯설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출산 전 진통할 때 그때 그 통증과 비슷하다. 아이가 나오기 직전, 내 온몸이 쩍쩍 벌어지면서 느꼈던 그 통증. 말로 설명할 수 없던 그 고통이 다시 느껴졌다. 식은땀도 많이 흘렸다. 얼굴이 노란빛으로 변했는데, 아들이 “엄마는 구운 달걀 같아”라고 말했다. 입맛 변화도 여지없이 왔다. 밥상 앞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고, 꾸역꾸역 밥을 먹고 나면 너무 서러웠다. ‘아, 옛날로 돌아가고 싶어. 무엇이든 먹을 수 있던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 그때가 너무 그리워.’ 밥을 먹고 나서 식탁 앞에 앉아 있다가 구슬 같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다. “엄마, 왜 울어? 많이 아파?” “엄마, 갑자기 왜 울어?” 딸과 아들이 물었다. 아무 말도 나오지 않고 그저 눈물만 나왔다. 아이들 앞에서는 애써 태연한 척했는데, 이날은 아이들이 있든 말든 눈물이 나왔다. “너희 엄마 너무 힘들어서 눈물 나오나 보다. 밥맛도 없고 너무 아프니까 우는 거지. 엄마가 너무 힘들어. 얘들아…. 지금…. 이번 항암약이 너무 독하다….” “와~ 이제까지 이렇게 운 적 없었잖아. 엄마도 외할머니 있으니까 어리광 부리는 거 아냐? 엄마도 엄마의 엄마 앞이니까 어리광 부리는 것 아니냐고. 엄마 울지 말고 원하는 것 있으면 말해봐. 내가 들어줄게. 응? 뭐든 말해봐. 내가 들어줄게.” 피식, 아들의 말에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 어린 아들의 눈엔 엄마도 할머니 앞에서 한없이 약해지고 어린아이처럼 어리광을 부리는 것처럼 보이나 보다. 평소엔 약간 무덤덤하고 무뚝뚝하던 아들이 무슨 소원이든 들어주겠다는 것도 귀엽고 정다워 웃음이 나왔다. 아들 덕분에 울음이 잠깐 멈췄다. 그런데 방 안에 있던 남편이 나와 한마디 다시 하니 또 눈물이 주르륵…. 내 눈 어딘가에 눈물 저장고가 있는 것은 아닐까. 마치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 눈물이 시도 때도 없이 콸콸 흘러넘쳤다. 가족 위로와 먹방 프로가 친구 구실
‘과거로 돌아간다면’ 제목 일기에
“내게 운동과 쉴 시간 허락할 것”
 음식을 감탄하고 먹기까지
“애고… 생전 안 하던 짓도 하고… 많이 아픈가 보다…. 며칠만 지나가면 괜찮아질 거야. 조금만 참아. 좀 주물러줄까? 자~ 어깨랑 머리 주물러줄게.” 먹는 것이 고역인 암환자에게 가장 좋은 친구는 ‘먹방’이다. 항암 부작용으로 힘들어 한방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을 때, 나도 비로소 ‘먹방 월드’에 입성했다. 집에서는 친정엄마가 도끼눈을 뜨고 내 앞에 앉아 밥숟가락을 다 뜰 때까지 지켜보고 있어 밥을 먹었다면, 병원에서는 ‘먹방’을 틀어놓고 최대한 상상력을 발휘해 숟가락을 들었다. ‘골목식당’, ‘수미네반찬’, ‘펀스토랑’, ‘맛남의 광장’ 등등 ‘먹방’은 얼마나 다채롭고 끝이 없던지…. 음식을 보며 진심으로 감탄하고 환호하고 맛을 즐기는 텔레비전 속 사람들…. 더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기 위해 이런저런 고민을 하고 아이디어를 내는 사람들…. 과거엔 그런 사람들을 보며 지나치게 먹는 것에 집착하는 것 아닌가 하는 비판적 생각을 했고, 먹방은 상업적이라고 내 멋대로 재단했다. 그런데 암 진단 뒤 혀의 감각을 잃고 매끼 챙겨 먹는 일이 고역이 된 뒤 먹방을 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나는 이제껏 저렇게 음식을 보며 감탄하며 먹은 적 있던가?’ ‘나는 나의 입과 혀를 즐겁게 하기 위해 저렇게 고민하고 아이디어를 내본 적 있던가?’ 그동안 내게 식사 시간은 감탄의 대상은 아니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 해야만 하는 일들을 하려면 매 끼니를 빨리 해치워야 했다. 따라서 식사 시간은 내 시간을 빼앗는 무엇이었다. 취재원과 식사를 하는 경우도 많았는데 음식보다는 취재원의 말에 귀를 쫑긋 기울여야 하므로 음식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나 식사 시간은 내 일상에서 얼마나 중요한 시간이었던가. 내가 먹는 것들이 내 세포를 만들고 내 몸 구석구석에 가서 내 몸과 마음이 잘 작동하도록 해주고 각종 질병으로부터 나를 막아주는 병사 역할을 해준다. 그 고마운 음식을 감탄하며 바라보고 매끼 맛을 음미하며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친정엄마가 정성 들여 보내준 음식들을 제대로 챙겨 먹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어느 순간부터 아침도 선식으로 대충 때우고, 점심도 건성건성 먹고, 저녁은 맥주와 치킨 등으로 대신했던 내 식생활에 대한 후회가 수시로 밀려왔다. 채소가 몸에 좋다는 걸 알면서도 제대로 챙겨 먹지 않았고, 간단하게 고기를 구워 먹거나 햄을 넣은 볶음밥 등으로 한 끼를 대충 때우고 외식을 많이 했던 지난날을 반성했다. 잘못된 식생활은 후회가 된 반면, 아무 음식이나 먹을 수 있었던 자유로움은 미치도록 그리웠다. 그렇게 과거를 반성하며 또 한편으로는 그리워하며 그 힘든 시기를 통과했다. 어쨌든 끝은 있으니까. 이제 항암 두 번만 더 하면 힘든 ‘항암산’ 등반도 끝낼 수 있으니까. 채식 위주로 매끼 정성스레 먹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기
이것이 내가 나를 사랑하는 방식
 다시 이 고통을 겪지 않기 위해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면, 자연식으로 몸에 좋은 음식들을 찾아 누구보다 맛있게 감탄하며 먹을 자신이 있다. 사랑하는 가족, 좋아하는 지인들과 좋은 음식을 먹고 즐거운 대화를 나누는 일을 더 중요하게 생각할 것이다. 잠까지 줄여가면서 일을 하고 책을 읽고 그렇게는 하지 않을 것이다. 낮에 깨어 있는 시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밤잠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사수할 것이다. 단 30분이라도 반드시 운동을 하고, 일주일에 한 번은 온전히 나 혼자 있는 시간을 마련해 나에게 쉬는 시간을 허락할 것이다.” 5~6차 항암을 하면서 시도 때도 없이 울 때 내 일기장에는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면’이라는 제목으로 이런 글이 쓰여 있다. 작년과는 다르게 올해 내 입맛은 돌아왔다. 더는 음식이 흙맛이 아니고, 그렇게 고통스럽던 근육통도 부종도 이제는 없다. 내 몸에서 암덩이도 떼어냈고, 다시 새롭게 내 몸을 정비하고 있다. 라면이나 짜장면, 떡볶이, 고기, 햄 등을 자주 먹었던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이제 더 나은 현재와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는 선택권은 내게 있다. 그래서 나는 매 끼니를 정성스럽게 챙겨 먹고 한끼 한끼 감탄하며 감사해하며 먹고 있다. 싱싱한 양상추와 무순, 새싹 채소, 루콜라, 브로콜리 등을 섞은 샐러드에 키위나 파인애플, 망고 등을 갈아 만든 과일드레싱을 얹어 매일 두 접시 이상 챙겨 먹는다. 참나물, 두릅, 비름나물, 냉이, 방풍나물 등과 같은 다양한 봄나물을 보약 먹듯 먹는다. 시금치, 콩나물, 고사리나물을 해놓고 고추장에 비벼 맛있는 비빔밥을 만들어 먹는다. 암 치료 관련 책들을 보면 한결같이 채소를 많이 먹으라고 강조한다. 대사 치료의 대가 나샤 윈터스 박사는 저서 <대사치료 암을 굶겨 죽이다>에서 암 치료에 있어 채소 섭취가 중요한 이유는 채소의 식물영양소가 디엔에이(DNA) 손상을 예방하고 결함이 있는 디엔에이를 복구시켜주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암이라는 질병은 돌연변이 세포가 발생해 통제 불가능하게 분열하고 신체 여러 부위로 퍼져나가는 것이 특징이다. 돌연변이 세포가 생기지 않도록 디엔에이 손상을 예방해주는 채소를 평소 많이 챙겨 먹는다면 자연스럽게 암을 예방할 수 있다. 윈터스 박사는 특히 십자화과 식물을 추천하는데, 십자화과 식물로는 브로콜리, 양배추, 콜리플라워, 콜라비, 무 등이 있다. 십자화과 식물은 우리 몸에서 잠재적인 발암물질을 제거하고 종양억제 유전자의 작용을 강화해준다고 한다. 주변 환우들을 보면, 해독주스(사과+당근+토마토+브로콜리+양배추) 등의 형태로 브로콜리를 섭취하거나 브로콜리를 데쳐 초고추장에 찍어 먹거나 샐러드에 데친 브로콜리를 넣어 먹는다. 나 역시 이런 방법들로 브로콜리 섭취량을 늘리고 있다. 2018년 질병관리본부가 공개한 ‘우리나라 성인에서 만성질환 질병부담에 기여하는 식품 및 영양소 섭취 현황과 추이’ 보고서를 보면, 25~74살 성인들의 채소 섭취량은 남자가 263g, 여자가 219.9g으로 하루 권고 기준인 340~500g에 못 미쳤다. 암을 예방하고 싶다면 당장 채소 섭취를 의도적으로 늘려야 한다.
양선아 기자
양선아 기자
과거엔 구운 고기를 좋아했지만 이제는 자주 먹지 않는다. 고기를 먹더라도 수육 형태로 상추나 깻잎 등에 싸서 소량 먹는다. 외식을 해야 할 일이 생기면 고기나 밀가루 메뉴보다는 각종 채소가 든 비빔밥이나 해물 종류를 선택해 먹는다. 사랑하는 가족, 동료, 친구들과 좋은 음식을 먹고 즐거운 대화를 나누기 위한 시간을 그 어떤 시간보다도 소중하게 생각한다. 스마트워치를 활용해 수면 패턴을 확인하고, 될 수 있는 한 하루 6~7시간은 푹 자려고 애쓴다. 땀을 흘릴 정도로 운동을 매일 하고 있다. 다시는 항암의 고통을 겪고 싶지 않은 나는 건강한 생활 습관을 머리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매일 실천하고 있는 중이다. 이것이 내가 나를 사랑하는 방식이다.
▶ 2020년 연말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18년 국가암등록통계를 보면, 암 치료를 받고 있거나 완치 판정을 받은 ‘암 유병자’가 2018년 기준 200만명을 넘어섰다. 국민 다수가 자신 또는 가족이 암 환자가 되는 경험을 한다. 2019년 말 암 진단을 받고 치료 중인 <한겨레> 사회정책팀 양선아 기자(anmadang96@kakao.com">anmadang96@kakao.com)의 체험기를 격주로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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