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국민의힘 당대표 경선에 출마한 이준석 후보가 지난 25일 서울 마포구 누리꿈스퀘어에서 열린 국민의힘 제1차 전당대회 비전발표회에서 비전을 발표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정치권에 모처럼 젊은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36살 청년인 이준석 전 최고위원의 기세가 드센데요. 국민의힘 중앙당 선거관리위원회는 28일 당대표 예비경선에서 이 전 최고위원을 포함한 후보 5명이 본경선에 진출(탈락은 3명)했다고 밝혔습니다. 후보별 예비경선 득표율과 순위를 공식 발표하지 않았지만, 여론조사와 당원조사를 절반씩 섞은 조사에서 이 전 최고위원의 전체 지지율이 40%를 넘긴 1위를 차지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특히 일반 국민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에서는 지지율 50%를 넘긴 것으로 전해집니다. 안녕하세요. 국민의힘을 비롯한 보수야당을 취재하는 정치팀 장나래입니다. 정치권을 강타하고 있는 ‘이준석 돌풍’은 대체 어디서 불어오는 바람인 걸까요? 세대교체 바람이 본경선까지 이어진다면 헌정사상 처음으로 유력 정당에 ‘30대 청년 대표’가 탄생하게 됩니다. 기성 정치인에 대한 실망과 쇄신·변화에 대한 바람이 이 전 최고위원을 향한 기대로 표출됐다는 분석에 무게가 실립니다. ‘수구 꼰대 정당’의 이미지를 변화시킬 상징적 인물이라는 것이죠. ‘왜 하필 이준석이냐’를 설명할 때, 인지도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는 26살에 정계에 입문했습니다. 국회의원만 세번 내리 낙선했지만, 당 비상대책위원과 최고위원 등을 거치며 정치 경력은 10년을 넘습니다. 각종 방송 출연에서 거침없는 말솜씨를 과시해온데다, 활발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활동으로 대중적 인지도를 끌어올렸습니다. 국회 원내 입성한 적이 없던 터라 ‘0선 중진’이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김은혜, 김웅, 윤영석 등 예비경선에서 컷오프된 다른 초선 의원들과 견줘 압도적인 성적표를 받아든 것도 이런 영향으로 보입니다. 이 전 최고위원은 새누리당 시절 최연소 비상대책위원으로 발탁된 ‘박근혜 키즈’였지만 당 지도부를 향해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에는 바른정당-바른미래당-새로운보수당을 거치며 유승민계로 상징되는 개혁보수세력의 일원으로 입지를 다졌습니다. 물론 이 전 최고위원의 행보가 비판받는 대목도 뚜렷합니다. 20대 남성 표심몰이에 집중해 젠더 갈등을 부추기는 ‘노이즈 마케팅’을 활용했다는 비판을 받아왔습니다. 4·7 재보선 이후 ‘여성할당제 폐지’를 내세워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와 페미니즘 설전으로 남녀 편가르기 논란의 중심에 섰죠. 그럼에도 최근 여론조사에서 이 전 최고위원에 대한 여성 지지율이 상승한 데는 기성 정치권 교체 욕구가 반영됐다는 의견이 있지만, 예비경선 과정에 젠더 의제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영향이란 분석도 나옵니다. 실제 국민의힘은 이번 예비경선 조사에서 20~30살 여성에게 할당된 표본조차 제때 채우지 못해 경선 결과 발표를 하루 늦추기도 했습니다. 보름 앞으로 다가온 본선에서도 이준석 바람이 이어질 수 있을까요? 투표 비중이 전체의 70%까지 확대되는 당원 표심이 승부를 가를 것이란 관측입니다. 이 전 최고위원은 예비경선 당원투표에서도 31%를 기록하며 나경원 전 의원(32%)과 단 1%포인트 차이 선전을 했습니다. 당심도 민심을 따라간다는 지표로 볼 대목입니다. 더불어민주당이 대선 승리를 위해 영남 후보를 내세웠던 것처럼, 국민의힘도 정권 탈환을 위해 ‘확 젊어진 당대표’를 내세울 수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당원들 사이에 내년 대선 승리를 위해 안정감과 경륜을 갖춘 당대표를 선호하는 욕구가 높은 것도 사실입니다. 중진 주자들은 “국회의원 경험이 없는 30대 청년에게 정권교체 시기 당대표를 정말 맡길 수 있냐”며 이 전 최고위원을 공략하고 있습니다. 나 전 의원은 본경선 주자가 확정된 이날 “정권교체 리더십은 변화만으로는 안 된다”고 했고, 주호영 의원은 “(나처럼) 이긴 선거를 해봤던 사람에게 (대선을) 맡기는 게 좋지, 실패했던 사람은 위험 부담이 있다”고 견제구를 던졌습니다. ‘젊은 돌풍’은 보수야권을 넘어 정치권 전체 화두로 번지고 있는데요. 여당인 민주당도 두려움과 부러움을 감추지 못하는 분위기가 뚜렷합니다. 이 전 최고위원이 당선되면 송영길 민주당 대표와 무려 22살 차이가 나는데, 이들이 나란히 선 ‘투샷’ 장면은 어떨까요? 보수야당이 쇄신 이미지를 선점하는 구도로 간다면 여권으로선 대선에 큰 악재가 될 수 있습니다. 이 전 최고위원의 당선 여부와 상관없이 ‘세대교체 물결’ 자체가 대선 판도를 흔들 것이라는 분석도 나옵니다. 신율 명지대 교수(정치외교학과)는 “경선에서 돌풍의 파격과 충격만으로 9개월밖에 남지 않은 대선 판도에 큰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민주당도 ‘세대교체론’을 꺼내들 수 있지만, 갑자기 젊은 리더를 키워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짚었습니다. 이준석 현상은 과연 보수야당의 세대교체 바람을 넘어 정치권 전체에 낡아버린 패러다임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까요.
장나래 정치팀 기자 w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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