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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평화' 재가동, 대단한 기회의 창 열려 한미 대북접근법 완전한 일치? 현명하게 풀어야 - 한겨레

정세현·문정인 특별대담
한미정상회담 이후 한반도 정세
문정인 세종연구소 이사장(왼쪽)과 정세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이 지난 27일 서울 중구 민주평통 사무실에서 ‘한-미 정상회담 이후 한반도'를 주제로 대담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문정인 세종연구소 이사장(왼쪽)과 정세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이 지난 27일 서울 중구 민주평통 사무실에서 ‘한-미 정상회담 이후 한반도'를 주제로 대담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정세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민주평통) 수석부의장(전 통일부 장관)과 문정인 세종연구소 이사장(전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별보좌관)은 <한겨레> 특별대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한 회담에서 큰 성과를 거뒀다고 호평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남북 협력 지지”를 공동성명에 명시한 사실을 특히 중요한 성과이자 대북 신호로 꼽았다. 다만 두 원로는 한-미 정상회담의 성과가 남북, 북-미 관계 개선 등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재가동으로 이어지려면 추가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세현 수석부의장은 “구슬이 서 말은 된다. 그런데 꿰어야 보배”라며 “북이 호응해 나올 수 있는 매력적이고 구체적인 메시지가 없다”고 짚었다. 문정인 이사장도 “총론적인 그림은 잘 그려졌는데 각론적인 인센티브가 하나도 없다”고 평했다. 이들 모두 ‘8월 한-미 연합군사연습’ 강행 또는 취소·중단 여부가 한-미 정상회담 이후 한반도 정세를 가를 핵심 가늠자가 되리라고 봤다. 대담은 27일 오후 서울 중구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실에서 이제훈 선임기자의 사회로 1시간30분 남짓 이어졌다. 사회 문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의 첫 회담에서 나온 대북 메시지를 분석·평가한다면? 정세현(이하 정) “바이든 대통령이 남북 대화와 관여, 협력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는 공동성명 문구가 확 눈에 띈다. 그 문장을 보고 ‘한-미 워킹그룹은 끝났구나’라고 생각했다. 과거에는 ‘한-미 워킹그룹’이 우리의 발목을 잡았다. 바이든 정부에서는 잘하면 남북 관계가 한 발짝 앞서가며 북-미 관계 개선을 유도하고, 북핵 문제 해결의 디딤돌을 놓을 수 있겠구나 싶다. 그런 점에서 이번 정상회담이 잘됐다고 생각한다. 문정인(이하 문) 문 대통령이 그 문구를 근거로 유엔 제재 결의를 위반하지 않는 한 남북 관계에서 치고 나갈 수 있는 것 아닌가. 정부가 얼마나 결기 있게 하느냐가 관건이겠지만, 우선 그걸 미국 대통령이 동의를 표해줬다는 사실은 상당히 의미가 있다. 다만 “대북 접근법이 완전히 일치되도록 조율”이라는 공동성명 문구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의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다툼의 여지는 있겠지만 두 정상이 기본 틀을 짜놨기 때문에 미국 쪽에서도 많이 수용을 해줄 것이다. 문 이사장이 이미 지적했지만 미국이 ‘완전한 조율’이라는 명분하에 우리 발목을 잡을 가능성도 있다. 정부는 바이든 대통령이 지지한 것이 한-미 간 대북 정책의 기본 원칙이 되게 해야 한다. 사회 북이 일주일 넘게 공식 반응을 내놓지 않고 있는데. 미동도 없는 걸 보면 조금 북한 성에 차지 않는 것 같다. 북한 쪽에서 불만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북의 실질적 협상 대상자는 미국인데, 내가 북이라면 바이든 대통령의 대북 구상을 지금으로선 가장 잘 아는 남쪽과 비공식적으로라도 우선 접촉을 해서 미국의 생각이 뭔지 좀 물어봐야 될 것 같다. 북이 한·미 정상의 구체적 논의 내용을 굉장히 궁금해할 것이다. 그런데 북한 사람들이 먼저 와서 설명해달라고 할 넉살은 없다. 코로나19 상황이라 특사 파견은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고, 우리가 먼저 판문점에서 만나 설명을 하겠다고 물밑으로 전달하면 그쪽에선 아마 ‘불감청고소원’(청하지 못하지만 바라던 바)이라는 식으로 나오지 않겠나. 우리가 반드시 그 정도는 해야 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으로선 이번 한-미 정상회담 결과를 어떻게 활용할지가 실존적 문제이고, 상당히 중요한 전환점을 마련할 수 있는 계기라 신중을 기하는 듯하다. 남북이 조기에 판문점에서 만나면 좋은데, 기왕이면 정상 만남이 제일 좋다. 그런데 지금 시간이 없다. 북이 빨리 (협상장에) 나와야 한다. ‘8월 한-미 연합군사연습’ 얘기가 늦어도 7월부터는 나오기 시작할 것이다. 북이 움직이지 않으면 우리가 훈련을 일방적으로 중지하자고 미국에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북이 전향적으로 움직여야 8월의 어려운 고비를 넘기고, 문재인 정부의 남은 임기 동안 남북 사이에 뭔가 만들 수 있다. 결국 골든타임은 6월 한달이다. 그런 일정을 아마 북도 감지하리라 본다. 6월 상순 중에 우리 쪽에서 먼저 움직여야 한다. 문 대통령이 5당 대표를 만나 코로나19 때문에라도 한-미 훈련을 정상적으로 하기 어렵지 않겠느냐고 운을 뗀 사실에 주목한다. 우리가 강하게 주장하고 밀어붙이면 미국도 거기에 호응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지금 한-미 훈련을 강행하면 문재인 정부 임기 중에 남북 관계는 희망이 없다고 본다. 사회 한-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에 사상 처음 대만해협이 명기됐다. 미-중 전략 경쟁 구도 속 한-중 관계를 짚어본다면? 미국 요구를 거절하기 참 어려웠을 거다. ‘중국’을 명시하지 않고 대만해협이라고 쓴 것만 해도 우리가 굉장히 노력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중국에서 바로 (비판하는) 반응이 나왔다. 그래도 중국이 한-중 관계의 특수성을 모를 리 없다. 대만해협은 우리 신남방 정책이 중국의 일대일로 구상과 만나는 연결 통로가 아닌가. 그런 면에서 한-중이 협력할 여지가 있다고 중국을 잘 설득해야 한다. 우리가 조심해야겠지만, (이번 일이 한-중 관계를 악화시킬) 산불로 번지지는 않을 것이다.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하나의 중국’ 원칙과 관련한 정부 정책에 변화가 있다면 중국이 사드 보복 이상의 조처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유지하고 있고, 대만해협의 평화·안정 유지 필요 언급은 중국뿐만 아니라 대만과 미국한테도 하는 소리다. 누구든 평화를 깰 정도로 과하게 하지 말라는 우리의 의지가 들어가 있는 표현이다. 사실 이는 양체츠 정치국원과 왕이 외교부장도 모두 미국에서 사용한 표현이 아닌가. 기본적으로 ‘한-미 동맹, 한-중 전략적협력동반자 관계 병행’이라는 정부의 기조는 트럼프 행정부 때에 비해 달라진 게 없다. 일부 언론이 이번에 문재인 정부가 드디어 친미로 갔다고 얘기하는데,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 일부 언론은 대미 편중을 확실히 해야 한다고 하는데, 우리는 대미 편중만 해서는 살 수 없는 처지다. 그건 미국도 알 것이다. 지정학적 특수성과 한-중의 밀접한 경제협력 관계 탓에 우리는 도리 없이 미-중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는 외교를 할 수밖에 없다. 그게 국익에 부합한다. 사회 한-미 정상회담에서 첨단산업·과학·기술 분야 협력이 한-미 동맹의 핵심 영역으로 급부상한 느낌이다. 동맹의 성격 변화가 있다. 일방향적인 수혜 동맹에서 쌍방향적인 호혜 동맹으로, 군사·안보 동맹에서 비군사 분야를 아우르는 포괄 동맹으로, 한반도를 넘어 전세계적 차원으로 뻗어가는 전략 동맹으로 변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경제 동맹’은 아니어야 한다. 경제 동맹을 지향한다는 것은 배타적 경제블록으로 간다는 뜻이다. 문재인 정부는 기본적으로 다자주의와 협력과 통합의 열린 지역주의를 표방해왔다. 앞으로도 이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경제·과학기술 분야의 한-미 협력 긴밀화가 경우에 따라선 군사동맹과 밀접하게 연결되는 식으로 흐를 수도 있다고 본다. 일찍이 김대중 대통령이 말씀하신 대로 “우리는 도랑에 든 소가 양쪽 둔덕의 풀을 뜯어 먹는 것과 같은 외교를 미-중 사이에서 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분야의 협력이 경제 동맹화하고 결국 군사 동맹과 한 덩어리로 뭉쳐 돌아가면 유연한 외교를 할 수 없게 된다. 그런데 44조원을 주고 코로나19 백신 55만 도스밖에 못 얻어왔다는 정치인과 언론도 있더라. 시장경제 체제에서 기업이 국가이익을 위해 손해 보는 거 봤나? 말이 안 되는 소리다. 백신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포괄적 한-미 글로벌 백신 파트너십” 구축은 애초 우리 쪽 아이디어다. 바이든 대통령이 이번 정상회담에서 가장 만족해하면서 문 대통령의 진정성과 창의성을 높이 평가한 것도 바로 이 대목에서다. 사실 지금 미국이 ‘백신 이기주의’라고 세계로부터 엄청난 비판을 받고 있다. “(야당이 지자체장을 맡은) 서울·부산·제주도만이라도 백신을 주면 좋겠다”고 청했다는 어느 정치인의 말은 윤리적으로 옳지 않을뿐더러 미국의 처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행보다.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을 복원하고 다자 외교를 중시한다면서도 미국인부터 백신을 접종한 바이든 대통령의 곤혹스러운 처지를 정확하게 간파하고 대안을 제시한 게, 바로 한국에 생산거점을 만들어 국제사회의 공공재로 쓰자는 ‘백신 글로벌 파트너십’이다. <시엔엔>(CNN) 보도를 보면 결국 바이든 대통령이 문 대통령한테 감명받은 게 그 제안 때문이라고 한다. 외교의 격이 달라 보인다. 백신 스와프가 80점이라면 백신 파트너십은 1000점짜리다. 사회 마무리 당부 말씀 부탁한다. 한국의 대외관계사에서 큰 의미가 있는, 북한식으로 표현하자면 ‘사변적 사건’(epochmaking event)으로 기록될 만한 정상회담이라고 본다. 한국의 국격이 확 올라갔음을 확인한 회담이다. 특히 남북 관계 측면에서 미국 대통령이 직접 자기 입으로 남북 협력을 지지한다고 밝히게 한 건 상당히 큰 성과다. 이걸 우리가 ‘완전한 조율’ 논리의 포로가 되지 않고 줏대 있게 풀어간다면, 2018년 봄처럼 한국 정부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촉진자 구실을 다시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대단한 기회의 창이 열렸다. 한-미 정상회담 준비 과정에서 미국과 한국의 초기 구상에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고 한다. 그걸 우리가 아는 회담 결과로 만들어낸 데에는 문 대통령의 진정성과 바이든 대통령의 동맹 배려는 물론, 치열한 협상을 한 청와대 안보실과 외교부 팀의 노력도 크게 기여했다. 역대 한-미 정상회담 중에서 가장 성공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만 미완의 과제가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선 대북 접근법에서 “완전히 일치된 조율”, 이게 앞으로 어떻게 작동할지, 미국과 완전한 조율이 안 됐을 때 한국 정부가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지 깊이 고민해야 한다. 둘째, 미-중 갈등의 와중에 우리가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도 큰 과제다. 김지은 기자, 이제훈 선임기자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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