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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년 전, 가장 뜨거웠던 유월…“사람도 100도씨가 되면 끓어” - 한겨레

[토요판] 재미로 6월 항쟁 만화 ‘100℃’ ‘1987 그날’
‘6월 민주항쟁’의 징검다리 구실을 했던 이한열 열사 장례식이 뜨거웠던 1987년 7월 열렸다. 서울시청 앞에 시민 100만여명이 모여 독재 타도와 민주 쟁취를 외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6월 민주항쟁’의 징검다리 구실을 했던 이한열 열사 장례식이 뜨거웠던 1987년 7월 열렸다. 서울시청 앞에 시민 100만여명이 모여 독재 타도와 민주 쟁취를 외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물은 100도씨가 되면 끓는다네. 그래서 언제쯤 끓을지 알 수 있지. 하지만 사람의 온도는 잴 수가 없어. 그래서 지레 겁을 먹기도 하고 ‘원래 안 끓는 거야’ 하며 포기를 하지.” 최규석의 <100℃>(창비)는 우리 현대사가 99℃에서 100℃를 넘었던 1987년 6월을 그린 만화다. 평범한 사람들을 총으로 칼로 죽이고, 쿠데타로 대통령이 된 전두환이 장기집권을 하던 때였다. 서울로 대학 공부 하러 온 주인공 영호는 선배들과 함께 건국대에서 열린 전국반외세반독재애국학생투쟁연합(애학투) 결성식에 참석했다가 철창 안에 갇힌다. 실제 배경이 된 1986년 10월 이른바 ‘건국대 사태’ 때, 전국 26개 대학생 2천여명이 “독재 타도” 등을 요구하다가 1525명이 경찰에 연행돼 1289명이 구속됐다. 어머니는 울고, 아버지는 “자식 새끼를 빨갱이 만들었다”며 자책한다. 이듬해 1월, 민주화운동을 하던 서울대생 박종철이 치안본부 대공수사단에 연행돼 조사받던 도중 물고문으로 숨졌다. 경찰은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이들을 또 잡아가고, 고문했다. 군인들이 독재를 하며 대통령 자리를 물려주는 게 가능했던 시절이다. 전두환은 ‘1987년 4·13 호헌(기존 헌법을 유지) 조치’에서 “현행 헌법에 따라 내년 2월25일 본인의 임기 만료와 더불어 후임자에게 정부를 이양할 것을 천명”했다. 군인 친구 노태우를 후임자로 정했다. “호헌 철폐, 독재 타도”를 외치던 시민들이 탄압받고, 구속됐다. 영호는 함께 수감됐던 ‘선생님’에게 이 싸움이 “정말 이길 수 있는 건지, 끝이 있긴 있는 건지 모르겠다”고 힘겹게 토로한다. 이런 답이 돌아온다. “사람도 100도씨가 되면 분명히 끓어. 그것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네. 지금이 99도다, 그렇게 믿어야지.” “우리 영호가 빨갱이가 된 겨”라며 울먹이던 어머니는 어느덧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 활동을 시작한다. 영호를 대학 보내려 공장에 취업했던 누나는 회사가 무너뜨렸던 노동조합을 다시 세우려 나선다. 전체 민주 진영도 일대 반격을 시작한다. 유승하의 만화 <1987 그날>(창비)에 이 과정이 자세히 그려져 있다. 5월27일 서울 향린교회에서 야당과 재야 민주화운동단체, 종교계, 여성계, 법조계, 민가협 등 거의 모든 민주화 세력이 연합한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국본)가 발족했다. “파헌철 군독타”(파쇼헌법 철폐하고, 군부독재 타도하자)를 외치는 목소리가 고조된다. 드디어 6월10일. 전국민적인 ‘고문살인 조작규탄 및 호헌철폐 국민대회’가 열린다. 이날은 여당이던 민정당이 서울 잠실실내체육관에서 노태우를 대통령 후보로 선출하는 날이었다. 당시 국본이 마련한 6월10일 행동요강을 보면, “①오후 6시 전국민은 있는 자리에서 애국가를 제창하고, ②자동차는 경적을 울리고, ③전국 사찰·성당·교회는 타종을 하고, ④국민들은 형편에 따라 만세삼창을 하든지 11분간 묵념을 함으로써 민주쟁취 결의”를 다지도록 했다. 국민대회를 하루 앞둔 9일 21살 연세대생 이한열이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고, 27일간 뇌사 상태 끝에 숨을 거두는 일이 벌어졌다. 사람들이 매일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택시기사들은 차를 몰고 경적부대 구실을 했다. “군부독재 타도하자”, “고문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같은 펼침막이 거리를 메웠다. 6월26일엔 전국에서 100만여명이 민주헌법 쟁취를 위한 국민평화대행진에 나섰다. 결국 6월29일 노태우가 대통령 직선제 개헌과 민주화 조치 실현 등 시국 수습을 위한 특별선언(6·29 선언)을 냈고, 이어 7월1일 전두환이 이를 수용한다. “사람들은 끝도 없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잡아가도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뛰쳐나와 소용이 없습니다. 거리로 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은 창문으로 휴지며 손수건을 던져주고 상인들은 팔아야 할 것들을 잔뜩 퍼다줍니다.”(<100℃>) 지금은 상상조차 어렵지만, 독재 군부가 목숨을 건 국민적 저항에 항복한 게 불과 34년 전 일이다. 이 만화들에 30분 정도만 시간을 쓰면, 누구나 우리 역사의 가장 뜨거웠던 한 장면을 되새길 수 있다.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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