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 반란’ 꿈꾸는 70년대생 정치인들
4·7 재·보선서 수많은 ‘선거 공식’ 깨져
정치권 주류 ‘86세대’ 자성·경청은 필수
미래세대 고려…투표 연령 16세로 하향
30대가 주축 돼 국가 전체 역량 높여야
폭풍 같던 서울·부산 시장 보궐선거가 끝났다. 이번 선거의 의미는 특정 정당의 승리와 패배로만 집약되지 않는다. 수많은 ‘선거 공식’이 깨졌다. 출구조사 결과를 보면 20대 이하 남성의 표심은 60세 이상 남성과 유사했다. 20대 이하 여성의 15%는 집권여당도 제1야당도 아닌, 다른 선택지를 골랐다. 민심의 저류에 깔려 있던 에너지가 방출되기 시작했다.
이제 주권자의 시선은 11개월 앞으로 다가온 대선을 향한다. 민심의 에너지가 어디로 흐를지, 지각이 얼마나 깊고 크게 흔들릴지 아직은 알 수 없다. 패자는 물론 승자도 긴장하고 쇄신해야 한다. 분명한 것은 진앙인 청년층을 외면하거나 비하해서는 어떤 유의미한 변화도 이끌어낼 수 없다는 점이다. 특히 정치권 주류인 ‘86세대(1980년대 대학 입학·1960년대 출생)’의 자성과 경청은 필수적이다.
18~20대 국회의원을 지낸 김세연(49)은 2019년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해체’를 촉구하며 21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그는 “우리 사회의 근본적 변화를 위해서는 830세대로의 급격한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830세대란 1980년대 출생·30대·(20)00년대 대학 입학 세대를 지칭한다. 또한 “(정치적) 의사 결정을 할 때는 공동체의 미래구성원들에 대한 고려를 해야 한다”며 투표 연령의 16세 하향을 촉구하고 있다.
20대 국회에 입성해 지난해 재선 의원이 된 박용진(50)도 세대교체론에 공감한다. 그는 “사법부는 과거에 벌어진 사건들을 심판하고 행정부는 현재의 일을 처리하고 오직 입법부, 즉 정치만이 내일을 준비하면서 미래에 대한 제도를 마련하는 일을 한다”며 청년들의 정치참여 필요성을 강조했다. 스스로 세대교체 깃발을 들고 대선 도전에 시동을 걸었다. 그가 더불어민주당 경선에 참여한다면 가장 젊은 도전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
민주노동당·진보신당을 거쳐 민주당에 몸담고 있는 박용진과 보수정당에서만 정치를 해온 김세연이 최근 우석훈 성결대 교수 진행으로 대담집 <리셋 대한민국>(오픈하우스)을 펴냈다.
지난 6일 경향신문사에서 두 사람을 만나 한국 사회 현안에 대한 진단과 해법을 들었다. 재·보선 결과에 대한 평가는 e메일을 통해 보충했다.
■“공동체 분열 풀려면 세대교체가 답…정당도 30대 대표 나와야”
더불어민주당 소속 재선 의원이다. 지역구는 서울 강북을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을 제기했다. ‘유치원 3법’ 국회 통과에 핵심 역할을 했다. 민주당의 쓴소리 4인방 ‘조금박해(조응천·금태섭·박용진·김해영)’의 일원이었다. 금 전 의원이 당을 떠나고 김 전 의원이 낙선하며 조·박 의원만 남았다.
전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의원이다. 부산 금정구서 3선을 했다. 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장과 국회 보건복지위원장을 지냈다. 현 국민의힘 당명이 자유한국당이던 2019년 “한국당은 존재 자체가 역사의 민폐”라며 당 해체를 촉구했다. 본인은 21대 총선에 불출마했다. ‘보수판 기본소득’ 연구에 천착하고 있다.
박용진과 김세연은 캐주얼 차림으로 나타났다. 박용진은 선거운동 막바지였고, 김세연은 여의도를 떠난 뒤 계속 이렇게 입고 다닌다고 했다. 두 사람은 카메라를 보라고 하면 어색해했다. 외려 서로 마주 볼 땐 자연스러웠다. ‘케미(케미스트리·호흡)’가 좋았다. 다음날(7일) 치러질 재·보선 이야기를 꺼내자 박용진의 얼굴이 굳어졌다.
- 현재까지 흐름만 놓고 보면 민심은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박용진(이하 박) = 국민이 민주당에 ‘종아리 걷어라, 회초리 한 대 맞자’는 거라고 봅니다. 인물론도, 정책 비교도 잘 먹히지 않는데요. 첫 번째 이유는 ‘민생 무능’입니다. 삶의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했어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정치는 성공적이란 평가를 받기 어렵습니다. 두 번째는 ‘내로남불’이에요. 민주당까지 이럴 줄 몰랐다는 실망감과 분노가 큽니다. 세 번째는 ‘개혁 부진’입니다. 야생마를 탄 무사 같은 모습을 기대했는데, 열심히 성벽에 기어오르더니 성 안에서 기득권에 취한 느낌인 거죠. 다시 말을 타려고 해도 허벅지에 살이 쪄 말을 못 타는 겁니다.
김세연(이하 김) = 부산에선 서울보다 좀 더 빨리 민주당 정권에 대한 지지를 철회한 분위기가 감지됩니다. 민주당 정권이 처음 들어섰을 때는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기대감을 불러일으켰는데, 지금은 기대가 아예 사라진 상황이지요. 경쟁하는 정당 입장에서 보면 반가운 일일 수 있겠지만, 국가공동체에는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닙니다. 야당이 망가지면서 견제와 균형이 무너지고, 정권은 브레이크 없는 폭주를 하는 상황이 되고 말았습니다.
민주당 참패·국민의힘 압승이란 결과가 나온 뒤 추가 답변을 들었다. 패자가 된 박용진은 “민심이 무섭다는 걸 말이 아니라 온몸으로 느꼈다”고 했다. 승리한 진영의 김세연은 “국민의힘도 오만해졌다가는 민심의 파도에 다시 엎어지는 운명이 된다는 걸 알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재·보선이 막을 내리면서 시민의 관심은 내년 3월 대선으로 옮겨가고 있다.
산업화·민주화로 반분된 세력
새 패러다임 논의 자체를 거부
X세대가 중간계투 맡고 넘겨야
- 차기 대선의 시대정신은 무엇이 돼야할까요.
박 = ‘행복국가’라는 표현을 쓰고 싶습니다. 복지국가와는 다른 개념입니다. 복지는 느닷없이 닥칠 수 있는 질병, 해고로부터의 ‘보장’을 의미합니다. 안심이다, 다행이다, 이런 뜻이죠. 행복국가는 대한민국 헌법 10조와 관련이 있습니다. 10조를 보면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돼 있어요. 국민의 권리만이 아니라 국가의 의무를 규정한 거죠. 우리 헌법에서 이 부분을 명시한 지 몇십년이 지났는데, 국가적 노력은 사실상 없었습니다. 모든 국민이 각자의 가치를 추구하고, 존엄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하는 국가적 노력이 필요합니다. 대한민국은 이제 이런 방향으로 가야 해요. 예전에는 뭘 하려고 하면 해외 사례부터 찾고, 없으면 못했습니다. 이제는 선례가 없어도 머리 맞대고 의논해서 가야 합니다. 그러려면 정치가 보다 창의적이어야 하고, 정치인들은 더 예민해져야 합니다.
김 = 우리 사회 문제 중에 단기간에 풀기 어렵고, 노력한 만큼 성과가 안 날 거라고 생각해서 다들 알면서도 건드리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공동체의 극심한 분열이죠. 저는 분열을 넘어 산산조각이 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공동체를 구성하는 여러 세부집단들이 있는데, 서로 너무나 이질적이에요. ‘제페토(대표적 메타버스 플랫폼)’에서 시간을 보내는 10대와 카카오톡·유튜브를 통해 정국을 이해하는 70대는 거의 대화가 안 될 겁니다. 그렇다고 20대와 60대는 대화가 될까요? 30대와 40대는 될지 모르지만 결이 같지는 않을 겁니다. 하나의 공동체로서의 정체성이 거의 실종된 상황이에요. 그래서 정치 리더십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기성세대가 젊은 세대를 존중하고, 역사의 주도권을 물 흐르듯 넘겨주는 배려와 양보의 자세를 취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합니다.
- 자원이 한정된 만큼, 세부집단 간 갈등은 불가피하지 않은가요.
김 = 파이를 키우는 방법을 찾아야지요. 블록체인이나 메타버스 기반의 새로운 공간이 열리고 있는데, 기존 의사결정권자들은 이 세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니까 가로막고, 세계적으로 앞서 나갈 기회를 막고 있어요. 기회의 창은 위험부담을 지고 미래에 도전하는 사람이나 국가에만 열리는데 말이죠. 결국에는 세대교체가 대안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기존 의사결정권자들은 생각을 바꾸기가 어렵습니다. 산업화세력과 민주화세력, 이렇게 반분된 진영 간 대립논리로 평생을 살아온 사람들한테 새로운 패러다임을 이야기해봐야 논의 자체를 거부하거든요. 기득권이 순식간에 허물어질 걸 감지하고 저항합니다. 과도기적으로는 X세대(1970년대생)가 중간계투를 맡되, 현재의 30대와 20대에게 주도권이 빨리 넘어갈수록 국가 전체의 역량이 잘 발휘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정당도 30대 당대표가 나와야 제대로 바뀔 수 있습니다. 언론사도 30대 편집국장, 보도국장이 나와야 해요. 그래야 시대 변화를 따라갈 수 있지, 지금처럼 하면 부적응 상태에서 못 벗어납니다.
한국이란 공화국, 조로 겪는 중
제도 설계 잘못한 비정규직 등
큰 틀서 기준·관점 재설정해야
정보 투명해지고 유통 빨라지며
시민과 정치인 관계도 달라져
‘의석 일부 추첨제’ 시도해 볼만
- 청년층은 현재 한국 사회의 불평등·불공정에 분노하고 있습니다.
박 = 제가 또래들보다 군대에 늦게 갔는데요. 그때 입대하면 ‘아버지가 군 간부면 이름 써 내라. 대학교수나 국회의원이면 그것도 써 내라’ 했어요. 지금은 상상도 못할 일이죠. 우리 사회가 보다 더 합리적으로 변화하고 평등한 사회로 가면서, 공정성에 대한 요구수준이 높아졌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불공정필망국(不公正必亡國)’이란 말을 자주 씁니다. 공정하지 못한 나라에서 누가 백성 노릇을 제대로 하겠습니까. 나는 군대 가는데, 돈 있고 ‘빽’ 있는 집 아들은 허리 아프다고 안 가고…. 이젠 못 참는 거죠. 우리 사회 발전의 정(正)방향이라고 봅니다. 이런 분노들이 모여 대한민국을 강하게 만들어갈 겁니다. 다만 혼란이 있고, 이해의 차이가 존재하는 만큼 새로운 기준을 만들고 안착시키는 게 중요합니다. 자신의 가치와 존엄이 훼손당했다고 느끼는 구성원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공정은 마이클 샌델의 철학적 논의가 아니라, 손에 잡히는 문제예요.
- 인천국제공항공사 정규직화 논란은 어떻게 봅니까.
박 = (정규직들이) ‘나는 이렇게 험난한 과정을 통해서 들어왔다’며 문제를 제기하는 것 자체를 틀렸다고 보지 않습니다. 다만 여기에서 공정성을 어떻게 확보할 거냐는 제도적 문제가 중요한 거죠. 제도적 불합리가 있으면 개선하면 됩니다. 우리 국민의 상식과 눈높이에서 봤을 때 개선해나가는 게 ‘손에 잡히는’ 공정입니다. 문제가 제기됐을 때 ‘비정규직의 역사도 모르냐’는 식으로 접근해선 곤란합니다.
김 = 과거 왕조시대 같으면 역성혁명이란 기제가 있었습니다. 신라 말기의 부조리를 타파하기 위해 후삼국시대를 거쳐 고려가 건국됐고, 고려 말의 부조리를 타파하기 위해 조선이 생겼지요. 그런데 공화국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한국은 공화국으로 공식 출범한 지 73년이 됐는데, 다른 나라들이 경제성장이나 정치민주화를 이룬 기간에 비해 두세 배 압축된 경험을 했습니다. 저출생 고령화도 세계에서 가장 빠르고요. 그만큼 조로(早老)를 겪고 있는 것이죠. 현재 각 분야에 누적된 병리현상을 보면 암울한 느낌이 들어요. 기득권세력이 새로운 기준을 허용하지 않고 있는데, 지금 큰 틀에서 기준과 관점을 재설정하지 않으면 상황이 더 어려워질 겁니다. 예컨대 비정규직은 고용이 불안한 만큼 처우를 더 두껍게 하는 게 맞는데, 제도 설계를 잘못해서 노동시장의 이중구조가 극심해진 겁니다. 그래놓고 해결하지 못하는 위선과 기만과 무능이 큰 문제지요.
- 격차 완화를 위한 해법이 있습니까.
김 = 자산소득 격차를 특정 수준까지 줄일 수 있는 국가 차원의 전략적 목표를 설정하는 게 현실적 해법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기준 같은 걸 목표로 삼을 수 있겠지요. 목표를 설정하고 나면, 그 목표를 향해 갈 수 있는 정책 조합을 실천해야 합니다. 목표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루는 것도 중요한 과정이 될 겁니다. 무엇보다 경제 생태계가 복잡계임을 받아들이고 다양한 정책적 실험을 시도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걸 하지 않는 건 지적 나태와 고민 부족이죠.
- ‘공정’ 이슈만큼 조명받지 못하고 있지만 여성·성소수자·외국인 노동자 등에 대한 차별·혐오도 심각합니다.
박 = 제가 어릴 때는 장애인이 잘 보이지 않았어요. 장애인이 없었던 게 아닙니다. 밖에 나오면 여러 사람이 불편해지니까 나오지 말라는, 보이지 않는 압력이 있었던 거죠. 지금 성소수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주위에 성소수자가 없는 게 아니에요. ‘나는 정체성이 다르다’는 이야기를 못하게 하는 분위기가 존재하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의 소수자, 약자들이 인권과 존엄을 보장받게 되면 사회 전체가 행복해집니다.
■“대선 시대정신은 ‘행복국가’…혁신은 뻔하지 않은 새 노선서 시작”
민생 무능·내로남불·개혁부진
‘기득권’ 민주당에 등 돌린 민심
‘척’ 말고 진짜 자성·변화해야
불공정에 대한 청년층 분노는
합리적 평등 사회로 가는 동력
철학 논의 아닌 제도로 풀어야
장애인 이동권을 보장하면서 지하철역에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가 의무적으로 설치됐거든요. 노인도, 어린이도, 임신부도 모두 행복해졌습니다. 정치인들이 차별금지법 입법을 위해 눈치 보지 말고 용기를 내야 합니다. 변희수 하사 (사망) 사건을 보면서 (성소수자들을)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는 것 아닌가 싶었습니다.
김 = 일제 치하에서 국가공동체 개념이 없어지며 민족공동체 개념이 도입됐습니다. 단일민족의식이 공동체를 하나로 묶어주고 독립운동의 중요한 발판 역할을 한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열린 민주공화국’ 시대입니다. 내셔널리즘은 아무래도 폐쇄성과 배타성으로 이어지기 쉽습니다. 인류 진보의 역사는 ‘인간이란 무엇인가’의 정의를 확장하는 역사였습니다. 장애인·성소수자 인권은 물론 종의 경계까지 넘어 동물권·식물권까지 확장되는 추세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인류 안에서 피부색이나 세부적 차이는 별다른 의미를 갖지 못합니다. 권리에 대한 인식의 확장을 통해 다양성을 확충하려는 노력이 절실합니다.
한국 사회의 여러 부문 가운데서도 정치는 특히 다양성이 떨어지는 분야로 꼽힌다. 주권자를 대리하는 국회는 주권자 구성과 전혀 닮아 있지 않다. 50대 이상·남성·성공한 엘리트들이 ‘과잉 대표’되고 있다. 청년과 여성의 대표성 확대에 대해 물었다.
박 = 기존의 제도 설계 자체가 청년·여성 등 신인의 진입 측면에서 불공정합니다. 국회의원들은 사시사철 후원금을 거둘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방의회 의원들은 후원금 거두는 조건이 까다롭습니다. 20~30대가 정치에 도전하려면 지방의회부터 시작하는 경우가 많은데 선거비용 때문에 어려움을 겪어요. 그리고 대통령 피선거권이 40세 이상, 국회의원 피선거권이 25세 이상으로 돼 있는데, 근거가 뭐죠? ‘애들은 가라, 너희들이 무슨 정치야’ 이런 사고가 반영된 겁니다. 청년의 정치 진출을 제도적으로 가로막고 있는 정치자금법을 개방적으로 바꿔야 하고, 피선거권 연령제한도 철폐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정당이 받는 국고보조금이 어마어마합니다. 우리 사회 대표자들을 육성하는 시스템을 만들라고 주는 겁니다. 그런데 기성 정당들은 청년들을 유세장에서 팻말 들고 분위기 띄우는 역할로 활용할 뿐이지, 의미 있는 자리를 주지는 않아요. 유럽에서는 15~16세부터 정치활동을 시작하고, 대학 때는 출마하고, 지역구도 정책적으로 배려하는 등 기회를 줍니다. 한국 정당도 국고보조금 받는 값을 해야 합니다.
김 = 대부분 정당에서 관성화된 DNA가 계속 복제돼오고 있거든요. 그래서 청년 참여를 위한 제도를 만들어도 이 DNA가 바뀌지 않는 한 제대로 실행되기가 쉽지 않습니다. 세대의 대표성을 인정받을 만한 분이 간혹 오기는 합니다. 하지만 대체로 구색 맞추기용으로 지도부에 순응할 수 있는 사람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어요. 큰 뜻을 품고 거대 정당에 들어가도, 결국은 생존을 위해 타협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되는 경우가 많아요. 젊은 나이에 망가지기도 하고요. 안타깝지요.
- 한국 정치에 대한 불신이 어제오늘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부끄러워할 줄 모르고, 책임지려고 하지 않는 ‘염치의 실종’이 더 심각해진 것으로 보입니다.
박 = 저를 비롯해 민주당이 국민께 부끄러운 점이 많습니다. 국민들께선 위선과 가식을 가장 싫어하시는 것 같습니다. 반성하지 않으면서 반성하는 척, 절박하지 않으면서 절박한 척하는 것이지요. 또한 정부의 잘못이나 우리의 잘못을 이야기할 때는 가볍게 넘어가고, 상대의 잘못을 이야기할 때는 엄청난 잘못인 것처럼 비판했는데, 여기에도 국민들이 동의하시지 않는 거죠. 자성하고, 변화하려고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김 = 정치인에 지나치게 관대했던 탓도 있습니다. 이중잣대를 적용하거나 거짓말을 하는 경우 다음 선거에서 철퇴를 내려야 하는데 그냥 넘어가고 용인하다 보니까 기준 자체가 약해지거나 무너졌습니다. 법과 제도의 문제라기보다 인간의 이성 회복에 기대할 수밖에 없습니다.
박용진과 김세연에게 같은 질문을 던지는 일은 여기까지다. 두 사람의 갈 길이 달라서다. 1971년생 박용진은 대선 출마를 준비하고 있다. 객관적 여건을 고려하면 무모한 도전으로 비친다.
청년들 정치 도전 가로막고 있는
불공정한 제도 없애거나 손봐야
나는 개방형·소통형 리더 될 것
- 국가 경영은 정치·외교·군사·경제·노동·복지 등 다양한 분야에서 총체적 역량을 발휘해야 하는 고도의 작업입니다. 과연 그만큼의 역량을 갖췄다고 생각합니까.
“국가 운영의 핵심은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일이라고 봅니다. 결국 지도자 본인의 시대인식과 방향 설정이 가장 중요합니다. 국민적 상식과 눈높이에 맞는 관점이 있고, 우리 편, 남의 편을 가리지 않고 전문가를 골라 쓸 수 있는 개방성이 있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관료들에게 포획되면 안 됩니다. 관료집단은 자신들이 해온 방식대로만 계속하니까 미래지향적 과제를 해내지 못합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구축했던 ‘정보 고속도로(초고속 인터넷망)’ 같은 것을 준비하는 일이 지도자의 역할입니다.”
- 당내 경선에서 함께할 인적 네트워크가 부족하지 않나요.
“다들 민주당을 향해 변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뻔한 인물이면 뻔한 구도, 뻔한 패배밖에 없습니다. 새로운 인물, 새로운 노선을 통해 정권재창출의 자신감을 만들어가야 해요. 우리 시대에는 밀린 숙제들이 있습니다. 연금개혁, 노동개혁, 교육개혁, 에너지전환, 인구위기 대응 등이죠. 모두 사회적 갈등을 엄청나게 수반하는 사안들입니다. 누가 이 난도 높은 숙제들을 해낼 수 있을까요. 기존의 주류 기득권 세력은 어렵습니다. 비주류이면서도 혁신적 입장과 태도를 갖는 사람만이 해낼 수 있어요. 시대의 변화는 모두 비주류 변방에서 시작됐습니다. 김대중 대통령도, 노무현 대통령도 모두 정치창업가들이었어요. 저도 계파나 배경이나 후견인은 없지만 스타트업 창업가의 자세로 정치적 도전에 나서려고 합니다.”
- 어떤 지도자를 꿈꾸고 있습니까.
“개방형, 소통형 리더입니다. 대한민국이 커지고, 국민 수준도 높아졌기 때문에 ‘나를 따르라’식의 영도자 리더십은 더 이상 불가능합니다. 대통령이 왜 국회 시정연설에만 나오고 박수 받고 떠나야 합니까. 대통령도 대정부질문에 출석해 일문일답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경향신문 단독’으로 ‘대통령이 지난 주말 야당 대표를 청와대로 초청해 폭탄주를 마셨다’는 기사도 나오고, 한 달에 한 번 청와대 출입기자들과 토론도 하고 그래야 하지 않을까요. 대통령은 선출된 왕이 아니라, 선출된 최고위직 공무원이니까요.”
1972년생 김세연의 행보는 박용진과 반대다. 지난해 20대 의원 임기를 마친 후로는 여의도와 거리를 두고 있다. 그럼에도 내년 대선을 앞두고 그의 ‘등판’ 가능성을 주목하는 시각은 여전하다.
- 거취에 변화는 없나요.
“(현실정치는) 제가 생각하고 있는 길이 아니어서 여론조사든, 기사든 제 이름은 빼달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김세연은 최근 ‘보수판 기본소득 모델’을 제안하고 나섰다. 지난해부터 기본소득 연구모임인 ‘기본모임’을 이끌어온 그는 모임의 결과물을 페이스북을 통해 발표해왔다. 김세연은 “기본소득을 도입해야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를 지키는 일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김세연표’ 기본소득 시나리오 1단계는 월 30만원 지급이다. 출발점에서의 재원은 연간 약 180조원이 소요된다. 제도 도입 10년 이후쯤 2단계에선 기존 공적부조 제도 가운데 기본소득 취지와 부합하는 일부 제도를 흡수통합하고 재원을 추가 투입해 어떤 국민이든 빈곤선인 ‘중위소득의 50%’를 보장받을 수 있게 한다. 3단계에서는 모든 국민이 중위소득의 50%를 기본소득으로 받을 수 있게 한다. 재원은 행정부의 구조와 기능, 즉 인력과 예산을 강력하게 구조조정해 마련한다. 김세연은 “증세는 최후의 수단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 현재 본인의 정체성은 뭐라고 생각합니까.
“정치권에 있을 때는 시민을 대신해 감시인 역할을 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통상적 의미’의 정치인이 되지 말자는 게 목표였어요. 지금은 시민정치교육 등의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굳이 표현하자면, 공적인 시민, 공동체에 기여하는 시민이라고 할까요.”
- 시민과 정치 간 거리를 좁히는 일에 관심을 갖고 있지요.
“더 이상 정치지도자에게서 신화적이거나 영웅적이거나 위인적 면모를 기대해선 안 된다고 봐요. 정보의 유통 속도가 빨라지고 투명성이 강화되면서 시민과 정치인의 관계가 달라지고 있습니다. 시민 중 일부가 한정된 임기 동안 공동체에 대한 봉사 차원에서 잠시 그 일을 맡는다고 생각하면 어떨까요.”
그는 시민과 정치의 거리를 좁히는 차원에서 의석 일부를 추첨제로 배정하는 방안을 검토해볼 만하다고 했다. 인구·세대·성별·직업 등의 비례성을 철저히 반영해 의정활동의 경험을 폭넓게 확산시키자는 취지다.
“정치권에 있을 때 늘 안타까웠던 게 있다. 독일의 슈뢰더 전 총리처럼 자신과, 자신이 속한 정당의 단기적 이익에 반하는 주장과 실천을 용기있게 할 수 있는 정치인이 우리나라에는 없는가 하는 것이었다. 이번 대담을 통해서 박 의원이 바로 그런 인식과 행동을 하고 있음을 알게 됐다. 리더십은 희생할 수 있는 용기에서 나온다. 박 의원은 기존의 상투적인 정치문법을 벗어던진, 새로운 차원의 정치지도자가 될 수 있으리라 본다.”
“단단하고 세련된, 진짜 보수라는 인상을 받았다. 절제된 언어로, 단호하게 말하던 그는 ‘강철버들’ 같은 사람이었다. 대한민국의 미래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은 즐거웠다. 단순히 내 생각을 쏟아내는 게 아니라 서로 다른 관점과 경험이 교차하며 ‘새로운 대한민국’을 머릿속에 그려낼 수 있었다. 한편으로는 긴장도 됐다. 만일 보수세력이 김 전 의원 같은 태도를 지녔다면 민주당이 힘들었을 수도 있겠다는 걱정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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