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밀레니얼 읽기
(5) 꼰대력이 상승할 때
사회생활 6~7년차 된 우리 세대
‘꼰대력’ 급상승하는 것 느껴
적절하게 닮고 싶은 모델 필요해
70대의 여성 작가 프랜 리보위츠
시원하게 내리꽂는 냉소적 언어
‘가진 자’의 여유와 풍요로움
불편하긴 하지만 그래도 매혹적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시리즈 <도시인처럼> 주인공인 작가 프랜 리보위츠. 그는 도시를 걸으며 시대를 한탄하고 ‘이젠 모든 사람이 스마트폰을 볼 뿐 뉴욕 거리를 제대로 걷는 사람이 없다’며 독설을 날린다. 위키미디어코먼스
생각보다 꼰대는 가까이 있었다. 다름 아닌 바로 옆. 친구와 맥주잔을 기울이며 회사생활에 대한 한탄을 하던 중 뜻밖의 ‘세대 내 차이’를 느껴버렸다. “요즘 새로 들어온 애들 보면 정시퇴근 기본에 야근도 안 해. 진짜 제트(Z)세대야.” 나도 모르게 입이 떡 벌어졌다. ‘어머나. 나도 정시퇴근 기본에 야근도 안 하는데, 친구들아. 이게 웬 말이야.’ 놀란 가슴을 부여잡고 우리의 연차를 처음으로 하나 둘 세어봤다. 회사생활 6년차, 또는 사회생활을 조금 일찍 시작한 친구는 벌써 7년차였다. 밀레니얼 끝 세대로 묶여왔던 우리, ‘꼰대’의 반대말 격으로 통했던 우리 세대도 더 이상 사회 초년생 나이가 아님을 실감한 순간이었다. 게다가 ‘밀레니얼’이라는, 두루뭉술한 언어로는 개개인의 다름을 설명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누군가는 조금 더 조직에 복무하는 편이고, 우리 중 다른 누군가는 조금 더 개인주의적인 측면이 강하기 마련이니. 우리가 다 한 묶음으로 말끔하게 묶이는 일은 없었고 친한 친구들 사이에서도 어쩔 수 없이 세대 내 격차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야. 그래도 생각만 하고 말로는 절대 하면 안 돼. 그러면 바로 꼰대 되는 거야.” 웃으면서 던진 말에 친구는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표정으로만 말해.” 옥신각신 의견을 종합한 결과, 나는 조금 더 밀레니얼에 가깝고 내 친구는 밀레니얼에 덜 가까운 것으로 결론이 났다. 덜하거나 더하거나 ‘밀레니얼 세대’로 통칭하는 우리도 어쩔 수 없이 꼰대가 되어가고 있다. ‘꼰대력’은 나이와 세대를 가리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이제는 젊은이보다는 ‘꼰대’에 어울리는 나이와 사회적 위치를 향해 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 우리에게 있어야 하는 건 어쩌면 적절한 롤 모델이다. 조금 덜 미운 꼰대로 늙어가기 위해, 적절한 선배 꼰대가 되어 줄 ‘꼰대 롤 모델’이 필요하다. 그런 우리 앞에 적절한 한 편의 넷플릭스 시리즈가 툭 떨어졌다. 마틴 스코세이지가 감독하고, 프랜 리보위츠가 출연한 다큐멘터리 시리즈 <도시인처럼>이다.
70대, 여성, 레즈비언, 뉴요커, 수필가이자 비평가, 유머 작가…. 몇 가지 키워드로 설명하기엔 충분치 않은 복잡한 캐릭터를 가진 미국 작가 프랜 리보위츠는 친구들과 나를 고루 매료시킨 ‘마성의 인물’이다. 그는 이 다큐멘터리에서 꿈의 도시이자 사시사철 매력이 철철 넘치는 도시 뉴욕 거리를 짜증 가득한 표정으로 바라보면서 그 속에서 살아가는 방법과 관광객, 돈, 지하철, 예술, 걷기에 관해 감각적으로 의견을 펼친다. 더구나 특유의 위트와 시니컬함은 영상을 더없이 찰지게 만든다. 오랜 친구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이 연출을 맡아서일까. 영상미는 덤이고, 프랜 리보위츠가 한마디 할 때마다 빵 터지는 그의 웃음소리는 특별 보너스처럼 영상의 재미를 더한다. 리보위츠는 직설적이다. ‘공사 중’ 팻말이 붙어 있는 뉴욕 지하철에 대해 불평하면서, 공공시설에 설치하는 조형미술을 은근히 ‘디스’한다. “물론 모자이크 작품 깜찍하죠. 하지만 그걸 설치하는 데 5개월이나 걸려야 하나요?” 만약 그가 한국 사람이고 서울에 살고 있었다면 지하철 스크린도어에 걸려 있는 맥락 없는 시들을 뭐라고 비평했을지 상상이 된다.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너무 정확하게 말해서 좀 미울 순 있지만, 그가 보여주는 면모는 ‘꼰대’라는 옹졸한 단어로 묶기에 너무도 열려 있고 톡톡 튄다. 그는 ‘재미’가 얼마나 좋고 중요한지 아는 ‘선배’다. “은밀한 취미(길티 플레저)가 있나요?”라는 질문에 리보위츠는 “그런 거 없다”고 답한다. “죄책감(길티) 없이 당당하게 즐기거든요. 왜 죄책감이랑 연결 짓는지 이해가 안 돼요. 물론 그 취미가 살인이라면 얘기가 다르죠. (…) 즐거움을 얻는 행동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습니다. 요즘 세상엔 사람 죽이고도 죄책감 없는 이들도 많고 국경에서 어린이들을 철창 안에 가두고도 아무렇지 않아 하죠. 그런 사람들도 멀쩡한데 제가 왜 죄책감을 느껴야 하죠? 특히 나이를 먹어가면서 즐거움이 뭔지 생각해보면 그게 뭐든 상관없이 즐겁다면 그냥 하면 돼요. 그냥 하면 됩니다.” 실로 명답이다. 시대의 변화를 모든 사람이 따라야 하는 건 아니라며, 당당히 거부하기도 한다. 자신에게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사용법이나 휴대전화 사용법 같은 것을 가르치려 드는 사람들에겐 이렇게 응수한다. “내가 에스엔에스를 하지 않는 이유는 그게 뭔지 몰라서가 아니라 너무 잘 알기 때문이에요.” 이렇게 날카롭고 정확하면서도 재미있는 사람으로 늙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유머 감각을 가질 수 있나요?”라는 청중의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한다. “마치 ‘어떻게 하면 키가 더 클 수 있나요?’ 같은 질문이네요.” 그처럼 늙고 싶다는 장래희망이 생겼지만, 상당히 어려울 것 같다. 유머와 위트라는 무기로 뉴욕이라는 도시를 완전히 평정해버린 이 매력적인 존재 앞에서, 이 이상의 꼰대 롤 모델을 찾기는 어렵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물론 그의 생각에 모두 동의할 수는 없다. 자신의 생각을 낱낱이 표현하고 싶어 하는 요즘 세태에 대한 비판은 특히 ‘프랜 레퍼토리’의 한 자리를 차지한다. “잘하지 못하더라도 뭐든 할 수는 있어요. 하지만 혼자만 하세요, 남한테 보이지 말고요. (…) 판단력을 갖추긴 했는지 모르겠어요. 그런 사람들은 보통 젊은이들이죠.” 요즘처럼 모두가 작가가 될 수 있고, 실제로 작가가 되고 있는 시대의 정중앙에 내리꽂는 신랄함이 누구에게는 후련할 수 있겠다. 덜 다듬어지고 성긴 생각이라도 말로 표현해내는 시대가 누군가에겐 상당히 거북하고 아쉬울 수 있다. 그러나 과거엔 영영 자신의 말을 꺼내놓지 못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았다. 덜 배우고, 덜 가지고, 덜 완전한 상황 속에 놓인 사람들이 말할 기회와 공간을 허락하지 않았던 예전에 견주면 지금 시대는 훨씬 진보한 것 아닐까? 말하는 데도 특정 성별과 피부색, 지위가 필요했던 과거의 일을 그도 모르진 않을 것이다. 과거 소수에게만 허락된 특권을, 프랜 리보위츠가 절대로 사용하지 않는다는 스마트폰과 에스엔에스가 허문 건 틀림없다. 리보위츠 같은 ‘꼰대’에게 그건 ‘인생의 낭비’일 수 있겠지만 누군가에게 이 도구와 공간은 절실한 자기표현과 정치적 발언의 장일 수도 있는 것이다. 리보위츠는 풍요롭고 성장하는 시대를 살았던 기성세대의 면모를 완전히 숨기지 못한다. “뉴욕에 살 수 있을 만큼 돈을 버는 사람은 없어요. 그런데 800만명이 살고 있거든요.” 사실 프랜은 뉴욕이라는 도시에 집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이고, 많은 수의 뉴요커는 당장 다음달에 낼 임대료를 걱정하며 살아간다. 뉴욕만큼이나 비싼 집값을 자랑하는 도시인 서울에서 매달 월세를 내며 살아가는 입장에서, 프랜의 저 말만큼은 지지 않고 응수하고 싶어졌다. “도시에 왜 사냐고? 일자리 때문이지! 내 고향엔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없거든.” 많은 불만을 상쇄하고도 그는 충분히 닮고 싶은, 매혹적인 사람이다. 멋진 셔츠와 목도리, 청바지와 재킷 차림으로 꼿꼿하게 뉴욕 여기저기를 두 발로 누비는 그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어쩐지 부러워진다.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세상 모든 것에 대해 솔직한 비평을 내뱉는 나이 많은 여성이 우리 한국 사회에는 없다. “미투 운동은 평생 생각도 못 했던 일이죠. 여자로 사는 건 이브 탄생부터 (미투가 나온) 8개월 전까지 똑같았어요.” 누가 이런 말을 할 수 있겠는가? 그는 자기 입으로 바뀔 걸 기대하지 않아서 어떤 사회운동도 한 적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사실 그가 지금까지 왕성히 활동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그의 존재 자체가 하나의 운동이 아닐까. 천다민 뉴닉 에디터
▶ 198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초반에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들은 정보기술(IT)에 능하고 개성이 강한 특징이 있다고 분석된다. 부당한 일에 적극 목소리를 내면서 앞날에 대한 희망과 불안을 동시에 갖고 있는 이들이기도 하다. ‘나 때는 말이야’라고 툭하면 가르치려는 ‘라떼 세대’는 모르는 밀레니얼 세대의 문화를 소개한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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