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는 1994년 10월21일 ’제네바 기본합의서’를 통해 북한에 ’비핵화’의 대가로 경수로형 핵발전소 2기를 지어주겠다고 공식 약속했다. 이를 근거로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가 북한 함경남도 신포지구에 짓던 한국형 경수로 핵발전소의 원자로 기초콘크리트 타설공사(2002년 8월7일) 모습. 케도 누리집 갈무리
정치권을 느닷없이 뜨겁게 달구는 이른바 ‘북한 원전 건설 지원 의혹’은 전형적인 ‘가짜 쟁점’이다. 일단 세 가지 이유를 꼽을 수 있다. 첫째, 대북 경수로(형 핵발전소) 건설 지원 사업은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의 오랜 ‘북한 비핵화’ 보상책 꾸러미의 하나다. 둘째, ‘북한에 핵발전소 지어주기’는 남북 당국 차원의 양자 협력 사업으로 공식적으로 제기되거나 논의된 적이 없다. 셋째, 무엇보다 미국·유엔의 고강도 대북 제재가 완화·해제되지 않는 한 ‘북한에 핵발전소 지어주기’는 종이 위의 집만큼의 가치도 없는 몽상이자 ‘불가능한 프로젝트’다.
1994년 북-미 ‘제네바 기본합의서’에 명시된 핵발전소 계획
우선 ‘대북 경수로 건설 사업’은 비밀 프로젝트가 아니다. 오랜 역사를 지닌 공개 프로젝트다. ‘북한이 비핵화 약속을 실천하면 경수로를 지어주겠다’는 건 국제사회의 공식 약속이다. 말뿐만 아니다. 북한 함경남도 신포에 ‘한국형 경수로’를 탑재한 핵발전소 건설 공사를 실제로 진행했다. 1994년 10월21일 합의·발표된 북한과 미국의 ‘제네바 기본합의서’가 그 근거다. 이 합의서 1조1항은 “미합중국은 1994년 10월20일부 미합중국 대통령의 담보 서한에 따라 2003년까지 총 200만킬로와트 발전능력의 경수로 발전소들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제공하기 위한 조처들을 책임지고 취한다”고 명시했다. 이에 따라 미국·한국·일본·유럽연합(EU) 등이 이사국으로 참여한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케도)가 구성돼 북한 신포에 ‘한국형 경수로’를 탑재한 100만 킬로와트급 핵발전소 2기를 짓는 건설 공사가, 국민의힘의 전신인 민주자유당이 집권당이던 김영삼 정부 때 시작됐다. 경수로를 ‘한국형’으로 하는 조건으로 건설 비용의 70%는 한국이 대기로 했다. ‘신포 경수로’는 2002년 8월7일 원자로 기초콘크리트 타설 공사를 하기도 했으나 그해 10월 이후 이른바 ‘2차 북핵위기’의 발발과 함께 건설 공사가 중단됐다.
’한반도 비핵화’의 청사진으로 불리는 2005년 6자회담 9·19공동성명 합의·채택의 주역인 송민순 당시 6자회담 한국 수석대표(오른쪽 둘째)와 김계관 북한 단장(왼쪽 둘째), 크리스토퍼 힐 미국 수석대표(왼쪽 첫째)가 어울려 이야기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2005년 9·19공동성명…핵 에너지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북한 권리 인정
‘경수로 건설 사업’은 2000년대 중반 6자회담을 거치며 되살아났다. 2005년 9월19일 6자회담에서 합의·발표된 ‘9·19 공동성명’은 1조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핵에너지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여타 당사국들은 이에 대한 존중을 표명하였고, 적절한 시기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대한 경수로 제공 문제에 대해 논의하는데 동의하였다”고 명시했다. 아울러 3조에서는 “중화인민공화국, 일본, 대한민국, 러시아연방 및 미합중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대해 에너지 지원을 제공할 용의를 표명하였다. 대한민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대한 200만킬로와트의 전력공급에 관한 2005년 7월12일자 제안을 재확인하였다”고 명시했다. ‘200만킬로와트 대북송전’은, 참여정부가 6자회담 비핵화 합의의 마중물 차원에서 2005년에 제안한 내용의 재확인인데, 2008년 12월 이후 6자회담의 장기 공전으로 실행되지는 않았다. 북한과 미국 또는 북한과 국제사회의 ‘비핵화’ 관련 합의에 “경수로” 또는 “에너지 지원”이 약방의 감초처럼 빠지지 않는 건, 북쪽이 이 협상을 안전 담보와 함께 에너지 문제 해소의 지렛대로 활용해온 역사와 무관하지 않다. 애초 대북 경수로 건설 지원 약속은 1985년 12월 고르바초프의 소련이 북한의 줄기찬 요청을 받아들여 경수로 4기를 신포에 지어주기로 약속한 데서 출발했다(물론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조인이 전제조건으로 달렸다). 고르바초프의 이 약속은 소련연방의 해체로 실행에 옮겨지지 못했고, 1990년대 초 이른바 ‘제1차 북핵위기’를 거쳐 1994년 북-미 제네바 기본합의에서 ‘미국 정부의 경수로 건설 지원 약속’으로 되살아났다. 경수로 건설 지역으로 거듭 지목된 신포는 남쪽 사람들한테는 북청사자놀음 또는 북청물장수로 유명한 그 북청의 새로운 행정구역명이다. 멀리는 1985년, 짧게 잡아도 1994년부터 이어진 ‘대북 경수로 건설 지원 프로젝트’는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중단 상태인 핵협상이 재개되면 다시 북한의 의미있는 비핵화 실천을 이끌 ‘보상책’으로 논의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렇듯 ‘대북 경수로 건설 지원’ 방안은 1990년대 이후 한국과 미국을 포함한 동북아 당사국들과 유럽연합의 ‘북한 비핵화 보상책’으로서 다자 프로젝트로 검토·추진·실행돼왔을 뿐, 남북 당국 차원의 양자 협력 사업의 맥락에서는 논의된 바 없다. 역대 한국 정부는 1982년 2월1일 전두환 정권의 손재식 국토통일원장관이 ‘20개 남북 협력 시범 실천 사업’을 제안한 이후로 지금껏 도로·철도 연결이나 자연자원 공동개발 등은 논의·실천해왔으나 핵발전소 건설은 양자 차원에서 다룬 적이 없다. 이런 논의 지형의 역사는 ‘비핵화’ 문제가 결정적 고빗길을 넘기 전에는 달라질 가능성이 없다.
미국 협력 없이는 사실상 불가능한 북한 핵발전소 건설
무엇보다 지금은 미국과 유엔의 고강도 대북 제재가 북한과 협력사업을 전방위로 철저하게 차단하고 있다. 코로나19를 포함한 감염병 예방과 임산부·영유아 영양 지원 등 국제사회의 대북 인도적 지원 사업조차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산하 대북제재위원회(1718위원회)의 ‘제재 면제’ 등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기술적 측면에서 봐도 1994년 북-미 제네바 기본합의에 따라 건설 사업이 한동안 진행된 ‘한국형 경수로’도 그 원천 기술은 미국이 갖고 있어, 설혹 대북 제재가 완화·해제되더라도 미국의 동의·협력이 없이는 한국 정부가 혼자 어쩌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사정이 이런데 ‘경수로 건설 사업의 비밀 추진’이라고? 실체를 찾을 수 없는 아주 이상한 질문이다. “핵무장한 북한에 핵발전소를? 충격적 대북 원전 게이트”라는 국민의힘의 인식과 주장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 이제훈 선임기자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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