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27일 경기 포천·파주·이천·안성에서 확진 사례가 나왔다. 지난해 11월 국내에서 첫 확진 사례가 나온 후 75번째다. 정부는 방역지침에 따라 ‘이동중지’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반경 3㎞ 안에 있는 모든 개체를 죽이기로 했다.
확진 판정과 ‘대학살’. 코로나19 사태 와중에 계속되고 있는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방역 얘기다. 농림축산식품부 통계를 보면 최근 약 2개월간 살처분된 닭·오리 등은 2319만1000마리다.
코로나19는 감염병 예방수칙을 학습하는 계기가 됐다. 마스크를 썼고, ‘거리 두기’를 했으며, 모임을 취소하고 흩어졌다. 코로나19 백신 접종도 앞두고 있다. 인간은 자신에게 침투하는 바이러스는 이러한 방식으로 통제 중이다. 하지만 조류인플루엔자 방역은 어떠한가. 참혹한 죽음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인간이 아니라는 이유로 2300여만 개체의 생명을 ‘쓸어버리는’ 방역은 과연 옳을까.
■안락사시켜도 살아나오는 닭들
“한마디로 킬링필드, 아우슈비츠예요. 안락사시킨 닭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포클레인으로 뜨고 있습니다.”
경기 화성에서 산란계 농장을 운영하는 김태호씨(가명)는 지난 1월 나흘간 닭 60만마리의 살처분을 지켜봤다. 창이 없는 ‘무창’ 계사에서 케이지 사육을 하는 그의 농장에선 환기팬을 꺼 닭들을 ‘질식사’시켰다. 인간으로 치면, 산소가 없는 밀폐 공간에 가둬놓고 죽을 때까지 기다리는 식이다. 이렇게 질식시키는 데 12시간에서 24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닭들은 밤새 ‘꺽꺽’ 소리를 냈다.
다음날 방역 작업자들은 바퀴가 달린 플라스틱 쓰레기통을 가지고 계사에 들어가 사체들을 쓸어담았다. 살아남아 뒤뚱뒤뚱 뛰어나오는 닭들도 있었다. 그런 닭들은 방망이로 머리를 쳐 죽였다.
이틀 만에 농장 한켠에 60만마리의 사체가 쌓였다. 포클레인 작업자는 사체들을 ‘떠서’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렌더링 기계에 투입했다. 사체를 미생물과 함께 고열에서 분쇄하는 기계다. 김씨는 “렌더링 후 나오는 것들을 보면 마치 비 오는 날 하수구에 걸려 있는 부산물 같다”면서 “참혹함을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다. 인간으로서 할 짓이 아니다”라고 했다.
조류인플루엔자가 한국에 상륙한 것은 2003년이다. 이때 유행한 인플루엔자 유전자형은 1997년 홍콩에서 6명의 사망자를 낸 ‘H5N1’과 같았지만, 염기서열이 달라 인체감염 사례는 나오지 않았다. 이후 조류인플루엔자는 국내에서 ‘겨울철 불청객’으로 불렸다. 정부는 야생철새가 한반도로 날아올 때마다 대대적 예찰을 벌였고, 조류인플루엔자가 농장으로 번지면 대규모 ‘살처분’을 반복했다.
그런데 ‘바이러스 박멸’을 위한 살처분이 매해 반복되는 동안 잊힌 것이 있다. 국내에서는 이제까지 조류인플루엔자 인체감염이 일어난 사례가 없다는 점이다. 해외에서의 인체감염 역시 극히 드물었다.
윤종웅 가금수의사회장은 최근 출간한 <이기적인 방역>에서 조류인플루엔자에 대한 대중의 이해도를 보여주는 짤막한 대화를 소개했다. “조류인플루엔자 때문에 사람이 얼마나 죽었다고 생각하세요”라고 물으면 “많이 죽지 않나요”라는 답변이 돌아온다는 것이다. 윤 회장은 세계보건기구(WHO)의 통계를 인용해 조류인플루엔자에 감염돼 사망한 사람은 18년간 약 1500명으로 매년 100명이 채 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결핵(매년 150만명 사망), 말라리아(매년 40만5000명 사망) 등에 비해 크게 낮은 수치다.
조류인플루엔자와 혼동하기 쉬운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는 박쥐에서 유래된 코로나바이러스로, 사향고양이를 거쳐 2002~2003년 인체감염으로 이어졌다. 2009년 미국에서 시작돼 멕시코와 유럽 등으로 번진 ‘신종플루’는 돼지 인플루엔자가 인체감염으로 이어진 사례다. 한국에서는 74만명의 감염자, 263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2015년 한국에서 유행해 38명의 사망자가 나온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도 인플루엔자가 아닌 코로나바이러스의 일종이다. 야생 박쥐에서 낙타를 거쳐 인체감염이 일어났다.
이화여대의 최재천 석좌교수 역시 “신종플루는 포유류끼리 옮긴 사례로, 새를 공략하던 바이러스가 갑자기 포유류를 공략하기는 쉽지 않다”면서 “조류인플루엔자가 인체감염으로 바로 이어지는 것은 확률적으로 진화적 간극이 크다”고 말한다. 이제까지 오리고기 또는 계란을 먹어서 조류인플루엔자에 감염된 사례는 해외에서도 없었다. 인도네시아·중국 등에서 확인된 인체감염 사례 역시 “감염된 사체를 해체하고 그 피를 자주 접촉한다든가 하는 경우”(김재홍 동물보건의료정책연구원장)에 국한된다.
■왜 무작정 죽이는가
그렇다면 왜 우리는 인플루엔자에 감염된 닭·오리를 무작정 죽일까. ‘거리 두기’나 ‘백신’은 왜 이들에게는 허용되지 않을까. 실제로 윤진웅 수의사를 비롯한 가금수의사회 회원들과 동물단체들이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다.
윤종웅 가금수의사회장은 “한국엔 백신 완제품을 만들 수 있는 조류인플루엔자 항원뱅크 시스템이 마련돼 있어 빠르게 백신 생산을 할 수 있다”면서 “조류인플루엔자 발생 주변 농가엔 이런 백신을 주입하면 된다. 굳이 살처분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구제역의 경우 백신 정책이 시작된 2011년 이후 살처분 규모가 크게 줄었다. 2010~2011년 살처분된 소·돼지·염소·사슴은 363만5792마리에 달한다. 하지만 2018~2019년엔 1만3998마리가 살처분됐다.
다만 백신으로 바이러스를 막다가 ‘조용한 전파’를 놓칠 수 있다는 우려를 표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백신 주입을 할 경우 닭이 감염돼도 증상이 나타나지 않아 사각지대에서 전파가 이어질 수 있다”(김재홍 동물보건의료정책연구원장)는 것이다. 그러나 ‘살처분 정책’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보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지금과 같이 반경 3㎞를 ‘오려내듯’ 하는 무차별적 처분에 대해서는 “재고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공통적으로 나온다. ‘바이러스 쇼크’의 저자 최강석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는 “(지금의 방식은) 빈대 잡으려다가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라면서 “농장 간에 전파된 사례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현재 지침은 조정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농가에선 면역력이 우수한 닭을 키우기 위해 공장식 축산을 포기했는데도, ‘일괄 살처분’ 명령이 내려지는 데 대한 불만도 나온다. 지역을 밝히지 않기를 원하는 이태호씨(가명)는 9000여마리의 닭을 키우는 농장을 운영 중이다. 이씨는 2017년 ‘살충제 계란’ 파동 전까지 공장식 축산으로 불리는 ‘케이지 사육’을 했다. 공장식 축산 계사에선 닭을 A4 용지 수준의 면적에 가둬(마리당 사육면적 최저기준 0.075㎡) 키운다. 창문도 없는 ‘무창계사’여서 그야말로 바이러스 전파에 취약한 3밀(밀집·밀폐·밀접)의 환경이다.
이씨는 2018년부터 2년에 걸쳐 1억여원을 들여 케이지 축사를 뜯어냈다. 그리고 평사(바닥이 있는 축사)에서 밀집도를 크게 낮춰 닭을 키웠다. 닭을 건강하게 키우면 면역력이 높아지니 조류인플루엔자 확산에도 버텨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난해 말 “생전 한번 가보지도 못한 농장에서” AI가 발생했다고 모두 살처분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이씨의 농장에선 음성 판정이 나와 살처분에 저항했지만, 주변의 농가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다들 살처분하고 계사를 비워 이제 닭을 넣어야 하는데 우리 농장 때문에 못 넣고 있다고….” 결국 그는 약 20일간의 ‘저항’을 포기했다. 이씨는 “빚이 8억원인데, 은행에서 이런 사정을 봐주겠느냐”면서 “다시 닭을 기른다 해도, 내년에 이런 일이 또 일어나지 말란 법이 있느냐”고 했다.
농장 특성을 감안하지 않은 살처분에 대해선 전문가들도 ‘선별 적용’ 필요성을 제기한다. 김재홍 동물보건의료정책연구원장은 “일본은 반경 500m라는 살처분 기준이 있지만, 농장 위험성 평가를 해서 살처분 여부를 전문가 판단에 맡기고 있다”고 말했다. 장형관 전북대 수의학과 교수 역시 “농장 특성, 지역 특성을 감안한 위험도를 파악해놨다가 그런 정보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번엔 가축 감염병, 지구의 ‘경고’
코로나19와 사투를 벌이는 중에 닥쳐온 조류인플루엔자는 지구가 보내는 또 한 번의 ‘경고’라는 점에서도 의미를 지닌다. 지난해 유엔 환경계획은 최근 유행 중인 전염병의 75%가 동물에서 전파됐음을 지적하는 보고서를 발간했다. “인류가 야생동물의 생태계를 계속 파괴하고 착취한다면 전염병은 동물에서 인간으로 끊임없이 확산될 것”이라는 게 이 보고서의 메시지다.
인체로의 감염은 드물지만, 농장의 닭과 오리가 야생조류의 인플루엔자에 감염되는 현상 역시 마찬가지 맥락에서 봐야 한다. “시베리아에서 인플루엔자에 감염된 철새가 우리나라 천수만까지 와서 무슨 사명감에, 무슨 억하심정에 농장으로 직접 바이러스를 배달하려 했겠나. 바이러스는 인간이 옮긴 것이지 그들이 옮겨주러 온 게 아니다.”(최재천 교수) 이제 철새 탓은 그만하자는 얘기다.
인간에게 넘어온 감염병 코로나바이러스와 농장 가축에 넘어온 야생조류의 인플루엔자는 모두 인류가 야생 세계를 지나치게 침범한 ‘대가’다. 게다가 인간의 잘못으로 인플루엔자에 걸린 닭·오리를 두고 바이러스를 박멸하겠다며 ‘학살’을 이어나가고 있다. 코로나19는 세계 곳곳에서 비극을 초래했지만 이와 동시에 자연과 생명의 윤리에 대한 감각을 일깨웠다. 코로나19 와중에 진행 중인 조류인플루엔자 방역 역시 이제는 ‘생명존중’의 감수성으로 접근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 2개월간 전국에서 닭·오리 2300만마리의 ‘묻지마 살처분’이 계속되는 가운데 살처분 명령을 취소해달라면서 행정심판을 청구한 농장이 있다. 경기 화성의 산안마을 농장이다.
산안마을 농장에선 지금까지 한 번도 조류인플루엔자에 감염된 닭이 나오지 않았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주변 농가에서 인플루엔자 확진 사례가 나와, 살처분 명령이 떨어졌다. 유재호 산안마을 대표(38)는 1월 27일 주간경향과의 통화에서 “기계적인 살처분 명령이 부당하다고 생각해 뭐라도 해야겠다는 심정으로 행정심판을 청구했다”면서 “이렇게 한 번 휩쓸고 지나가면 결국 대기업 계열화 농장 위주로 살아남게 되고, 산업 전반이 흔들릴 것이다. 누군가는 얘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건강한 닭 키우기’를 지향하는 산안마을은 평사에서 1㎡당 4.4마리의 닭을 키운다. 공장식 케이지 축사에선 1㎡당 9마리까지 키우고 있는 것과 비교해 밀집도가 낮다. 산안마을은 초지를 따로 마련해 닭에게 풀을 먹여 기르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유 대표는 “산안마을의 목표는 ‘자연과 인위의 조화’”라고 했다. 자연친화적으로 닭을 키우지만 방역시설은 겹겹이 갖췄다. 차량은 터널식 소독기를 지나야 하고, 사람은 밀폐된 소독부스와 샤워실, 전실(해당 동에서만 입는 작업복으로 갈아입는 곳)을 모두 거쳐야만 계사로 들어갈 수 있다.
2014년과 2018년 800m 거리의 농가에서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검출된 적이 있었지만, 산안마을은 그간의 방역실적, 저밀도 사육 등이 감안돼 살처분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올해는 (지자체에서도) 힘들 것 같다고, 묻어야 할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유 대표는 “한국은 살처분에 대한 규정이 자세한데, 외국 사례를 보면 예방 규정이 훨씬 구체적이다. 우리도 그렇게 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살처분 일변도의 조류인플루엔자 방역정책을 바꿨으면 한다”고 했다.
경기도 행정심판위원회는 지난 25일 행정심판 결과가 나올 때까지 일단 산안마을의 살처분 집행정지 신청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행정심판은 산안마을이 청구한 날짜(지난 1월 18일)로부터 60~90일 이내에 결과가 나온다. 행정심판 결과와 함께 경기도 측이 살처분 기준을 조정할지 여부도 주목받고 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지난 18일 “도 차원의 (살처분) 기준안을 만들어보라”고 개선안 마련을 주문하면서 살처분 거리 기준 조정과 백신 접종 등에 대해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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