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서비스일반노동조합 배달서비스지부 제공
서울 강남구와 서초구에서 활동하는 배달노동자 이아무개(50)씨와 김아무개(41)씨는 최근 서초구의 ㅇ아파트단지에 음식 배달을 갔다가 황당한 얘기를 들었다. 보안요원과 경비원들이 “화물 엘리베이터를 타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이유를 물으니 “냄새가 밴다”거나 “입주자대표회의에서 그렇게 결정이 났다”는 답이 돌아왔다. 이씨는 “주민들이 포장이 헐거운 테이크아웃 음식을 들고 일반 엘리베이터를 타는 건 되는데 비닐 포장이 잘된 배달음식에선 냄새가 난다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배민라이더스’ 배달기사 김두하(26)씨는 지난해 9월 용산구 ㄴ아파트에서 음식을 오토바이에 싣고 지하주차장으로 향했다. 하지만 역시 보안요원이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갈 수 없다”고 막아섰다. 실랑이 끝에 김씨는 왕복 400m 거리를 걸어서 음식을 배달했다. 게다가 이 보안요원은 신분증 검사까지 요구해 결국 10분 넘는 시간을 허비했다. 분초를 다퉈 배달수수료를 받는 배달노동자에겐 금쪽같은 시간이다. 김씨는 “기피 아파트에 배달을 거절해서 거절률이 높아지면 배차가 제한돼 새로운 콜(주문)이 10~15분가량 안 들어오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서울에만 최소 81곳이 갑질
코로나19로 음식배달 주문이 폭증하고 있는 가운데 아파트단지 입구부터 걸어서 배달하라거나 일반 엘리베이터에 타지 말라고 요구하는 등 주민들이 배달노동자들에게 ‘갑질’하는 아파트단지가 서울에만 최소 81곳이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서비스일반노동조합 배달서비스지부가 지난 25일부터 일주일 동안 배민라이더스, ‘바로고’, ‘생각대로’, ‘부릉’ 등에서 일하는 배달라이더 조합원 400여명에게 설문한 결과다. 지부는 이 설문 결과를 토대로 오는 2일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할 계획이다.
31일 지부가 <한겨레>에 공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아파트단지 안에서 도보로만 배달하라고 요구한 아파트가 81곳 가운데 54곳(66%)으로 가장 많았다. 배달노동자들이 낸 사진을 보면, 일부 아파트들은 정문 또는 지하주차장에 ‘오토바이 출입금지’를 써서 붙여뒀다. 강남 쪽에서 일하는 이씨는 “배달 오토바이가 못 들어가는 곳에 들어갔다가는 경비원이 쫓아오는 등 난리가 난다”고 말했다.
81곳 중 15곳은 건물 내부와 가까운 현관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고 ‘지하주차장으로만 다니라’고 요구했다. 지상으로 오토바이를 몰고 다니다 사고가 나면 어떻게 하느냐는 등의 이유다. 배달노동자는 화물 엘리베이터만 타라고 요구하는 아파트도 8곳이나 됐다. 배달대행업체 생각대로는 최근 서울숲의 한 아파트 배달비를 2천원 올렸는데, 이 아파트가 오토바이 출입을 금지하고 배달노동자에게 화물 엘리베이터만 이용하도록 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신분증 등 소지품을 보관하게 하는 아파트는 7곳이고, ‘헬멧을 벗으라’고 요구하는 아파트도 4곳이었다. 마포·서대문 지역에서 일하는 김영수 배달서비스지부장은 “아파트 쪽 요구로 땀에 찌든 헬멧을 벗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헝클어진 머리를 엘리베이터 내 거울로 보며 수치심을 느꼈다”며 “오토바이 키나 신분증, 헬멧을 관리사무소에 맡기기도 한다. 배달원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역별로 보면, 81곳 중 강남구 아파트가 32곳으로 가장 많았고, 서초구(8곳)가 뒤를 이었다. 영등포구 7곳, 용산구 6곳, 강동구 5곳, 송파·양천·동작·마포구 각각 4곳, 성동구 3곳, 중구·광진구 2곳 순이었다. 지목된 아파트 대부분이 최신식 시설을 자랑하는 고급 아파트다. 조세화 변호사(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법률원)는 “아파트에 업무 목적으로 차를 타고 드나드는 사람들도 있는데, 라이더들만 오토바이로 출입하지 못하게 하는 건 평등권 침해 소지가 있다”며 “배달 오토바이가 들어오는 게 싫다면 주민이 나와서 찾아가는 게 합리적이다. 신원 확인 등에 소요되는 시간을 배달노동자에게 전가하는 건 부당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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