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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덤채팅앱에 '여릴곱여'가 들어갔더니…90분만에 12명이 던진 말 - 한겨레

여성청소년 랜덤채팅 접속하자 21건 성착취·성희롱
인증절차 등 규제 강화에도 ‘성범죄 위험’ 여전
카카오톡 오픈채팅으로 유사범죄 확산
김상희 의원 “제도 개선해야” 법안 발의 예정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지난 25일 밤 10시30분께 여성 청소년 ㄱ(15)씨는 ‘여릴곱여’(열일곱 여자)란 닉네임으로 한 랜덤채팅앱(접속하면 무작위로 대화 상대를 정해주는 앱)에 접속했다. 채팅앱 입장 1분 만에 “ㅈㄱ(조건만남) 가능해요? 40만원 드려요”란 메시지가 날아왔다. 이후에도 “야한 거 좋아하냐” “용돈 필요하지 않냐” “영상통화로 서로 몸 보여주는 거 어떠냐”와 같은 내용으로 시작하는 채팅 요청이 끊이지 않았다. ㄱ씨가 ‘스킨십 같은 성적 경험이 한번도 없다’고 하자 어떤 이들은 더 적극적으로 들이댔다. ㄱ씨는 5개의 랜덤채팅앱에 접속한 90여분 동안 21명의 이용자로부터 메시지를 받았다. 그 시각 12명은 성매매를 요구했고 7명은 성희롱을 했다. 2명은 신체 사진을 보내달라고 했다. 대화로 파악한 21명의 나이대는 20살에서 37살까지 다양했다.
청소년으로 이루어진 성교육 단체 미네르바 활동가인 ㄱ씨가 ‘열일곱 여자아이가 랜덤채팅앱에 들어갔을 때 벌어지는 일들’이란 주제로 사회실험을 한 결과다. ㄱ씨는 한겨레>에 “예상은 했지만 닉네임만 보고 이렇게 많은 채팅 요청이 들어올 줄 몰랐다”며 “특히 가출 청소년들이 무방비한 상태로 사회에 나왔을 때 쉽게 위험에 빠질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ㄱ씨는 “어른들이 자신의 성적 욕구를 풀기 위해 ‘여릴곱여’란 닉네임을 보고 달려드는 게 제대로 된 사회일까”라고 했다.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의 온상으로 꼽히는 랜덤채팅앱·데이팅앱을 이용한 디지털 성범죄가 경각심 제고나 규제 강화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기승을 부리고 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김상희 부의장(더불어민주당)이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랜덤채팅앱·데이팅앱에 대한 시정요구 건수는 2016년 760건에서 지난해 6848건으로 5년 만에 9배 이상 늘었다. 방심위는 서비스 제공자에게 성매매 암시 정보 등을 올린 이용자의 서비스 이용 정지 등 시정요구를 해왔다. 랜덤채팅앱에 대한 규제는 생겨나고 있지만 실효성은 떨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여성가족부는 지난해 12월부터 안전한 대화를 위한 기술적 조치를 갖추지 않은 랜덤채팅앱을 청소년유해매체물로 결정 고시해왔지만 방심위에 올해 8월까지 접수된 시정요구 건수도 1071건에 이른다. 랜덤채팅앱이 청소년유해매체물로 지정되지 않기 위해서는 △실명 인증 또는 휴대전화 인증을 통한 회원관리 △대화 저장 기능 △신고 기능 등을 갖춰야 한다. 청소년유해매체물로 분류된 랜덤채팅앱은 청소년유해 표시(“19금”)와 함께 별도의 성인인증 절차를 둬 청소년의 이용을 통제해야 한다. 그러나 미성년자인 ㄱ씨가 다섯 군데의 랜덤채팅앱에 접속하는 데 어떤 제한도 없었다. ㄱ씨는 “5군데 전부 ‘20세 이상’이라고 거짓 체크하면 접속 가능했다. 성인만 이용할 수 있다는 경고창이 뜬 곳은 2곳뿐이었다. 랜덤채팅앱이 규제되고 있는지 전혀 몰랐다”고 말했다.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은 랜덤채팅앱 사업자가 요구받는 기본적 안전장치마저 없다. 오픈채팅방에 쉽게 접속한 아동·청소년이 부지불식간 무방비로 성매매, 성범죄, 불법 도박, 사기 등 범죄에 노출되는 형태로, 랜덤채팅에서 카톡 채팅으로 범죄가 옮겨오는 풍선효과의 조짐도 보인다. 지난 2월 검거된 ㄴ씨는 도박사이트 광고 목적으로 오픈채팅방을 개설한 뒤 회원모집을 위해 아동 성착취물 등을 유포했다. 지난해 7월 검거된 ㄷ씨는 오픈채팅방에서 알게 된 피해자들을 유인해 성착취물을 제작하고 온라인에 유포했고, 지난해 10월 검거된 ㄹ씨는 익명으로 한 오픈채팅방에 참여해 성적 모욕을 하고 성착취물을 게시했다. 이는 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과가 김상희 의원실에 제출한 카카오톡 오픈채팅 관련 범죄 사례의 일부로, 랜덤채팅앱이나 텔레그램 등에서 일어나는 성범죄 유형에 ‘카톡’도 오염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에 카카오 쪽은 사전·사후 관리 조처가 충분히 이뤄진다는 입장이다. 카카오 홍보팀 관계자는 한겨레>에 “(오픈채팅방이라도) 채팅방이란 사적인 공간을 들여다볼 수는 없어 이용자에게 신고 기능을 제공하고 있다. 신고가 들어오면 이용제한 등의 조치를 취한다. 채팅방 이름이나 닉네임, 커버 이미지 등 노출된 영역에 대해서는 금칙어를 적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오픈채팅방 관련 신고 건수를 묻는 질문에는 “통계화하고 있지 않다”고 답했다. 카카오톡 오픈채팅을 이용한 범죄가 현실화한 만큼 카카오톡에도 아동·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김상희 부의장은 “랜덤채팅앱이 청소년유해매체로 지정되자 아무런 규제가 없는 카카오톡 오픈채팅이 범죄의 창구가 되고 있다”며 “아동·청소년을 범죄의 위험에서 보호하기 위해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김 부의장은 카카오톡을 비롯한 플랫폼, 홈페이지 등이 운영하는 익명채팅 접속 시 성인과 아동·청소년을 분리하여 접속하도록 하는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발의할 예정이다. 채팅앱에서 일어나는 디지털 성범죄를 막기 위해선 ‘예방책’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송봉규 한세대 교수(산업보안학과)는 “랜덤채팅앱 등 플랫폼 몇개를 규제하는 것만으로는 디지털 성범죄를 근절할 수 없다. 대화 가능한 디지털 공간 어디든 같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송 교수는 “정책의 이분화가 필요하다”며 “소수의 10%가 90%의 범죄를 만든다. 디지털 공간 전체를 오염시키는 소수를 잡고 제대로 처벌할 정책과 나머지 대다수는 오염된 곳으로 빠지지 못하도록 하는 예방책이 각각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박고은 기자 eu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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