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용신 진보당 공동대표가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제작했던 노란 리본. 첫번째 리본은 참사 직후 1~2주 사이에 만들어낸 디자인이라고 한다. 나머지는 2014~2015년 사이에 만들어졌다. 조 대표는 "일베가 리본 아래쪽을 변형하는 일이 발생해 리본 끝부분을 넓게 만들기도 했고, 디자인이 일원화하면 지루할 수 있어 붓으로도 그려보는 등 다양화해봤다"고 했다. 조씨 제공
유방암 예방 '핑크 리본' 모양 따 제작
미술에 소질이 있었던 게 도움이 됐다. 중학교 때부터 미술 공부를 하고 싶었고, 부모님 몰래 전문대 산업디자인학과에 합격했다가 가로막힌 경험도 있었다고 한다. 고교시절엔 친구들의 이름 알파벳을 그라피트 형태로 써주기도 했다. 고교 시절 친구들이 매점 햄버거를 사주며 써달라고 했던 솜씨였다. 그 손재주가 세월호 사고로 떠난 고교생 동생들을 기다리는 리본을 그리면서 발휘된 것이다.
7년 전 4월 16일, 아이들의 실종 소식이 전해지자 대학생들이 무사 귀환을 기원하며 만든 노랑 나비가 화제가 됐다. 참사 후 첫 주말이 지나고 노란 리본을 만들어보자는 얘기가 나왔다. 조 대표는 “유방암을 예방하는 핑크 리본 캠페인의 리본 모양을 본땄고 노란색을 입혀 만들게 됐다. 일베에서 아래쪽을 뾰족하게 만들어 잘못된 의미로 쓰는 일이 발생하다 보니, 이를 막고자 리본 아래쪽을 넓게 만들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조용신 진보당 공동대표를 만났다. 조 대표는 세월호 참사 당시 노란 리본을 만든 공식 디자이너였다. 함민정 기자
“모니터 속 아이들 눈을 보며 영정 만들어”
“한 명씩 확대해서 눈을 보고 작업을 했다. 모니터 속에선 살아있고 웃음기 있던 표정인 아이들이 모두 세상을 떠났다고 생각하니 울컥했다. 괴롭고 잔인한 작업이었다.”

백남기 농민 사망사건 당시 조용신 대표가 쓴 캘리그래피. 백씨는 2015년 11월 민중총궐기 시위에서 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아 이듬해 사망했다. 조 대표는 격양된 분위기를 담아 이 문구를 썼다고 한다. 뉴시스
“세월호 울분과 우울감 해소 아직 멀어”
그러면서 “세월호 하면 ‘울분’이 기억난다. 당시에는 사회적으로 확산한 울분이 과연 어떻게 해소될 수 있을까, 언젠가 폭발할텐데라는 생각이 있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2016년 촛불 집회가 확산하면서 국민이 일종의 위로를 받았겠구나 생각이 들었는데, 아직 많은 의문이 풀리지 않아서 답답하다. 사회적 우울감이 해소되기까지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2015년 4월 15일 조용신 진보당 공동대표는 세월호 희생자 사진을 받아 같은 크기의 영정으로 편집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당시 조 대표는 ″잔인한 작업이었다. 희생자 한명씩 눈을 바라보다 보니 마음이 아프고 힘들었다″고 회고했다. 사진 조씨 제공
“진상규명으로 사회적 신뢰 높아져야”
조 대표는 “문재인 대통령도 광화문 광장에서 단식하지 않았나. 문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가족들은 이제 제대로 진상규명이 되겠구나 생각했을텐데, 안타깝다. 허탈할 것 같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요구하는 대로 기소권과 수사권을 주고 국가 차원에서 조사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적어도 이런 식으로 국가가 신뢰를 잃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나. 국민은 정부가 제대로 잘하고 있는지 감시해야 한다. 시민으로서 자유를 누릴 최소한의 안전이 보장되고 있는지 등 역할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조용신 진보당 공동대표가 세월호 참사 이후 제작했던 4.16연대의 로고다. 처음으로 썼던 캘리그래피라고 한다. 조씨 제공
7주기의 의미는 “회피하지 않는 것”
이른바 ‘세월호 세대’라고도 불리는 20대에 대해선 “동년배가 배에서 사고를 당했는데, 정부가 제대로 대처하지 않아서 사망한 걸 본 세대다. 생명이 정부 정치와 연결돼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낀 만큼 이들을 무시하면 안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조 대표는 “사회와의 관계를 어느 누구보다도 잘 아는 세대다. 그런 만큼 목소리를 내줬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함민정 기자 ham.minj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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