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23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 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내 좌우명이 ‘경계를 허물자’다. 남북, 성별, 직업, 세대, 이념의 경계를 없애자는 거. 밖에서 보듯 내가 그렇게 경직되거나 꽉 막힌 사람이 아니다.”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과의 만남은 유쾌했다. 30년 직업 외교관 생활로 단련된 이답게 달변이었다. 굴곡진 삶을 이어온 많은 이들의 인생 서사가 그렇듯 그의 이야기엔 묘한 울림과 흡인력이 있었다. 자신이 성장한 사회주의 조국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도 굳이 숨기려 들지 않았다. 처음엔 ‘정치인 태영호’의 속내를 들어볼 작정이었다. 4·7 재보궐선거를 전후해 보여준 ‘파격 행보’와 ‘개념 발언’이 첫 탈북자 지역구 국회의원에 대한 뒤늦은 궁금증을 발동시켰다. 하지만 한국 정치와 북한 외교관 생활, 남북 현안을 오가며 2시간 가까이 이어진 문답은 그가 여전히 ‘전략적 발화’에 충실하다는 인상을 갖게 했다. 상대 감정을 거스르지 않으면서 자기 속내도 똑 부러지게 드러내지 않은 채 주어진 한계 안에서 의도했던 목표를 관철하려는 능란한 협상가의 모습이기도 했다. 그가 인터뷰 내내 강조한 것은 ‘균형’과 ‘상식’이었다. 정치도 남북관계도 균형과 상식의 원칙에 충실하면 풀지 못할 문제가 없다는 얘기였다. 그러나 대북전단, 사상검증 같은 구체적 이슈와 관련한 대화에선 여전히 ‘확신들’ 사이의 경계를 허물기가 쉽지 않았다. 인터뷰는 지난 2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했다.
―2018년에 펴낸 <3층 서기실의 암호>를 보면 회고와 묘사가 굉장히 치밀하다. “막상 인생 스토리를 쓰려고 마음먹으니 막막했다. 기억도 안 나고. 근데 다 방도가 있더라. 일간지 데이터베이스(DB)에 담긴 북한 기사를 보면서 당시 내 주변 일을 떠올린 뒤 재조립하는 방식으로 썼다.”
―글 쓰면서 자기검열 같은 건 없었나? “왜 없었겠나. 처음 쓴 원고에서 요 정도면 괜찮겠다 싶을 때까지 다 덜어냈다. 북한에 남은 동료, 지인들 가운데 이미 불이익을 받을 만큼 받고 더는 추락할 데가 없는 사람들 얘기만 골라서 썼다.”
―책을 보면 현 체제에 대한 환멸과 배신감뿐 아니라, 과거의 사회주의 조국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도 드러난다. 예컨대 “동아시아 최초로 사회주의 복지체계를 세웠다. 넉넉하지는 못했지만 이웃과 웃으며 미래를 그리던 시절이었다” 같은 대목. “있는 그대로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일방적 비판만 해선 북한에 대한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인식을 심어줄 수 없다. 당연히 그쪽 체제에서 좋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사실대로 쓰려고 했다.”
―‘빨갱이 물 덜 빠졌다’는 소리 들을까 걱정되진 않던가? “북한에서도 행복했던 시절은 분명히 있었다. 1970년대까지는 그 사회가 그런대로 괜찮았으니까. 사회주의 복지도 잘 작동했고. 체제가 퇴행하기 시작한 건 김정일로 이어지는 세습구도가 공식화되면서부터다. 지금 북한 체제는 인민민주주의라고 부를 수 없다.”
―사회주의 원칙에서 이탈하면서 시스템이 망가지기 시작했다는 뜻인가? “인민민주주의, 사회주의의 핵심은 재산이든 권력이든 모든 세습에 반대하는 거다. 3대 세습까지 완성한 북한 체제를 어떻게 사회주의 국가라고 부르나.”
―4·7 재보선 때 ‘랩 하고 막춤 추는 태영호’로 떴다. 국민의힘이 20대 남성 지지율 오른 것에 고무됐을 때 “이대녀 표심 얻지 못한 이유를 고민해야 한다”고 쓴소리를 해 ‘남조선 엘리트보다 낫다’는 호평도 들었다. 바뀐 분위기를 체감하나? “주말이면 지역구 공원에 인사하러 다니는데, 시큰둥하게 거리를 두던 사람들이 요즘은 눈웃음도 짓고 먼저 말도 걸어온다. 북한에서 왔는데, 어쩌면 그렇게 춤을 잘 추느냐고 묻기도 하고.”
―남의 선거 치르면서 그렇게 파격 변신을 하는 사례가 흔치 않다. “처음엔 남들 하는 대로 했다. 근데 유세차 끌고 거리에 나가 문재인 정권 심판해야 한다고 고래고래 소리 질러 봤자 듣는 사람도 없고 힘만 빠지더라. 젊은 보좌진 아이디어를 모았더니 결론은 ‘어차피 눈길 끌려고 하는 거, 재밌게 하자’였다. 그다음부터 내가 랩도 하고 유세차 앞에서 기차놀이도 하면서 신나게 놀았다. 그랬더니 좀 쳐다봐 주더라.”
―새 환경에 적응하는 게 놀랄 만큼 빠르다. “외교관은 근무지가 자주 바뀐다. 새 임지로 가면 모르는 것투성이다. 바로 업무를 시작하려면 부지런히 물어보고 배우는 수밖에 없다. 여기 말로 ‘모드 전환’이 빨라야 하는 거지. 이런 템포가 30년 외교관 생활 하면서 체득되지 않았나 싶다.”
―지난주 이준석 대표를 강남역에 불러 ‘토론 배틀’도 열었다. ‘이준석 체제’에도 기민하게 적응한다. “개인적으로 이 대표를 잘 모른다. 함께 식사 한번 못 했으니까. 물론 호감은 있었다. 내 좌우명이 ‘경계를 허물자’다. 남북, 성별, 연령, 직업, 이념의 경계를 없애자는 거. 근데 이 젊은 양반이 그걸 하더라. 처음엔 그저 언론이 키운 바람이겠거니 했는데, 어느 순간 절대다수가 영남 출신이고 60대인 당원들 마음까지 흔들어버리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전당대회 때는 정작 이 대표를 안 찍었을 거 같다. “그건 말 못 한다. 나도 정치하는 사람인지라.”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23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 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이곳 정치시스템에 적응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나? “스웨덴·영국 같은 서방국가 주재원으로 있으면서 충격은 받을 만큼 받았다. 특별히 놀랍거나 새롭지는 않다.”
―의원 생활 1년 해보니, 유럽과 한국 민주주의에서 차이가 느껴지나? “여기선 역사를 둘러싸고 지분 싸움이 치열하다. 국민의힘은 산업화 세력, 민주당은 민주화 세력 하는 식으로. 근데 산업화든 민주화든 주도한 세력은 있겠지만, 그 과정에는 국민 모두가 참여한 것 아닌가. 영국에선 처칠이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었다고 해서, 보수당이 ‘히틀러 파시즘에서 영국을 지킨 건 우리 당이다’라고 안 한다.”
―역사적 기억을 전유하려는 싸움은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다. “근데 우리는 감정적으로도 너무 갈려 있다. 정책 대결 차원을 넘어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한다. 영국은 의회에서 그렇게 핏대를 세우며 논쟁하다가도 회의가 끝나면 주변 펍에서 여야 의원들이 어울려 별명 부르고 맥주 마시며 스스럼없이 대화하더라.”
―여기 여야 의원들도 의원회관 목욕탕에서 알몸으로 격식 없이 대화한다. “그런가? 내가 국회의원 된 뒤에는 사우나고 뭐고 코로나 때문에 다 폐쇄됐다. 거리두기 풀리면 자주 가야겠다.”
―민주당에는 가까운 의원이 없나? “송영길 대표하고 인연이 좀 됐다. 내가 한국 들어와서 처음 만난 국회의원이다. 국정원 관리받고 지내다 2017년 1월에 나왔는데 송 의원이 나를 만나고 싶어 한다는 기별이 왔다. 호텔에서 만났는데 북한 문제에 굉장히 관심이 많더라. 국회 와서는 외통위원장과 외통위원으로 만났다. 민주당 이용선 의원하고도 가깝다. 남북협력 시민단체 활동 하느라 북한 왕래가 잦았다던데, 그래선지 북한에 대한 이해도 굉장히 깊다.”
―두 당 의원들 사이에 스타일 차이가 있나? “민주당 의원들은 팀플레이가 잘된다. 돌발상황에도 역할 분담을 잘해서 대처한다. 그런데 우리 당은 자유주의 보수정당이라서 그런지, 의원들이 점잖고 분위기도 느슨한 편이다. 원내회의 공개발언 때 내가 단골로 마이크를 잡아도 ‘아니 초선 따위가?’ 그러면서 눈치 주지 않는다.”
―탈북민 출신 첫 지역구 의원이다. 정치적으로 더 큰 목표 같은 게 생겼을 법한데. “지역구에서 당선되긴 했지만, 여전히 난 배우고 적응하는 처지다. 학생으로 치면 중학교 1, 2학년 수준? 이런 내가 벌써부터 ‘나 전교 1등 먹고 서울대 갈 거야’ 하는 건 우습지 않겠나.”
―강남갑은 국민의힘엔 노른자위 지역구다. 그런 곳에 전략공천 받으니 부담스럽지 않았나? “공천장 받고 지역에 내려가 사무실을 열었는데, 사람들이 도통 안 모이더라. 당선은커녕 선거운동이나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싶었다. 그때 김종인 위원장이 큰일을 해줬다. 그분이 나를 두고 ‘강남하고 무슨 관계가 있다고 뿌리도 없는 사람한테 공천을 주느냐’며 교체하라고 했다. 그랬더니 ‘이번에도 낙하산이냐’고 등 돌렸던 사람들까지 열이 확 받아서 사무실로 찾아오더라. ‘태영호를 뽑을지 말지는 우리 강남 사람들이 결정하는 건데, 김종인이가 뭔데 감 놔라 배 놔라 하느냐’면서.”
―그 동네 분들이 원체 김종인 위원장을 싫어해서. “그건 잘 모르겠는데, 김 위원장이 의도하지 않게 강남 사람들 ‘역린’을 건드린 거다.”
―‘엘리트 외교관’ 스펙이 없었어도 강남에서 받아들여졌을까? “내 스펙이 여기서 뭐라고. 처음엔 ‘우릴 어떻게 보길래 하다 하다 탈북자 낙하산이냐’라면서 거부감을 드러냈다. 그렇다고 민주당을 지지할 수는 없고, 결국 김종인 위원장 발언에서 나를 편들어줄 명분을 찾은 것 아니겠나.”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23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 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남북문제에 있어 <한겨레>가 지향하는 방향과 국민의힘의 지향점은 차이가 적지 않다. “축구 경기에서 골을 넣는 방법은 수만 가지다. 한가지 전술과 공격 루트만 고집하면 진다. 북한이 겪는 인도적 위기는 같은 민족으로서 어떻게든 도와야 한다. 그러나 핵을 가진 북한과 평화적 공존이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해 진보는 해답을 내놓아야 한다.”
―북한이 핵을 가진 이상 대화와 포용으로는 변화를 이끌 수 없다는 말로 들린다. “제재와 봉쇄로도 북핵 문제는 해결 못 한다. 북한이 죽지 않을 정도로 중국이 산소마스크를 계속 붙여줄 테니까. 북핵 문제는 내부로부터 체제 전환이 일어나는 것 외엔 방법이 없다. 거기엔 시간이 걸린다. 이른바 엠제트(MZ)세대가 북한의 중추세력이 되면 변화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될 거다.”
―체제 변화가 내부로부터 점진적, 평화적 방식으로 이뤄진다는 건가? “요즘 북한을 보면 당이나 사회단체 회의 의제들이 자라나는 세대에게 집중돼 있다. 그들이 외부 사상과 풍조에 오염되지 않게 어떻게 차단하느냐가 주요 관심사다. <노동신문> 사설도 ‘핵을 가졌으니 군사적 수단을 이용한 외부세력의 ‘레짐 체인지’ 시도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쓴다. 대신 ‘자라나는 엠제트세대를 잘 관리하지 못하면 다른 동구권 국가들처럼 체제 붕괴가 일어날 수 있다’고 경각심을 주문한다.”
―북한의 내부 전환을 추동하는 수단으로 대북전단이 유효하다는 건가? “당연하다. 전단은 평화적 방법으로 북한 사람들의 생각을 변화시키니까.”
―전단 때문에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고 사회 갈등이 격화되는데, 그게 어떻게 평화적인 방법인가? “일부 단체들이 하는 공개적 방식은 나도 반대한다. 북한 자극하고 우리 정부와도 충돌을 불사하는 건 옳지 않다. 이건 심리전이다. 세상 어느 나라가 심리전을 공개적으로 하나. 은밀한 방법으로 조용하게 보내면 된다. 북한도 거기에 대해선 뭐라고 안 한다.”
―이미 북한에는 한국 영화나 드라마들이 유에스비를 통해 광범위하게 유통되고 있다. 체제 우월성과 자유에 대한 갈망을 심어주는 데 전단 수십만장이 한국 드라마 한편 못 따라가지 않겠나? “대북전단은 사실 휴전선 지대의 북한 군인들을 겨냥한 것으로 보면 된다. 전단과 함께 가는 동영상 유에스비와 달러가 엠제트세대가 주력인 북한군의 전투력을 약화시키는 효과도 분명하다.”
―지난해 이인영 통일부 장관 청문회에서 ‘언제 어디서 주체사상 버렸다고 선언한 적 있느냐’고 추궁한 건 아쉽다. 우리 사회에서 사상검증과 전향 문제가 작동해온 맥락을 이해했다면, 그런 질문은 던지기 어려웠을 거다. “내가 평범한 국민한테 ‘당신이 어떤 사상을 갖고 있는지 밝혀라’고 했다면 대단한 결례일 것이다. 그러나 북한 문제를 다룰 주무 장관에게 사상을 묻는 건 다른 문제라고 생각한다.”
mon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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