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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현장에서 나오기까지 26년…생존자 곁 '슬픔의 연대' - 한겨레

[토요판] 기획
삼풍과 생존자들

1995년 6월29일 삼풍백화점 참사
생존자 ‘산만언니’에게 출판 제안
세월호 유가족에게 손내밀었던 저자
기억의 고통 겪는 과정 보며 후회도

든든한 담당편집자 못 되고 휴직계
사랑하는 이와 반려묘가 세상 떠나
“하고픈 대로 하라”며 손내민 저자

2015년 6월28일 오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20주년을 하루 앞두고 서울 서초구 양재동 시민의 숲 안에 있는 삼풍백화점 참사 위령탑 앞에서 한 유가족이 가족의 이름을 매만지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2015년 6월28일 오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20주년을 하루 앞두고 서울 서초구 양재동 시민의 숲 안에 있는 삼풍백화점 참사 위령탑 앞에서 한 유가족이 가족의 이름을 매만지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 1995년 6월29일 오후 5시57분께 서울 강남 한복판의 ‘명품백화점’이 5층 왼쪽부터 기울기 시작했다. 북쪽 에이(A)동이 완전히 무너지기까지 걸린 시간은 20초. 사망자 502명, 부상자 937명, 실종자 6명이 발생한 참사에서 살아남은 이가 최근 <저는 삼풍 생존자입니다>를 펴냈다. 2018년 한 인터넷 매체에 ‘세월호가 지겹다는 당신에게 삼풍 생존자가 말한다’라는 글을 쓴 ‘산만언니’(필명)는 남은 이들의 숙제를 말한다. 그의 책을 만든 편집자가 슬픔을 가운데 두고 저자와 연대하게 된 이야기를 썼다. 2018년 4월, ‘세월호가 지겹다는 당신에게 삼풍 생존자가 말한다’라는 제목의 글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도배되었다. 우연히 그날 그 자리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당한 사고가 2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괴물처럼 따라다닌다는 삼풍 참사 생존자의 자기 고백이었다. 산만언니 작가가 글로써 자신의 불행을 공개한 이유는, 20여년 전 본인이 겪은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는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연대의 손을 내밀기 위해서였다. 참사는 이름과 얼굴만 바뀔 뿐 계속 반복되고 있으니까. 그는 더는 같은 고통이 생기지 않으리라는 생각에 글을 썼다고 밝혔다. 그의 진심은 절절했고, 불행을 겪는 타인에게 내미는 손은 따뜻했다. 이 글을 책으로 읽고 싶어졌다. _______
참사 생존자에게 책을 제안하다
그해 내가 근무하던 출판사는 ‘상업출판사’라는 타이틀을 공공연하게 표방하는 곳이었다. 기획회의 시간에 내 삼풍 기획안을 받아 본 상사는 “사회과학 책은 안 팔려”라는 이유로 기획을 보류시켰다. 그래, 그럴 수 있지. 회사는 이윤이 중요하고, 회사원으로서 나는 팔리는 책을 만들어야 하니까. 게다가 나도 힘든데 남의 불행을 열거한 책까지 누가 사 보고 싶어 하겠는가. 그럼에도 입안이 썼다. 이윤만 추구하다가 연이어 참사를 만들어내는 한국 사회를 비판하는 책을 ‘이윤이 남지 않는다’라는 이유로 보류해야만 했기 때문에. 2019년, 개인적인 이유로 회사를 옮겼다. 그때 가장 먼저 떠오른 기획 아이템 가운데 하나가 산만언니 작가의 삼풍 관련 글이었다. 지난 회사보다 기획에 대한 입지가 조금 더 넓어진 덕분에 작가에게 ‘함께 책을 내자’고 제안할 수 있었다. 처음 제안 메일을 보냈던 날을 기억한다. 그의 글을 접한 지 1년이나 지났으니 분명 눈 밝은 편집자와 이미 계약되어 있으리라 예상했다. ‘혹시 모르니 시도나 해보자’는 생각으로 1년 전 작성했던 기획안을 보강해 나름 정성을 들여 쓴 출간 제안 편지와 함께 보냈고, 대차게 거절당했다. 강경한 답장에는 ‘이런 일로 세상에 이름을 남기고 싶지 않다’고, ‘이미 몇 군데 책 출간 제안을 받았으나 전부 거절했다’고 적혀 있었다. 역시, 괜찮은 글이 아직까지 출간되지 않은 데에는 다 이유가 있구나. 아쉽지만 이해했다. 그의 글을 책으로 내고 싶은 마음은 업자로서의 내 욕심이다. 그분에게는 ‘불행을 전시해서 남들에게 보여달라’는 제안이 얼마나 잔인하겠나. 거절이 당연한 반응이었다. 거절당한 아쉬움보다 동료 시민으로서의 미안함이 더 컸기에 그 의견을 존중하고 싶었다. 편집자로서는 포기했으나 독자로서 아쉬움이 남았다. 그에게 답신을 보냈다. 당신은 겪은 사람이니까, 당신의 목소리에는 의미가 있다고. 최대한 당사자의 목소리가 세상에 많이 나와야 비당사자와 당사자 사이의 간극을 줄일 수 있다고. 나와 함께하지 않아도 상관없으니 꼭 좋은 편집자를 만나 책으로 내주시기를 바란다고 적었다. 사실 마지막 인사라고 생각하고 보낸 편지였고 지금 생각하면 주제넘은 참견이었는데, 그 메시지가 작가님에게는 하트 시그널처럼 느껴졌나 보다. 갑자기 태세를 전환한 이메일이 도착했다. “이지은 편집자님과 책, 하고 싶어요.” 돌고 돌아 책 작업을 시작했으나 출간까지 순탄치 않았다. 산만언니 작가는 삼풍 사고 날의 “덥고 습하던 날씨, 사고 직후의 먼지 내음과 피비린내, 매캐한 연기까지”(<저는 삼풍 생존자입니다>, 235쪽) 하나씩 다시 떠올라 글을 이어나가기가 힘들었다고 고백한다. “대단히 고통스러웠다. 매일같이 시공간을 초월해 1995년 6월29일의 서초동으로 되돌아가는 기분이었다.”(같은 책, 57쪽) 작가는 그날의 붕괴를 재경험하는 바람에 애써 가꾸어온 일상이 또 무너졌고, 그 일로 마음의 병까지 깊어져 20여년 근무한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다. 그 모습을 보니 후회스러웠다. ‘아, 이럴까 봐 책 제안을 거절하셨구나.’ 나는 그에게 계약금 100만원에 인세 10퍼센트를 쥐여주기로 약속한 대가로 무엇을 빼앗은 것일까. “한평생 소망했다. 이런 일을 겪지 않은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사는 일상을, 남들이 지루해 마지않는 생, 매일 아침 눈을 떠 따박따박 회사에 가고, 그저 그런저런 잡다한 일들을 하고 돌아와 씻고 눕는 그 단순한 일상을 나는 무척이나 사랑한다. 한데 대체 무슨 연유로 또다시 지난날의 상처를 헤집어 불행에 대해 말하고 다니느라 내 일상을 파괴하는가”(같은 책, 113, 114쪽)라고 중얼거리던 분에게 어쩌자고 책을 내자고 제안했을까. 다시 떠올려도 낯이 뜨겁다.
1995년 6월29일 무너진 삼풍백화점을 이튿날 찍은 것이다. 양쪽 벽 사이 지하 한가운데 시멘트 기둥 조각과 휘어진 철근 등이 뒤엉켜 있다.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1995년 6월29일 무너진 삼풍백화점을 이튿날 찍은 것이다. 양쪽 벽 사이 지하 한가운데 시멘트 기둥 조각과 휘어진 철근 등이 뒤엉켜 있다.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복직 뒤 원고 보니 색다른 점 ‘눈길’
무너진 건물서 빠져나오는 데 26년
힘든 시기 주변인의 크고 작은 선의 _______
애도 기간 편집자의 곁에 선 저자
그렇게까지 당신을 힘들게 했으면 책이라도 잘 만들어야 하는데, 나는 담당 편집자로서도 그리 듬직하지 못했다. 기껏 애써서 쓴 원고를 출판사에 넘긴 작가에게 ‘휴직한다’고 선언하고 말았다. 물론 나름의 사정은 있었다. 10년을 동거하던 반려 고양이와 백년해로하자 약속한 반려인이 같은 해에 암에 걸리더니 동시에 세상을 떠났다. 두 존재가 삶을 정리하는 과정을 돕기 위해 휴직을 감행했고, 언제 복직할지 기약할 수 없었다. 어쩌면 오래 자리를 비우게 될 것 같다고, 미안하다는 내 휴직 인사에 산만언니 작가는 “기다릴게요. 어차피 지은 편집자님 아니었으면 안 냈을 책이에요”라는 말로 부채감을 조금은 덜어주었다. 그때 우리를 떠올리면 커다란 크라프트지 쇼핑백에 담긴 츄르(고양이 간식) 수십봉지가 생각난다. 그가 건네준, 츄르가 맛별로 들어 있는 크라프트지 쇼핑백은 두 손으로 껴안아도 품에 다 들어오지 않을 만큼 거대했다. 산만언니 작가는 아마 ‘어떻게 하면 이 친구에게 도움이 될까’ 고민하다가 ‘고양이에게 츄르가 최고라더라’는 풍문만 듣고는 일단 장바구니에 가득 담아 오신 것 같았다. 다만 양 조절에 실패하는 바람에 그날 선물해준 츄르는 우리 집 고양이가 한평생 먹어온 간식 양보다 더 많았다. 그 덕에 우리 고양이는 마지막 날까지 츄르를 실컷 먹고 떠났다. 휴직 중인 편집자가 뭐가 그리 예쁘다고, 그는 수시로 연락해 나를 챙겼다. 그때마다 ‘말씀만이라도 감사하다’는 사회적 예의를 챙기는 대신에 그에게 한껏 기대는 길을 택했다. 평소 같으면 자존심이 목숨만큼 중요한 내 성향에 절대 타인에게 의지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 불행에 빠져 살던 시기인데다가 집 안팎의 이런저런 일로 마음이 요동치던 때라서 무조건적인 내 편이 필요했던 것 같다. 내 눈물과 하소연이 귀찮았을 법도 한데, 그는 묵묵히 들어주고 적절한 조언을 건네주었다. 언젠가 반려인의 생전 글을 함부로 도용한 잡지사 때문에 힘들어할 때는 “나랑 같이 그 회사 사무실에 쳐들어가자, 나 잘 따진다”며 한껏 목소리를 높여주기도 했다. “힘내”, “기운 내”, “산 사람은 살아야 해”, “네가 남편 몫까지 살아야지” 같은 공허한 말들이 내 주변을 맴돌 때, 산만언니 작가만은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라고 담담하게 말해주었다. 불행을 먼저 겪어본 짬밥에서 나오는 여유. 그 말에 ‘역시 제대로 불행해져본 사람만이 제대로 위로할 줄 안다’는 진리를 깨달았다. 그 말을 믿고 정말 하고 싶은 대로 했다. 싸워야 하면 싸우고, 울어야 하면 울었다. 덕분에 후회도 원망도 남기지 않고 그 어둡고 긴 터널을 비교적 순탄하게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 같다.
불행이란 이름의 붕괴 겪은 이들에게
손을 내밀 줄 아는 사람의 ‘생존기’
동시대에 사는 우리는 운명공동체 _______
다수의 연결이 결합한 선의의 기록
복직하고 원고를 다시 읽었다. 힘든 일을 겪기 전에는 작가의 삶 곳곳에 박혀 있는 크고 작은 불행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사고 당시의 고통스러운 상황과 친아버지의 자살, 친오빠의 학대, 자신의 우울증과 세번의 자살기도, 직장 내 괴롭힘과 퇴사까지. 그가 겪은 불행들이 너무나 선명해서, 어쩌면 조금은 연민이 일었던 것도 같다. 그러나 복직 후 다시 들여다본 작가의 글은 그때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가장 힘든 시기에 주변인들의 크고 작은 선의가 한 사람을 살렸고, 그들의 손길에 의지해 불행의 늪에서 밝은 빛 쪽으로 조금씩 걸어 나온 순간들이 비로소 눈에 들어왔다. 예컨대 그가 좌절의 나날로 벽을 치며 울 때마다 그 절절함을 귀신같이 알아채고는 뜨끈한 묵은지김치찌개와 가자미튀김, 포기김치까지 살뜰하게 해 먹인 수녀님, 아픈 엄마 수술비가 모자라 ‘그냥 죽어야겠다’고 결심한 작가에게 “네 인생 여기서 끝난 거 아니다”라며 적금을 깨 선뜻 돈을 빌려준 회사 동료, 10년 넘게 병을 돌보아주며 물질적·정신적으로 도움을 준 정신과 의사 선생까지, 작가의 불행 사이사이에는 ‘대가 없는 타인의 호의’들이 숨어 있었다. 그제야 그가 내게 보내준 무조건적인 선의들이 어디서 온 것인지 알 수 있었다. 그는 당신이 받아왔던 커다란 호의들 가운데 일부를 떼어내 나에게 전해준 것이었다. “내가 인정하기 싫은 생의 몇 안 되는 진리 가운데 하나인데, 상처를 주는 것도 사람이고, 그 상처를 치유하는 것도 사람이다. 물론 둘은 다른 사람일 확률이 높지만”(같은 책, 178쪽)이라고 말하면서. 조건 없는 호의 덕에 살아난 나는 이제 책에서 이야기하는 “동시대에 사는 우리 모두는 운명공동체다”(같은 책, 232쪽)라는 말을 이해할 수 있다. <저는 삼풍 생존자입니다>는 1995년 6월29일 삼풍 붕괴 사고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하고 있지만, 사고 당일에 겪은 이야기는 책의 일부에만 등장한다. 이 책은 건물 붕괴 현장에서 빠져나오기까지 26년이 걸린 한 사람의 고백이다. “사람들은 장례식장이 참사 유가족의 하이라이트라고 생각하지만, 그날의 오열은 훗날 끝없이 이어질 통곡의 예고편에 불과하다.”(같은 책, 210쪽) 그는 삼풍이라는 참사 현장에 1995년 6월29일 하루가 아닌 26년 동안 갇혀 있었다. 그리고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이들의 호의가 하나둘 모여 26년 동안 그를 조금씩 일상으로 끌어올려주었다. 그렇게 살아남은 산만언니 작가는 삼풍과 다를 바 없는, 이름만 다른 참사를 겪은 세월호 유가족이나, 원가족에게 버림받은 보육원 아이들, 일상에서 불행이라는 이름의 붕괴를 겪은 나와 같은 이들에게 손을 내밀 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했다. 그러니 이 책은 사회가 무너뜨린 한 사람의 좌절기이자, 공동체가 일으켜 세워준 한 사람의 생존기다. 산만언니 작가가 자신에게 주어진 붕괴를 감내하는 동안 수많은 이들이 그를 받쳐주기 위해 노력했고, 덕분에 그는 살아남았다. 나 또한 내 안에 든든하게 자리 잡고 있던 커다란 돌기둥 두개가 속절없이 무너졌을 때 곁에서 나를 지키려 노력해준 산만언니 작가의 선의와 글 덕분에 살아남았다. 그렇게 우리는 두해 남짓한 시간 동안 서로의 붕괴와 생존을 오롯이 지켜보았다. 그러니 상사의 기획 반려부터 저자의 출간 제안 거절, 편집자의 휴직까지 수많은 곡절이 있었으나 이 책은 결국 내가 작업할 운명이 아니었을까. 산만언니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제가 얼마나 불행했나보다는 어떻게 살려고 노력했는지에 집중해주셨으면 해요. 얼마나 많은 날 부표 하나 없는 망망대해에 떠서 저 멀리 희미한 등대 불빛 한 줄기에 희망을 걸고 헤엄쳤는지, 그 부분을 눈여겨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나도 이 책을 읽어줄 동료 시민들에게 같은 당부를 전하고 싶다. <저는 삼풍 생존자입니다>에 녹아 있는 한 사람의 생존뿐 아니라, 나를 포함한 다수의 연결이 결합해 만들어낸 선의의 기록을 눈여겨봐달라고. 이지은 푸른숲 편집부 과장, 출판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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