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불신 해소’ 적극 대응 필요
“이상반응” 국민청원 14건…접종 의향 6.6%p 줄어 61.4%
부작용 인과성 증명 쉽지 않은데 정부는 ‘보상 원칙’만 강조
한 재활병원에서 휠체어에 앉은 채 치료를 받고 있는 26살 작업치료사 ㄱ씨. ㄱ씨 아버지 제공
26살 작업치료사 ㄱ씨는 지난 3월4일 아스트라제네카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했다. 당일 저녁부터 극심한 두통과 의식 저하, 팔다리 힘 풀림 증상이 나타났다. 증상은 점점 심해졌고, 두 달이 지난 지금까지 휠체어 없이 혼자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다. 그동안 건설회사 현장소장인 아버지와 요양보호사인 어머니가 아들에게 나타나는 증상의 원인을 찾기 위해 문을 두드린 병원이 모두 5곳이다. 접종 당일과 이튿날 오전 찾은 응급실, 20일 정도 입원했던 경기도의 한 상급종합병원, 인천의 또 다른 대학병원과 서울의 대학병원, 5일 현재까지 입원해 종일 재활 치료를 받는 재활병원 등이다. “정부(지방자치단체와 질병관리청)에 어느 병원으로 가야 하느냐, 이럴 때 가라고 정부가 지정한 의료기관은 없는 거냐고 물어봤는데 아직도 답이 없어요. ‘피해조사반 회의를 열어 50명에 가까운 의사 선생님들이 검토했다. 그리고 백신과 연관성이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고 시 역학조사관이 전화를 한 것이 전부예요. 그러면서 ‘실비 보험 들어놓은 거 있냐’고 물어보더라고요. 실비 보험이라니요. 찾아가서 멱살이라도 잡고 싶었어요.” ㄱ씨의 아버지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이렇게 말하며 눈물을 쏟았다. 아들의 컴퓨터단층(CT) 사진을 들고 여기저기 다녔지만, 병원들은 가는 곳마다 여러 가지 가능성만 얘기했다. 결국 주치의가 ‘뇌척수염‘ 진단을 내렸고, 접종 전부터 진행된 질환이라는 판단과 함께 질병청 피해조사반은 인과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그동안 ㄱ씨의 아버지가 호소할 곳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뿐이었다. “이 병원 저 병원 백방으로 다니며 느꼈던 좌절감에 울분이 치밀어 오릅니다.”
초유의 사태인데…대응 체계는 코로나19 이전 그대로
지난 2월26일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작되고 5일까지 모두 353만명이 1차 접종을 마쳤다. 그런데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접종 뒤 이상반응을 호소하고 있는 사례는 ㄱ씨 아버지뿐만 아니다. 이날 오전까지 이상반응을 호소하는 청원 글은 14건이나 된다. 두통이나 몸살 같은 흔한 면역반응 사례가 아니라 ㄱ씨처럼 중증이고 희귀한 질환을 동반한 경우다. 그러나 정부의 반응은 그저 “백신과의 인과관계에 대한 조사가 진행 중”이라는 건조한 답변뿐이다. 접종 직후 증상이 나타난 시기적 인과성 때문에 의문을 가지는 당사자나 가족들이 정부의 공적 체계를 벗어나 국민청원 게시판 등 온라인으로 향하는 것은 그런 까닭에서다. 특히 오는 27일부터 65~74살 고령층 494만3천명에 대한 아스트라제네카 접종이 시작되면 ㄱ씨와 같은 ‘제도 밖 피해 호소’는 더 빠르게 늘어나고, 정부의 백신 접종 정책에 대한 신뢰 하락은 더 심각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이날 중앙사고수습본부가 문화체육관광부와 함께 수행한 코로나19 인식조사 결과를 보면, 예방접종을 받겠다고 응답한 비율이 61.4%로, 지난 3월 조사보다 6.6%포인트 줄었다. 정부는 현행 이상반응 대응 체계가 ‘과학’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을 연일 강조하고 있다. 중증이든 경증이든, 이상반응이 의심되면 개인이 신고를 한다. 그 뒤에 시·도 역학조사관이 조사를 하고, 질병청이 구성한 피해조사반의 전문가들이 의무기록 등을 바탕으로 인과성 여부를 따진다. 보상을 받으려면 백신과 인과성이 인정되어야 하고, 신고부터 보상까지는 최대 120일이 걸릴 수 있다. 인과성 판단은 ‘상대 평가’다. 정부는 이런 방식의 평가가 세계보건기구(WHO)가 정한 이상반응 판단 가이드라인을 따르고 있다는 점도 강조한다. 세계보건기구처럼 ①인과성이 명백한 경우 ②인과성에 개연성이 있는 경우 ③인과성에 가능성이 있는 경우 ④인과성이 인정되기 어려운 경우 ⑤명백히 인과성이 없는 경우 등 5단계로 구분하고, ①∼③이면 인과성을 인정해 보상 대상으로 삼는다는 설명이다. 박영준 질병관리청 예방접종추진단 이상반응조사지원팀장은 4일 “2∼4단계는 백신에 의해 발생했을 가능성과 다른 요인(고령, 기저질환, 전신 상태)을 저울질해 결정된다”고 말했다.
“인과관계 명백하지 않아도 피해보상 고려해야”
바로 이 지점에서 사회적 논란은 커질 수밖에 없다. 코로나19 예방접종 전에도 비슷한 논란이 없지 않았다. 2014년 생후 7개월에 예방접종을 받은 뒤 난치성 간질 등을 진단받고 1급 장애 판정을 받은 접종자의 가족이 긴 시간 소송을 이어간 것도 비슷한 상황에서다. 소송 끝에 대법원은 “의학·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증명되지 않았더라도 예방접종이 원인이라고 추론하는 것이 의학이론이나 경험칙상 불가능하지 않다면 인과관계를 인정해야 한다”고 판결(사건번호 2017두52764)했다. 인과성 판단이 어쩔 수 없이 ‘상대 평가’의 영역이라면 더 적극적으로 인과성을 인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취지다. 게다가 코로나19는 초유의 감염병 상황으로 최소 국민 70% 접종 완료를 목표로 하고 있다. 그렇다면 정부가 지금보다 더 적극적으로 이상반응 대응에 나서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정형준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은 “현대 의학에도 한계가 있기 때문에 모든 질환의 원인을 규명하지 못하기도 한다”며 “‘연관성을 밝힐 수 없다’와 ‘연관성이 없다’는 건 다르고, 만약 ‘연관성이 없다’는 점이 명확한 경우가 아니라면 보상을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의사 출신인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지난달 26일 “코로나19 백신은 긴급 승인된 신약이기 때문에 과학적으로 인과관계를 입증하기 어려운 그레이존(어느 영역에 속하는지 불분명한 부분)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며 “기저질환이 없던 사람이 백신 접종 뒤 문제가 생겼다면 긴급 지원이 이뤄져야 하고 기저질환이 있던 이도 인과관계가 명백하지 않아도 우선 피해보상이 고려돼야 한다. 의사가 백신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소견 정도만 있어도 보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는 여전히 법적인 어려움만 이야기하고 있다. 박영준 팀장은 “인과성을 평가하기 전 보상을 폭넓게 하는 것은 법적으로 어렵다. 선후 관계나 근거가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선보상 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며 “다만 (치료) 지원은 보다 빨리하는 방향으로 검토 중에 있다”고 설명했다. 최하얀 서혜미 기자
ch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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