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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할당제' 폐지하라!… 그런데 정작 폐지할 게 없다? - 한겨레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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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재보궐 선거를 계기로 이른바 ‘이남자(20대 남성) 표심’이 정치권의 화두로 떠오르면서 ‘여성할당제’란 말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남성중심사회에서 차별 개선을 위해 각 분야에서 필요한 인원 가운데 일정 비율을 여성에게 할당해 성별 다양성을 확보하는 제도다. 정치권에서는 여러 문제가 드러난 임혜숙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임명되는 데 ‘내각 여성할당제’가 작동했다는 주장이 등장했다. ‘이남자 표심’에 호소하고 있는 이준석 전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여성할당제 폐지’를 당 대표 공약으로 내놓기도 했다. 말은 많은데, 정작 ‘폐지 대상’으로 지목하는 ‘여성할당제’가 어떤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한국 사회에서 현재 법제화한 여성할당제에 어떤 것이 있는지 확인해봤다.
채용 과정에서 여성할당제로 남성이 손해?… 오히려 공무원 ‘양성평등 채용목표제’로 남성이 수혜
“정부 기조를 보면 여성할당제를 도입하고 하는데, 여성에 대한 혜택이 커지고 여성이 상대적으로 쉽게 기업에 들어오니까 허들이 남자한테 더 높다. 할당제가 또 다른 성별에 대한 차별을 만든다. 차별 해소를 위해서 차별을 야기하는 것이다.”
지난 2019년 표창원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당시에도 ‘뜨거운 감자’였던 20대 남성들의 목소리를 듣겠다며 연 간담회에서 한 참석자가 한 말이다. 이런 부류의 주장은 이미 취업시장에서 ‘여성할당제’가 작동한다는 것을 전제한다. 채용과정에서 남성 구직자가 이런 제도 때문에 역차별을 받고 있다고 본다. 공무원이나 사기업에서 여성을 일정 비율 이상 채용하도록 강제하는 ‘할당제’는 현재 없다. 공무원 채용과정에 도입한 ‘양성평등 채용목표제’가 저 참가자가 말했던 ‘여성할당제’와 가장 비슷하다. 그러나 실상은 ‘여성할당제’와 거리가 멀다. 양성평등 채용목표제는 5·7·9급 국가직·지방직 공무원 채용시험과 외교관 후보자 선발시험 등에서 시험단계별로 특정 성별의 선발예정인원이 30% 이상이 될 수 있도록 일정 합격선에서 선발예정인원을 초과해 합격시키는 제도다. 누군가를 떨어뜨리는 방식이 아니라 추가로 합격시켜 성별 균형을 맞추도록 설계되어 있다. 정부가 공직 내 실질적 양성평등 실현을 위해 1996년부터 시행한 ‘여성공무원 채용목표제’에 뿌리를 두고 있다. 2003년부터는 ‘양성평등 채용목표제’로 이름이 바뀌었다. 애초에 ‘여성할당제’ 성격을 띠었던 이 제도는 최근 10여년 간 ‘남성할당제’로 기능하고 있다. 공무원 공채시험 등에서 여성 합격률이 남성을 따라잡거나 넘어서면서, 주로 남성 응시자들이 추가로 채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인사혁신처의 ‘2020 공공부문 균형인사 연차보고서’를 보면, 2003년부터 2019년까지 양성평등 채용목표제를 적용해 추가 합격한 인원은 지방직 공무원의 경우 남성이 1898명, 여성이 1317명으로 남성이 581명 많다. 국가직의 경우 여성이 348명, 남성이 211명으로 여성 추가합격자가 137명 더 많았다. 최근엔 국가직 공무원 채용 때도 양성평등 채용목표제는 ‘남성할당제’로 작동했다. 2015∼2019년 통계를 보면, 국가직 공무원 역시 2015년을 기점으로 남성 추가합격자가 여성합격자보다 많아졌다. 지난 5년간 국가직 공무원 남성 추가합격자는 여성보다 36명이 많다.
내각 여성할당제로 여성 장관 혜택?…법제화된 ‘내각 할당제’ 없고 성비도 OECD 평균 못 미쳐
“민생이 왜 무너졌는가? 유은혜(교육)장관이나 김현미(국토)전 장관은 그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다. 추미애 전 법무장관은 법률가지만 검찰개혁이라는 과제를 시행할 자질은 없었다. 이들은 내각의 30%를 여성에 할당하겠다는 할당제의 수혜자다.”
20일 국민의힘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해 ‘여성할당제 폐지’를 전면에 내세운 이준석 전 국민의힘 최고위원이 지난 4월 중앙일보에 쓴 기고문 중 일부다. 기고문 속 문구만 놓고 보면 문재인 정부에 법제화한 내각 여성할당제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기간 공약집에 “남녀 동수내각 구성을 위한 지속적 노력”이라는 내용을 담았다. 후보자 시절 “단숨에 남녀 동수내각 실현은 어렵겠지만 출발할 때는 30% 수준에서 출발해 단계적으로 임기 내 남녀 동수내각 실천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 ‘구두 약속’에 가깝다. 그나마 이마저도 여성 장관의 비율이 33.3%를 차지하던 2020년 1∼12월까지 1년간 짧게 지켜졌을 뿐, 나머지 대부분의 기간에는 지켜지지 못했다. 지난 14일 논란 끝에 임혜숙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임명되면서 현재 18개 부처 장관 중 여성의 비율은 22.22%이 됐다. 애초 공약했던 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2015년 기준 29.3%)에도 못 미친다.
한국, 비례대표 여성할당제 도입했지만 효과 제한적…여성임원할당제도 유럽 비해 걸음마 수준
정치 영역에서의 여성할당제는 1970년대 북유럽 국가에서 도입하기 시작해 현재 100여개 국가로 확산했다. 한국에서는 2000년 정당법에 국회 및 광역의회 비례대표 선거 후보자 가운데 30% 이상을 여성으로 추천하도록 의무화했다. 그 뒤 법 개정을 거쳐 기초의회·광역의회·국회의원 비례대표 후보 50% 여성할당이 의무화되었다. 효과는 제한적이었다. 할당제를 본격적으로 도입한 17대 국회의 여성 국회의원 비율은 13%였다. 16대 국회(6%)보다 두 배 이상 늘었다. 그 뒤 여성 의원 비율은 해마다 약 2%포인트씩만 늘어나는 데 그쳤다. 21대 국회의 여성 의원의 비율은 19%에 불과하다.
국내 일반 기업의 여성임원할당제 도입은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수준이다. 2020년 8월5일 ‘이사회의 성별 구성에 관한 특례 조항’을 신설한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시행됐다. 개정안은 자산총액 2조원 이상인 주권상장법인은 이사회의 이사 전원을 ‘특정 성’으로 구성하지 않아야 한다고 정했다. 국내 상장기업 이사진 성별이 남성에 치우친 상황을 고려하면, 이사진에 여성을 꼭 두어야 한다는 규정이다. 시행 뒤 2년간은 의무 적용의 유예기간으로, 2022년 8월5일 전까지 대상 기업은 이사회에 여성 이사를 1명 이상 두어야 한다. 개정안의 원안에선 이사진의 3분의 1을 여성으로 구성하도록 한 걸 고려하면 크게 후퇴한 형태다. 기업 경영성과 평가사이트인 시이오(CEO)스코어가 지난해 3월 집계한 바에 따르면, 국내 매출액 상위 200대 상장사의 등기임원 1444명(2019년 9월 기준) 중 여성 등기임원은 39명(2.7%)이다. 노르웨이는 2003년부터 여성임원할당제를 도입했다. 공기업 및 상장기업 이사회 인원이 9명이 넘으면 남녀 이사를 40%씩 두어야 한다. 이를 지키지 않으면 해당 기업의 해산까지 가능하다. 유럽에서 여성임원할당제에 가장 소극적이었던 독일 역시 지난해 특정 규모 이상의 상장기업의 임원의 3분의 1을 여성임원으로 채우는 여성임원할당제를 도입했다. 전 세계에 1조3천억 달러(약 1400조원)를 투자하며 9200개 기업의 지분을 보유한 노르웨이 국부펀드는 지난 2월 투자 대상 기업에 여성 이사 비율을 30% 이상으로 높이도록 요구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 산업 등 주요 부문에서 여성할당제 도입을 비롯한 성별 균형 개선 움직임은 세계적 추세다. 한국의 ‘여성할당제’는 폐지를 거론하기에 그 실체가 희미하다. 폐지할 ‘여성할당제’가 마땅히 없는 셈이다. 임재우 기자 abbad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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