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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경찰이 답했다, “여경 무용론은 무용하다”고 - 한겨레

[인터뷰] 반복되는 여경 폐지 주장, 현직 남녀 경찰 생각을 들어봤다
서울경찰청 제공
서울경찰청 제공
매맞는 경찰 논란은 흔하다. 그때마다 공권력 강화, 무력사용 기준 완화를 얘기하지 ‘경찰 무용론’ ‘남경 무용론’은 나오지 않는다.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 중심으로 ‘여성 경찰 무용론’이 또 제기됐다. 누군가 현장 영상·사진을 올리고, 여성혐오적 댓글이 달리고, 일부 언론이 선정적 보도를 하고, 시간이 지나면 사그라드는 패턴은 이번에도 비슷하다. 매번 단편적이거나 부풀려진 현장 상황을 근거로 곧장 ‘여경 폐지’를 주장하다보니 실제 문제가 있었더라도 민생치안 개선 등 생산적 논의로 이어지는 경우는 별로 없다. 현직 남녀 경찰에게 현실성 없는 여경 무용론이 계속해서 나오는 이유를 들어봤다. 이들은 경찰업무에 대한 이해 부족, 일부 언론의 무비판적 중계보도 등을 원인으로 꼽았다. 여경 무용론 자체가 무용하다는 것이다. 다만 남성중심으로 짜인 경찰조직과 문화를 깨려는 지속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남경도 여경도 ‘물리력 자제’ 대응 매뉴얼 따른다
4월24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오늘자 K-여경’이라는 제목의 영상이 올라왔다. 여성 시위자 1명을 여성 경찰관 9명이 상대하는 모습이 담겼다. 작성자는 “여경 6명이서 여자 1명 제지하지 못해 3명 추가. K-여경이 있어 든든하다”고 썼다. 해당 글에는 여성 경찰을 비하하고 차별하는 내용의 댓글이 줄을 이었다.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국일보> 등이 ‘여경 무용론 또 터졌다’ 등 선정적 제목을 달아 보도했다. 이 영상을 본 현장 경찰의 생각은 어떨까. <한겨레>는 4월29일 서울지방경찰청 소속 여성 경찰(이하 포순이)과 남성 경찰(이하 포돌이)을 각각 인터뷰했다. 신원이 드러나는 것은 원치 않아 경찰관 상징인 포돌이·포순이로 표기했다. 경찰은 집회·시위 현장에 출동하는 기동대 의무복무(2년)를 해야한다. 기동대 근무 경험이 있는 두 사람은 “K-여경 영상은 문제가 되지 않는 사안을 문제화한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현장 업무에 대한 이해가 없어 생긴 오해라는 것이다. 가장 큰 오해는 집회·시위 참여자를 무조건 물리력으로 제압하는 게 경찰의 임무라는 인식이다. 포순이는 “집회시위의 자유를 보장하는 차원에서 최대한 물리력을 쓰지 않는 것일 뿐”이라고 했다. “일반 형사범을 체포할 때는 팔을 꺾는 등 물리력을 동원할 수 있다. 하지만 집회시위 참가자의 경우는 다르다. 불법 행위를 하지 않는 한 최대한 용인하는 게 매뉴얼이다.” 포돌이 역시 “남성 경찰도 영상 속 여성 경찰과 마찬가지로 시위자를 상대한다”고 말했다. 그는 “평화적으로 집회시위를 관리·운용하려다 보니 시위자의 최소 3배 이상 경력을 투입하고, 물리력은 최대한 쓰지 못하게 한다”고 했다. 물대포와 방패, 진압봉이 등장하는 집회·시위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현장 경찰들은 반복되는 여성 경찰 논란이 ‘경찰 업무는 몸 쓰는 일’이란 편견에서 비롯했다고 본다. 포돌이는 “생각보다 몸 쓰는 부서는 많지 않다. 바쁜 지구대에서도 몸을 쓰는 경우는 한 달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하는 수준이다. 힘과 체력이 필요한 부서에서도 물리력을 행사할 일은 많지 않다”고 했다. 실제로 경찰 부서는 경무, 감사, 정보화장비, 생활안전, 지역경찰, 수사, 교통, 경비, 정보, 보안 등 다양하다. ‘몸 쓰는 부서’인 형사과가 소속된 수사부서 경찰 비율은 전체 경찰 중 17.2%(2019년) 수준이다. 이마저도 내근직이 포함된 수치다. 포돌이는 “물리적인 힘을 이유로 여경 무용론을 말하는 것만큼 비논리적인 주장은 없다. 만약 남성 경찰이 힘 센 범죄자를 제압하지 못했다고 해서 남성 경찰들이 무용론의 대상이 되는 건 아니지 않느냐”고 했다.
집회시위 훈련 중인 여경기동대. 서울경찰청 제공
집회시위 훈련 중인 여경기동대. 서울경찰청 제공
 “편견 경험하다보니 위축”…혐오 파는 언론이 문제
이들은 여성 경찰 관련 논란이 반복되는 다른 이유로 언론보도를 지적했다. 언론이 혐오정서가 만연한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나온 주장을 받아쓰면서 여경 무용론을 부추기고 있다는 것이다. 해당 영상이 게시된 지 하루도 안 돼 <파이낸셜뉴스>가 ‘여경 무용론 재점화’란 제목을 달아 기사를 썼다. 이후 <한국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등이 줄줄이 여경 무용론 논란 기사를 쏟아냈다. 포순이는 “일부 누리꾼이 말하는 것과 언론이 보도하는 것은 무게가 다르다. 여성 경찰에 대한 혐오정서가 오프라인에서도 가시화될까 걱정”이라고 했다. 실제로 포순이는 집회·시위 현장에서 혐오발언을 듣기도 했다. “남성 경찰들 사이에서 여성 경찰이 경비를 서고 있으면 ‘여경들 쓸모도 없는데 왜 서 있느냐’고 툭 내뱉고 지나가는 분들이 있다. 온몸을 다 바쳐 공직을 수행하다가도 여경 무용론 같은 이야기가 나오면 내가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 같다. 그런 편견을 계속 경험하니까 유능한 여성 동료들도 조금씩 위축되는 것 같다.” 일부 남성 경찰은 이런 차별적 시선을 경찰 내부로 가져오기도 한다. 4월12일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는 경찰기동대에서 남녀 차별이 벌어지고 있다는 글이 올라왔다. 작성자는 밤샘과 당직 근무 등을 여성 경찰은 하지 않는다며 역차별 사례로 들었다. 포순이는 이런 논란이 나오는 이유로 ‘여성 경찰 수가 적다’는 구조적 문제를 꼽았다. “최근 기동대에서 여경은 왜 철야를 안 하느냐며 역차별 문제가 불거졌다. 여경기동대는 서울에 단 2개 중대여서 한 부대가 철야를 해버리면 다음 날 여성 시위자를 대응할 부대가 한 개밖에 남지 않아 철야를 못한다. 이런 구조적 문제를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으니 내부에서도 그런 목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김창룡 경찰청장도 기자간담회(4월19일)에서 같은 설명을 했다. “남자 기동대와 여자 기동대는 규모가 엄청나게 차이 난다. 남자 기동대는 부대별로 근무하고 51개 중대가 있다. 여자 기동대는 워낙 적어서 똑같이 근무를 시킬 수 없는 불가피성이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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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부 여론 흔들리지 않고 성평등 정책 펼쳐야
집회·시위 관리에서 여경 기동대 역할은 특화돼 있다. 경찰관기동대 운영규칙(제4조)을 보면 여경 기동대는 여성·장애인·노약자·임산부·소아동반자 등의 보호관리·단속·체포 등의 임무를 우선 수행하도록 돼있다. 최근 집회·시위에 참여하는 여성 시위자 비율이 늘면서 여경 기동대 필요성은 더 커졌지만, 규모는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올해 3월 기준 경찰관기동대 소속 경찰 9102명 가운데 여경 기동대 인원은 399명(4.3%)이다. 현장 경찰들은 조직 내 구조적 문제를 개선해나가는 것이 해결 방안이라고 본다. “기본적으로 남초 조직이었으니 모든 게 남성 기준에 맞춰져 있다. 과거 여성 경찰은 홍보, 민원실 업무 등 보조적 역할을 주로 해왔다. 사회 변화에 따라 경찰 조직도 변화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성별에 따른 역할을 구분하고, 유리천장도 존재하는 게 사실이다. 외부 여론에 흔들리지 않고 젠더 정책, 성평등 정책을 꾸준히 펼쳐 나가는 게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생각한다.”(포순이) “현장에서 능력은 개인 편차만 있을 뿐 성별에 따른 편차는 없다. 여성 경찰을 많이 채용해 현장 인력에서 여성 경찰 비율이 늘어나면 자연스럽게 인식이 개선될 것이다.”(포돌이) 지난해 8월 기준 여성 경찰은 전체 경찰 12만6681명 가운데 1만6086명(12.7%)이다. 총경(일선 경찰서장급) 이상 고위 경찰공무원 712명 중 여성은 23명(3.2%)에 불과하다. 경무관 이상에서는 104명 가운데 2명(1.9%)뿐이다.
여경 무용론, 여성 경찰 늘린다는 정책 나오자 반복해 등장 여경 무용론이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한 건 정부가 여성 경찰 비율을 높이겠다고 발표하면서부터다.  2017 11월 정부는 ‘공공부문 여성대표성 제고 계획’에 따라 2022년까지 여성 경찰 비율을 10.8%에서 15%로 늘리기로 했다. 2018년 9월 ‘지금 난리 난 부산 여경 논란’이라는 제목의 사진이 경찰공무원 지망생 온라인 카페에 올라왔다. 교통사고 현장에 여성 경찰 4명이 출동했는데 구경하던 시민이 구조작업을 대신 했다는 내용이었다. 근거는 현장 사진 1장과 작성자 주장뿐이었다. 부산지방경찰청은 “현장에서 제대로 대응했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여성 경찰관 선발 확대 계획을 비판하는 목소리는 계속됐다. 2018년 10월 민갑룡 경찰청장은 정부 목표 달성을 위해 해마다 신규 채용하는 경찰관의 25.8 %를 여성으로 채울 계획이라고 밝혔다. 민 청장은 “선진국처럼 기본적으로는 역량을 갖췄으면 남녀 구분 없이 누구나 경찰이 될 수 있어야 한다. 선진국은 20% 이상이 여경”이라고 했다. 이듬해 5월 ‘대림동 경찰관 폭행 사건’이란 제목의 14초짜리 영상이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왔다. 남녀 경찰이 술 취한 남성을 체포하는 과정에서 여성 경찰이 취객에 밀리는 장면, 무전으로 지원을 요청하는 장면 등이 여경 무용론의 근거가 됐다. 여경 대응에 문제가 없었다는 경찰 쪽 설명이 나왔지만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여경 폐지 청원이 올라오고, 정치권(하태경 현 국민의힘 의원)까지 ‘여경 불신’을 언급하며 논란이 커졌다. 2019년 3월에는 서울 관악구 초등학교 흉기난동 사건 진압 과정에서 여경 무용론이 다시 제기됐다. 여성 경찰이 진압 과정에 참여하지 않고 지켜보고만 있었다는 내용이었다. 서울관악경찰서는 “영상 초반에 나오는 사람은 일반 시민으로, 경찰관이 아니다. 당일 관할 파출소 근무조에는 여성 경찰관이 없었다”고 했다.
박고은 기자 eu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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