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376
2002-2007-2012년 경선서도 당심-민심 논쟁
문재인 대통령 “공직 후보는 국민이 선출해야”
집권을 목표로 하는 정당은 민심 외면 안 돼
당 지도부가 리더십 발휘해서 교집합 넓혀야
4월 9일 오후 국회 소통관에서 더불어민주당 초선 의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재보선 결과에 대한 공동 입장문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4·7 재·보선 참패 뒤 더불어민주당에서 불거진 당심-민심 논쟁이 한 달 가까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친문재인 성향의 열성 당원들이 의원들에게 보내는 ‘문자 폭탄’을 둘러싸고 의원들 사이에 “그럴 수 있다”거나 “그래선 안 된다”는 논란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저는 그동안 정치 막전막후에서 이 사안을 몇 차례 다룬 일이 있습니다. 당심-민심 논쟁의 본질은 정당의 의사결정 권한이 아래로 내려가면서 발생하는 구조적인 문제입니다. 당원도 국민입니다. 당심-민심은 분리될 수 없습니다. 다만 몇 가지 중요한 쟁점에 대해 당심과 민심이 일치하는 교집합 부분이 넓을 수도 있고 좁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민주주의는 선거로 권력을 창출합니다. 정당은 민심을 얻어야 집권할 수 있습니다. 당심과 민심의 교집합이 넓으면 집권하는 것이고, 좁으면 집권할 수 없습니다. 정당 지도부가 리더십을 발휘해서 당심과 민심이 일치하도록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당심과 민심을 자꾸 분리해서 보려는 시각으로는 당심-민심 논쟁의 핵심을 제대로 분석할 수 없습니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과 친문 성향 정치인들이 열성 당원들을 조종하고 있다”는 식의 음모론은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반감에서 나오는 엉터리 주장입니다. 친문 성향의 권리당원들은 외계인이 아닙니다. 사실 당심과 민심의 불일치 및 긴장 관계는 최근 새로 발생한 사안이 아닙니다. 1987년 김대중 총재가 만든 평화민주당 시절부터 당심과 민심 논쟁이 있었습니다. 이 부분은 설명이 좀 필요합니다. 1987년 6월 항쟁으로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쟁취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양 김 씨’로 불렸던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은 다수 국민의 단일화 염원을 저버렸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평화민주당을 창당해 대선에 출마했습니다. 평화민주당은 심하게 표현하면 ‘김대중의, 김대중에 의한, 김대중을 위한’ 정당이었습니다. 하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은 명분을 무척 중시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평화민주당의 당헌·당규를 세밀하게 만들고 철저히 지켰습니다. 김대중 총재는 중요한 결정을 할 때 “당의 결정에 따르겠다”는 말을 자주 했습니다. 당무회의나 의원총회를 열어 의견을 모은 뒤 이를 존중하는 방식으로 당의 모든 의사를 결정했습니다. 평민당의 당심은 김대중이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만든 정당이었기 때문입니다. 평민당의 당심은 호남이었습니다. 호남의 압도적 지지를 기반으로 성립한 정당이었기 때문입니다. 1987년부터 세 차례의 대선은 평민당 시각으로 보면 당심과 민심을 서서히 일치시켜 가는 긴 여정이었습니다. 1987년 대선에서 김대중 평민당 후보는 호남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습니다. 광주 94.41%, 전남 90.28%, 전북 83.46%였습니다. 그러나 전국적으로는 27.04%로 3위에 그쳤습니다. 당심과 민심이 전혀 달랐던 것입니다. 1992년 대통령 선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김대중 민주당 후보는 광주 95.84%, 전남 92.15%, 전북 89.13%를 득표했지만, 전국 득표율은 33.82%에 그쳤습니다. 낙선했습니다. 이번에도 당심과 민심은 달랐던 것입니다. 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는 광주 97.28%, 전남 94.61%, 전북 92.28%를 득표했습니다. 전국적으로는 40.27%를 득표해 당선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보면 비로소 당심과 민심이 일치한 셈입니다. 당심-민심 불일치와 갈등은 이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자주 나타났습니다. 2002년 새천년민주당의 대통령 후보 경선을 앞두고 당심은 ‘이인제 대세론’이었습니다. 그러나 광주에서 노무현 후보의 승리를 계기로 민심이 노무현 후보에게 급속히 기울었고 당심도 민심을 따라갔습니다. 이런 극적인 변화는 국민참여 경선이라는 제도 개혁 덕분에 가능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사후 자서전은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민주당이 국민참여 경선을 도입했다. 참여 신청을 받고, 당원과 국민을 같은 비율로 섞어 선거인단을 구성하기로 했다. 우리 정치사에서 처음 도입한 국민참여 경선은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일곱 명의 예비후보 지지자들이 최선을 다해 가입 신청서를 모았다. 인터넷을 통해 자발적으로 참여한 시민도 많았다. 이렇게 해서 무려 200만 명이 선거인단 참여 신청을 했다. 그중에서 2만 명의 선거인단을 무작위 추출해 전국을 순회하면서 선거를 했다.”
2007년 대통합민주신당 대선후보 경선에서는 민심을 반영하기 위해 사상 최초로 휴대전화 투표를 도입했습니다. 투표소 선거인단과 별도로 인터넷 접수를 통해 휴대전화 선거인단을 모집했습니다. 휴대전화 투표 결과는 손학규 39.5%, 정동영 35.0%, 이해찬 25.5%였습니다. 그러나 휴대전화 투표와 투표소 투표를 합산한 결과 정동영 후보가 대통합민주신당 대선후보로 선출됐습니다. 거칠게 표현하면 당심은 정동영, 민심은 손학규였던 것입니다. 정동영 후보는 대선에서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에게 완패했습니다. 2012년 민주통합당의 대선후보 경선에서는 전혀 다른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문재인 후보는 민심에서 크게 앞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손학규 후보가 당원들의 지지를 더 많이 받았습니다. 전국 순회 경선에서 손학규 후보는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는 ‘모발심’(모바일심)이 당심과 민심을 왜곡하고 있다”고 맹비난했습니다. 손학규 후보를 지지하는 당원들은 패색이 짙어지자 단상을 향해 물병을 던졌습니다. 문재인 후보가 대선 후보로 선출됐지만 상처가 너무 컸습니다. 문재인 후보는 1년 뒤 <1219 끝이 시작이다>라는 책에 이런 기록을 남겼습니다.
“민주당의 대선 경선은 2002년 대선부터 국민참여 경선에서 국민경선으로, 그리고 갈수록 더 많은 국민선거인단의 참여로, 국민 참여를 확대해 온 역사였습니다. 그건 시민들의 정치 참여를 확대한다는 측면에서 바람직한 방향이었습니다. 당세와 조직력에서 절대적으로 열세인 민주당으로서는 그나마 새누리당 같은 거대 정당에 맞서 대등한 선거를 치를 수 있는 원동력이기도 했습니다. 중앙선관위 발표에 의하면, 2012년도 기준 민주당의 진성 당원 수는 11만 7,000여 명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나마 총선과 대선이 있는 해여서 당원이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그 수준입니다. 게다가 지역 편중도 극심합니다. 예를 들면 영남 전체와 충청 지역, 그리고 강원도까지 모두 합쳐 봐야 전북의 몇 분의 일밖에 안 되는 실정입니다. 이 같은 구조에서 당원 중심주의로 회귀한다는 것은, 국민들과 멀어지겠다는 얘기입니다. 가뜩이나 작은 집의 문을 걸어 닫겠다는 뜻입니다. 선거에 나갈 공직 후보를 선출하면서, 국민들의 민심과 괴리된 당심(黨心)에 의존한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당직은 당원들이 선출하더라도, 공직 후보는 국민들이 선출하도록 하는 것이 올바른 방향일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이처럼 2012~2013년까지만 해도 문재인 대통령은 민주당 안에서 소수 세력이었습니다. 당심과 거리가 멀었습니다. 지금과 비교하면 엄청난 격세지감이 있지요? 문재인 대통령은 2015년 전당대회에서 대표에 당선됐습니다. 2016년 안철수 전 대표와 동교동계 의원들이 집단 탈당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친문재인 성향 권리당원들은 이런 고난의 역사를 겪고 나서야 민주당의 주류가 됐습니다. 이처럼 민주당의 오랜 역사를 살펴보면 당심과 민심은 가까워졌다가 멀어지기를 반복하며 끝없는 변주를 일으켜 왔습니다. 당심과 민심의 끝없는 이중주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앞서 말씀드렸듯이 당심과 민심의 교집합이 넓어질수록 집권 가능성은 커지고 교집합이 좁아질수록 집권 가능성이 작아진다는 사실입니다. 2022년 3월 9일 대통령 선거를 앞둔 더불어민주당의 지도부, 더불어민주당의 의원들, 그리고 더불어민주당의 당원들이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한겨레> 정치부 기자들이 최근 ‘민주당 강성 지지자 탐구’라는 기획 기사를 실었습니다. 권리당원 세 사람을 심층 인터뷰했고, 권리당원들이 누구인지 분석했습니다. 당 지도부와 열성 당원들이 어떻게 의사소통을 해야 하는지 전문가들의 견해를 소개했습니다. 오랫동안 정성을 들여서 취재한 기획 기사입니다. 시간을 내어서 한번 천천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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