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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형발전은 하향식·나눠주기식 아닌 국가 차원 큰 그림 통해 모색해야” - 경향신문

경향신문이 지난 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문재인 정부 4년, 국가균형발전정책’을 주제로 진행한 좌담회에서 전문가들이 의견을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진종헌 공주대 교수, 김사열 국가균형발전위원장, 조영태 서울대 교수, 마강래 중앙대 교수. 우철훈 선임기자 photowoo@kyunghyang.com

경향신문이 지난 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문재인 정부 4년, 국가균형발전정책’을 주제로 진행한 좌담회에서 전문가들이 의견을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진종헌 공주대 교수, 김사열 국가균형발전위원장, 조영태 서울대 교수, 마강래 중앙대 교수. 우철훈 선임기자 photowoo@kyunghyang.com

국가균형발전이 국가적 어젠다가 된 지도 십수년이 흘렀다. 그럼에도 균형발전은 여전히 도달하기 어려운 과제로 남아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올해 신년사에서 “지역이 주체가 되어 지자체와 주민, 지역 기업과 인재들이 머리를 맞대고 현실적이고 창의적인 발전 전략을 만들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지난달 말 방문한 광주형 일자리 현장에서도 “지역에서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야만 지역 청년들이 다른 곳으로 떠나지 않고 정착할 수 있다. 그래야만 수도권과 지역의 균형발전이 가능하다”고 했다.

거듭된 의지 표명에도 불구하고 수도권 집중 완화와 불균형 해소의 체감도는 높지 않은 게 현실이다. 균형발전은 장기적 안목과 비전을 갖고 추진해야 한다는 점에서 지금이라도 방향을 잘 설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문재인 정부 출범 4주년을 앞두고 지난 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김사열 국가균형발전위원장과 마강래 중앙대 교수(도시계획학), 조영태 서울대 교수(인구학), 진종헌 공주대 교수(지리학)가 머리를 맞대고 균형발전 정책의 실태와 대안을 고민했다. 이들은 “저출산·고령화·부동산 등 한국 사회의 고질적 문제를 풀 수 있는 단서가 균형발전 정책에 있다”며 “하향식, 나눠주기식이 아닌 국가 차원의 큰 그림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좌담회 전문.

- 참여정부 시절부터 지속된 균형발전 정책을 평가한다면.

마강래 교수 = 과거 정부에서 많은 균형발전 정책을 쏟아냈다. 수도권 집중 현상이 계속 진행 중이긴 하지만 그런 정책이 없었다면 수도권 쏠림이 얼마나 더 심해졌을까 싶다. 전후 비교가 아니라 정책의 유무를 비교해야 한다. 그만큼 수도권으로 인구와 산업이 집중되는 흐름이 강하다는 것이고, 더 많은 정책이 필요하다.

조영태 교수 = 정책을 많이 펴왔고 그 결과가 그나마 이 정도인 거다. 균형위가 정부 내에서 너무 힘이 없었던 게 아닌가. 일반 국민들은 대부분 균형위에 대해 모르고 어떤 정책을 효과 있게 펼쳤는지도 잘 모른다. 정책 효과도 필요하지만 균형위의 위상 제고도 필요하다.

김사열 위원장 = 균형위가 출범한 지는 오래됐지만 저도 작년에 위원장으로 취임해보고 ‘이렇게 해서 중요한 일들을 어떻게 할 수 있나’ 생각했다. 프랑스, 일본은 균형위 같은 조직이 국가기관으로 돼 있어 힘이 실린다. 제가 80여명 균형위 식구들과 같이 머리를 짜고 전문가들 의견을 들어보니 결국 지역에 일자리가 있고 거기가 살 만해야 한다.

진종헌 교수 = 참여정부에서 균형발전 정책을 어젠다로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고 효과도 있었다. 2016년까지 수도권 인구 순유출이 나타났다. 혁신도시 등 참여정부 균형발전 정책의 효과였다. 이번 정부에서는 하향식 정책이 아닌 시대 상황에 맞게 다르게 접근해보고 분권과 균형을 같이 추구하자는 쪽이다. 분권 강화를 통해 균형발전 효과를 근본적으로 높이는 전략이다. 그러나 당초 목표보다는 효과가 부족했다. 수도권 집값 폭등 등으로 균형발전에 대한 국민들의 의식도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다. 다른 차원의 정책이 필요한 시기다.

김사열 국가균형발전위원장. 우철훈 선임기자

김사열 국가균형발전위원장. 우철훈 선임기자

지역서 일하며 살 만해야 해
균형발전 지표 만들어 활용
조건 어려운 곳도 기회 줘야

- 수도권 인구 비중이 2019년 말 다시 50%를 넘었다.

조 교수 = 보육환경이나 일자리, 부동산 등은 지역별로 다른데도 출산율은 지역 전체가 떨어지고 있다. 생명체로서 사람도 생존 본능, 재생산 본능이 있는데 언제 재생산 본능이 발현되지 않고 생존 본능이 더 강해지나 봤더니 경쟁이 너무 심화되면 그렇더라. 그 경쟁이 물리적 밀도와 굉장히 관련이 있다. 수도권에 인구의 50~51%가 주민등록돼 있다. 25~34세 청년들은 56%가 수도권에 주민등록돼 있고 실제로는 60%가 넘을 거다. 이 좁은 공간에 너무나 많은 청년이 모여 있고, 이들이 느끼는 경쟁은 엄청날 거다. 수도권으로 자원이 다 집중됐고 지방은 자원의 총량이 적다.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와 달리 ‘목적지’가 수도권 하나밖에 없다. 싱가포르, 홍콩 출산율이 정말 낮은데 우리가 그런 도시국가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마 교수 = 저출산 문제가 밀도의 문제이고, 밀도에서 파생하는 경쟁의 문제라는 지적에 공감한다. 베이비부머에서 희망을 보고 있다. 제가 정의하는 베이비부머는 1955년생부터 1974년생까지 포함한다. 1685만명에 해당하는 거대 인구다. 은퇴 후 부부 기준으로 월 240만원의 적정 생활비가 필요하고, 최소 생활비는 174만원이 필요하다. 그런데 최소 생활비에도 못 맞추는 베이비부머가 대부분이다. 작년부터 1955년생이 고령인구로 편입됐고, 앞으로 20년간 거대 인구 3분의 1이 지속적으로 고령인구가 된다. 우리 사회가 지속 가능한가 고민해야 하는데, 베이비부머 설문조사를 해보면 이촌향도 세대가 큰 비율을 차지한다. 50~60%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갖고 있고, 여건이 되면 농촌으로 가고 싶다고 답한다. 수도권만 해도 이촌향도 베이비부머가 430만명 정도다. 이 중 10%만 지방으로 이전해도 43만명이고, 30%면 130만명이 넘는다. 이분들이 비수도권으로 이주하게 되면 행복감이 제고되고, 균형발전에도 기여하고, 수도권 부동산 가격을 낮출 수 있는 여건이 될 것이라고 본다.

- 서울 집을 팔고 지방으로 가면 당장 자산상 손해가 생길 텐데.

마 교수 = 10년 전만 해도 베이비부머가 주택 규모를 줄이거나 팔아서 생활비를 마련할 거라는 예측이 많았다. 그러나 베이비부머는 집에 대한 집착이 굉장히 강하다. 고령자 복지가 취약하니 스스로 집을 통해 마련하는 것이다. 만약 귀촌을 하게 되면 수도권에 보유한 집을 팔 수도 있지만 임대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임대차시장에 주택이 공급되면 전·월세 가격이 크게 내리고 매매시장에도 영향을 줄 것이라고 본다. 인터뷰를 해보면 지방으로 가고 싶다는 욕구가 많은데 결정을 못한다. 지역이 어려워지고 있고, 일자리도 없고, 소일거리라도 하고 싶은데 그걸 할 수 있는 게 대도시, 수도권이라 망설인다는 거다. 대한민국에 유용하지만 잉여화되고 있는 가치가 세 가지 있다. 베이비부머, 비수도권, 지역 중소기업들이다. 이 3자를 결합해 미래에 활용할 시나리오를 만들면 지속 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다. 베이비부머가 비수도권으로 귀향하고 지역 중소기업과 결합하는 형태다. 베이비부머가 생활비를 충당하고 자기실현을 하는 데 최적의 공간이 비수도권이 될 수 있다.

마강래 중앙대 교수. 우철훈 선임기자

마강래 중앙대 교수. 우철훈 선임기자

저출산·고령화·부동산 문제
원인은 불균형 발전서 촉발
지역에서 인구 댐 구축 절실

- 정부에선 지방의 거대 도시권 형성을 추진하고 있는데.

진 교수 = 국토의 공간구조가 변화하고 있다. 1970~1990년대 기업은 서울에 본사, 지방에 공장을 뒀다. 그러나 2000년대 넘어오면서 과거의 분업 체계가 약화되거나 대체되는 상황이다. 혁신적인 첨단 산업은 공장을 굳이 먼 지방에 세우지 않는다. 서울 인근에 반도체 공장 많지 않나. 수도권 중심으로 성장하는 첨단 산업이 공간적으로 압축적으로 나타나면서 전통 산업의 경쟁력이 약화되고 있다. 그 산업들은 개발도상국으로 이전한다. 지방의 산업·일자리 비중은 적어질 수밖에 없다. 서울의 혁신적 자원을 일부 나눠주는 것으로는 감당할 수 없다. 17개 광역시·도에 나눠주는 것보다 지방에 산업 생태계에 기초한 도시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 부·울·경 메가시티 전략도 그런 차원이다. 부산, 울산, 경남에 따로 만들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균형발전 정책을 광역시·도 기준으로 해도 중복이 나타난다. 초광역 단위, 메가시티로 묶게 되면 중복되는 부작용을 훨씬 줄일 수 있다. 각 도시의 기능들을 특화시키고 연계해 권역 전체가 하나의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하자는 차원에서 메가시티가 새로운 균형발전을 위해 아주 중요하다.

- 메가시티 전략의 일환으로 가덕도신공항도 추진되는데 타당한가.

진 교수 = 부·울·경이 메가시티를 지향하면서 국제 경쟁력을 갖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국제 경쟁력을 위한 요소가 공항과 항만이다. 김해공항이 그런 수요를 감당할 수 없다면, 미래 발전 전략에 따라 새 공항 계획은 당연히 도출될 수 있다.

마 교수 = 수도권은 서울·경기·인천이 묶여 산업 생태계도 잘 구축돼 있지만 지역에는 그런 시스템이 없다. 가덕도 논의가 어려운 게, 인프라에 대한 경제성을 분석할 때 과거 트렌드를 기반으로 미래를 예측한다는 점이다. 지역은 어려워지고 있기에 경제성 분석을 하면 당연히 경제성이 안 나온다. 경부고속도로도 그런 식으로 분석했으면 짓지 말았어야 할 것이다. 상위 위계를 가진 인프라는 지금은 경제성이 낮지만 기본적으로 수요를 창출할 가능성이 있다.

- 문 대통령이 균형발전을 위한 초광역 프로젝트 추진을 언급했는데.

김 위원장 = 지역의 자생적 몸부림을 국가가 적극 도와줘야 한다. 최근 메가시티 지원 범정부 태스크포스(TF)도 꾸렸다. 초광역적 사업, 지역 균형과 관련된 사업은 적극 발굴하고 미흡한 내용이 있으면 채워서라도 기회를 줘야 한다. 가덕도신공항과 비슷한 곳이 대구·경북 신공항, 광주 신공항이다. 이들 지역은 군사공항이 같이 있다. 군사공항 공간이 많아 민간공항으로 발전할 여지가 적다. 부산·울산은 그림을 보니 김해에 국내·군사공항을 두고 가덕도에 국제공항을 만드는 것이다. 지역의 지혜라고 봐야지, 특정 지역 일을 방해하고 수도권 입장에서 보는 것은 맞지 않다. 문 대통령도 가덕도신공항 완성이 2028년이라고 했다. 이 정부에선 사업이 타당한지 검증 정도가 끝날 텐데 너무 정치적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조영태 서울대 교수. 우철훈 선임기자

조영태 서울대 교수. 우철훈 선임기자

자원 총량 분배 방향 설정 때
중심엔 청년 세대 들어가야
이들이 ‘원하는 모습’ 연구를

- 혁신도시, 공공기관 이전 정책을 평가한다면.

마 교수 = 큰 의미가 있지만 힘을 모을 공간이 어딘지 구체적으로 모른 채 많은 지자체에 나눠주기 방식으로 진행됐다. 혁신도시지만 혁신이 없었다. 혁신을 이루려면 일자리 중심으로 대학, 공공기관, 민간이 협업하는 구조가 돼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반쪽의 성공이지 않았나. 2차 공공기관 이전이 필요하지만 서두를 필요는 없다. 지역 목소리를 담아 계획을 세우되 국가 차원의 혁신 시스템, 큰 그림을 갖는 게 중요하다. 균형발전의 공간적 단위가 어딘지 구체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진 교수 = 효율성과 형평성 두 측면에서 평가해야 한다. 공공기관 이전도 중앙에서 나눠줄 때 제일 중요한 것이 공평함이다. A지역에 큰 기관을 주면 다른 지역에도 하나씩 줘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효율성이 부족해진다. 이전되는 기관이 지역의 산업 생태계에 부합하는지를 덜 따질 수밖에 없다. 현시점에선 효율성을 더 따져야 한다. 지역 특성에 맞는 기관, 경쟁력과 자원에 맞는 기관이 가야 한다. 공간 단위는 17개 광역시·도가 아니라 초광역 메가시티를 지향해야 한다. 그래야 지역에 새롭게 중심이 만들어진다.

조 교수 = 우리가 가진 자원 총량이 정해져 있는데 또 나누는 게 좋을지가 먼저 연구돼야 한다. 그 중심에는 청년세대가 들어가야 한다. 청년세대가 원하는 방향은 어떤 모습인지 연구해야 한다. 이번 정부가 딱 1년 남았는데, 2차 공공기관 이전을 추진해 첫 삽 뜨는 것보다 공부를 해놓고 다음 정부가 받아쓸 수 있게 해야 한다.

진종헌 공주대 교수. 우철훈 선임기자

진종헌 공주대 교수. 우철훈 선임기자

균형정책 ‘광역 기준’ 땐 중복
‘부·울·경’처럼 초광역 묶으면
각 도시 특화·경쟁력 높아져

- 현 정부가 남은 임기 동안 역점을 둘 부분은.

진 교수 = 성과가 많진 않았지만 의미 있는 정책들을 많이 했다. 생활SOC(사회간접자본) 사업, 지역발전투자 협약제도도 시작했다. 다음 정부가 본격 시행하도록 준비하는 게 중요하다. 지역과 중앙정부가 수평적으로 대화하려면 지역의 협상력이 있어야 한다. 재정 분권과 같이 가야 한다. 중앙과 지역이 어떤 사업을 할 때 50 대 50으로 투자해 사업을 진행할 수 있을 정도의 재정적 노력이 있어야 한다.

김 위원장 = 지역에 기회를 줘야 한다. 잘되는 곳만 기회를 주면 정의롭지 않다. (사업 타당성 검토 시) 균형발전 지표를 만들고 제3의 점수를 넣어 조건이 더 어려운 곳에 기회를 줘야 한다. 이를 정부 부처가 수용하도록 설득하는 과정에 있다. 228개 시·군·구를 대상으로도 불균형 문제 해소를 시도하고 있다. 경남 함양에서 인구 감소로 초등학교가 없어지는 문제가 있었는데, 학생을 데리고 이주하면 일자리와 집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하고 있다.

조 교수 = 인구정책을 보건복지부, 여성가족부가 주로 하는데 인구의 과도한 집중 문제를 고려한다면 균형위가 중심이 돼야 한다. 기성세대가 아닌 밀레니얼 세대, Z세대의 눈으로 미래 비전을 담아야 한다. 제가 있는 서울대 보건대학원에서 학생들이 가장 원하는 게 스타벅스다. 도시가 일자리와 집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실제 국민들이 원하는 게 들어가야 한다. 베트남 정부의 인구정책 자문을 하고 있는데, 경제발전은 한국처럼 하되 인구는 한국처럼 안 되게 도와달라고 하더라.

마 교수 = 지방 도시 답사하면서 젊은층을 만나면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우리 동네에 스타벅스가 없다’는 것이다. 특정 브랜드를 강조하려는 게 아니라, 지방에서는 좌절감과 열등감의 요인이 된다는 거다. (인구 유출을 막는)인구 댐을 구축하는 게 지역에서 중요한데 신산업의 도심 지향성, 저출산, 고령화 속에서 공간 쏠림이 심화되고 있다. 가장 뜨거운 이슈인 저출산·고령화와 부동산 문제의 원인은 불균형 발전이다. 부동산 문제도 부동산정책만으로는 풀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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