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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위치 따라 황족·귀족·가축…'계급차별' 난무하는 온라인 - 한겨레

수년 전 폐지된 학업성취도 평가도 잣대로 동원
‘영끌’로 부동산 다걸기에 갈등 심화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대한민국 부동산 신분 계급도’ 수도권의 한 신도시에서 30년을 산 직장인 김세연(32)씨는 최근 내 집 마련 정보를 얻기 위해 온라인 부동산정보 카페에 가입했다가 이런 제목의 글을 맞닥뜨렸다. 국내 부동산의 서열을 분석한다며 서울 강남권 자치구들을 ‘황족’으로, 여의도 등을 ‘왕족’으로, 이른바 마용성(마포·용산·성동) 등을 ‘중앙귀족’에 빗댄 게시물이었다. 그 아래로는 ‘지방호족’, ‘중인’, ‘평민’, ‘노비’ 등이 이어지고, 김씨가 사는 동네는 ‘가축’으로 분류돼 있었다. 그 이하 시군구는 ‘재활용’이었다. 김씨는 “부적절한 비유”라며 댓글로 항의했지만, 곧 “왜 우리 ○○동은 귀족이 아니냐”는 식의 댓글 홍수 속에 묻혔다. 이런 ‘신분 계급도’를 극단적인 빈정거림의 사례로 보더라도, 실제 온라인 공간에선 ‘집을 어디에 샀는가’가 실제 그 사람의 ‘계급’처럼 취급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집값 폭등기에 부동산 투자가 많은 이들의 관심사로 떠오르면서 어느 지역이 투자처로 우월한지를 따지는 줄세우기가 일상이 되며 빚어진 풍경이다. 자기 동네를 유망 투자처로 띄우려는 이들 사이에 입씨름이 오가고, 지지를 받지 못한 지역은 어김없이 무시나 비하의 대상이 된다. 영끌(영혼을 끌어모아 투자) 등으로 부동산에 매달리는 이들이 많아지며 벌어지는 현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 “ㄱ동 vs ㄴ동, 어디가 상급지인가요?” 부동산 시장에서는 집값 전망 등에 따른 지역별 서열을 ‘급지’로 나눈다. 서울 강남권처럼 현재 집값이 가장 높고 앞으로도 수요가 몰릴 가능성이 큰 지역을 1급지, 그 인접 지역을 2급지 등으로 분류하는 식이다. 11일 한겨레>가 회원수 150만명이 넘는 국내 최대규모 부동산 커뮤니티를 확인해 보니, 이런 방식으로 “ㄱ동네 vs ㄴ동네 중 어디가 상급지인가”라고 따지는 게시물이 매일 수십건씩 올라온다. 아파트 장래성을 판단하는 명확한 기준이 없는 탓에 이러한 게시물들은 날 선 논쟁으로 이어진다. 최근 올라온 “송파 ㄱ단지 vs 분당 ㄴ아파트”라는 글을 보면 게시된 날에만 수십개의 답글이 달렸다. 두 지역 집주인으로 추정되는 회원들이 “양심 없는 주민이나 ㄴ단지라고 할 것”, “ㄱ단지면 서울 끄트머리”라는 등의 비난을 해가며 평행선을 달렸다. 업계 관계자들은 최근 들어 부동산 우열을 따지는 대상이 행정동이나 개별 단지 단위로 촘촘해지고 있다고 말한다. 과거에는 ‘서울 ○○구가 낫나, △△구가 낫나’를 두고 다퉜다면, 지금은 같은 구 안에서 ‘○○구 △△동 대 ◇◇동’이나 ‘엘리트레파(잠실지역 주요 대단지 아파트의 앞글자를 딴 말)’의 매수자들끼리 우열을 놓고 싸운다는 것이다. 상급지로 인정받으려는 다툼에서는 학군, 교통여건, 지역의 소득수준 등 온갖 지표가 근거로 쓰인다. 아파트값에는 동네의 생활환경과 이웃들의 교육수준, 주택 구매력 등이 두루 반영된다는 시각 때문이다. 이는 부동산 서열이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수준까지 결정한다는 그릇된 인식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부동산 커뮤니티에서 빈번히 언급되는 “집값이 곧 민도”라는 표현에는 이러한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동은 월급쟁이 노비들이 사는 지역”, “집값 낮은 △△단지는 아이들 인사성부터 떨어진다”는 등의 말도 마찬가지다. 장재현 리얼투데이 리서치본부장은 “실거주 목적으로 집을 산 사람들은 지역이 전체적으로 발전하기를 바라겠지만, 최근에는 갭투기(전세를 끼고 매입)처럼 시세 차익을 볼 목적으로만 매입하는 사람이 늘면서 바로 옆 아파트도 경쟁상대로 보는 경향이 뚜렷해졌다”고 설명했다. ■ 아전인수식 부동산 줄세우기 부동산 시장의 줄세우기는 ‘집값 키재기’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초등학교 학업성취도평가 △고등학교 졸업생의 의대진학 비율 △행정구역별 국민건강보험료 납입총액 △기대수명 △대기업 본사 수 등 출처를 알 수 없는 지표들이 서열화에 동원된다. 실제 온라인 부동산 카페에서는 “일제고사(성취도 평가)에서 ○○초의 기초학력 미달 비율이 지역 내 최저”라는 식의 글이 도배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최근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의 행정동별 득표율을 기준으로 상급지를 따지는 게시물까지 부동산 카페 등에서 공유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자료들 중 상당수는 왜곡되어 부정확하거나, 부동산 시장에서의 시세 등락과는 무관하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특정 지역이나 단지의 집값을 띄우기 위해 아전인수 격으로 끌어온 수치가 많다는 것이다. 실제로 초등학교 학업성취도평가는 학력 서열화 조장 등을 이유로 지난 2013년 폐지됐으나, 여전히 10년 가까이 지난 자료들이 부동산 시장의 ‘선행지표’라며 공유되고 있다.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주택정책연구실장은 “특정 지역이나 단지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자 유튜브나 인터넷 카페 등에 떠도는 정보가 주택시장을 심각하게 왜곡하고 있다”며 “잘못된 정보를 근거로 부동산의 입지조건을 판단하거나 매매에 나서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고 조언했다. 천호성 기자 rieux@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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