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오전 10시23분, 서울 은평구 불광동에 있는 ‘연세큰숲내과’에서 아스트라제네카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하고 있는 기자. 왼손으로 휴대전화를 들어 셀카를 찍다보니 눈 깜짝할 새 접종이 끝나 있었다.
“전삼후타”라고 했다. 지난 2월26일 시작한 코로나19 예방접종 초기에 백신을 접종한 한 친구의 권유였다. ‘전삼후타’는 백신 접종 ‘전’에는 ‘삼’겹살을 먹고, 접종 ‘후’에는 ‘타’이레놀을 먹어야 한다는 얘기다. 백신을 맞으면 면역반응으로 인해 발열과 두통, 몸살 등의 증상이 나타나니 아세트아미노펜 계열의 해열제인 타이레놀이나 펜잘 등을 복용해야 한다는 점은 방역당국도 여러 번 공지해 알고 있었다. 그런데 삼겹살이라니? 이유를 수소문해보니 누군가는 “삼겸살에 찬 성질이 있어 발열 반응을 중화해준다”고 했고, 누군가는 “삼겹살에 포함된 아미노산을 미리 보충해 면역력에 쓰일 재료를 보충해두는 것”이라고 했다. 과학적인 근거 따윈 없어 보였다. 하지만 먹어둬서 손해 볼 건 없지 않은가? 그렇게, 접종 전날 저녁은 무조건 ‘전삼’을 하자고 생각했다.
나는 2014년 11월부터 혈액투석을 하고 있는 만성신부전 환자다. 애초 계획대로라면 6월에 접종이 예정되어 있었지만, 정부는 4월2일 2분기 접종계획을 수정해 발표하며 만성신장질환 투석환자 7만9천명에 대해 4월23일부터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접종한다고 밝혔다. 이후 보완을 거쳐 접종 시작일은 4월26일로 조정됐다. 몸이 약한 환자지만, 무조건 투석병원에 모여 투석을 해야 하는 처지이니 집단감염 위험이 높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날은 순식간에 다가왔다. 지난 19일 평소처럼 월요일 저녁 투석을 위해 서울 충정로에 있는 투석병원을 찾았더니, 간호사가 ‘코로나19 예방접종 사전예약 시스템’을 소개해줬다. 4월1일 시작한 75살 이상 고령자 364만명을 대상으로 한 접종은 주민센터 등에서 개인정보 제공과 접종 동의를 받은 뒤 접종 일정을 정해서 접종 대상자에게 알려주는 방식이다. 하지만 투석환자는 본인이 직접 접종 일정과 의료기관을 정하게 되어 있었다. 스마트폰으로 ‘코로나19 예방접종 사전예약 시스템’에 접속한 뒤 ‘휴대폰 본인인증’을 했고, 내가 사는 ‘서울시 은평구 진관동’까지 입력하니 접종 가능한 의료기관으로 동네 의원 이름이 한 군데 검색됐다. 이 의원 이름을 누르니 예약 가능 시간대가 떴다. 나는 일주일에 월, 수, 금 저녁 세 차례 투석을 해야 한다. 일주일이 투석하는 사흘과 하지 않는 나흘로 나뉜다. 투석하는 날은 투석 직전까지 몸에서 빠져나가지 못한 노폐물과 수분 탓에 온몸이 부어 있고, 투석하지 않는 날은 전날 저녁 4시간 정도 투석으로 4㎏ 정도의 노폐물과 수분을 한꺼번에 배출한 상태여서 온몸에 기력이 빠져 있다. 그러니 둘 중 어떤 날 접종을 하느냐가 관건이 됐다. 투석병원에 물어보니 이미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접종한 한 간호사가 “보통 접종 이튿날부터 면역반응이 오니 투석하는 날 접종하고 이튿날에는 아무것도 하지 말고 쉬는 게 낫다”고 조언했다. 이왕이면 접종 시작 첫날 맞자는 생각에 4월26일 월요일을 골랐고, 오전 11시와 오후 3시 가운데 오전 시간을 택해 접종을 예약했다. 그랬더니 자동으로 11주 뒤인 7월12일 같은 병원 같은 시간으로 2차 접종이 예약됐다.
이튿날 변수가 생겼다. 4월20일 낮 12시30분께 예약한 동네 의원 간호사가 전화를 걸어왔다. “보건소에서 투석환자는 접종 뒤 대응이 가능한 의료기관으로 유도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투석환자여서 아무 약이나 먹을 순 없으니 투석을 운영하는 병원에서 접종하는 게 좋겠다”는 권유였다. 간호사는 이어 “은평구 불광동에 투석을 운영하는 ‘연세큰숲내과’라는 곳이 있다. 저는 보건소 쪽에 취소하겠다고 얘기해두겠다”고 덧붙였다. 그래서 곧 다시 ‘코로나19 예방접종 사전예약 시스템’을 열고 ‘연세큰숲내과’를 찾았고, 이번에는 오전 10시가 비어 있어 그 시간대로 예약을 변경했다.
왼쪽은 집에서 에어프라이어로 구워 먹은 돈가스, 오른쪽은 식당에서 가서 사 먹은 오겹살.
접종 전날이 되자 살짝 긴장이 됐다. 평소라면 땀 흘리는 운동이라도 했겠지만, 이날은 오로지 휴식과 “전삼”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느긋하게 일어나 첫 끼니 점심으로는 에어프라이어로 구운 돈가스를 먹었다. 삼겹살은 아니지만 같은 돼지고기니까, 굽거나 튀기거나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저녁은 동네에 있는 고깃집으로 가서 오겹살을 구웠다. 이번에도 ‘삼’이 아니라 ‘오’인 게 약간 맘에 걸렸지만, ‘겹이 하나라도 더 많은 게 아미노산도 더 많을 것’이라는, 역시 과학적 근거 따윈 1도 없는 몹쓸 확신을 바탕으로 열심히 굽고, 뒤집고, 먹었다. 마침내 접종 당일이 됐다. 오전 10시 접종인데, 병원에는 9시58분께 도착했다. 병원 대기실에는 환자나 보호자로 보이는 이들이 7~8명 앉아 있었다. 데스크에 가서 “백신 접종이 예약돼 있다”고 했더니, 이름을 확인한 뒤 발열 체크를 하고 ‘코로나19 예방접종 예진표’를 작성하라고 했다. 예진표에는 예방접종 과정에서의 개인정보 처리 등에 대한 동의, 접종 대상자의 현재 상태 등에 대한 확인 등이 기재되어 있었다. 예진표를 작성해 제출했더니 이름을 부르면 ‘진료실’로 가라고 했다. 10시15분께 이름이 불렸고, 진료실로 갔더니 의사가 간략히 몸 상태를 물었다. 그 뒤로 2진료실로 이동했고, 간호사가 오더니 빠른 속도로 설명했다. “오늘은 샤워와 땀나는 운동, 음주 금지입니다. 주사 맞은 어깨가 뻐근할 거예요. 팔을 올리기 힘들 수가 있습니다. 면역반응이 있을 텐데, 그거는 타이레놀로 컨트롤할 거예요. 최대복용량은, 투석환자라서 다른 환자들과 다른데 우선 한 알 정도 생각하시고, 많이 불편하면 두 알 정도 드시는데, 두 알씩 세 번, 최대 여섯 알 정도 복용을 권장해 드려요. 보통 면역반응은 9~10시간 정도 뒤부터 나타나는데, 이틀 정도 갈 겁니다. 접종 뒤 15분 정도 볼 거고요. 15분 사이에 어지럽다거나 기분이 이상하다 그러면 저희 바로 불러주세요. 만약 집에 가신 뒤에 쇼크 반응, 아나필락시스(급성 중증 알레르기 반응) 라고 저희가 가장 우려하는 반응이 있거든요. 호흡 곤란이나 입술 부종, 입안 부종, 전신 두드러기가 확 올라오거나 하면 지체 마시고 바로 응급실로 가셔야 합니다.” 이후 빠르게 오른 어깨 쪽에 주사를 놓더니, 15분을 체크하는 알람 시계를 켜고, 간호사는 총총 사라졌다. 접종받은 의자에 앉아 있던 15분 동안 다행히 아무런 느낌이 없었고, 알람 시계를 반납한 뒤 집으로 돌아왔다.
‘연세큰숲내과’에서 주며 작성하라고 한 ‘코로나19 예방접종 예진표’
그날 저녁까지 10시간이 훌쩍 지났는데도 몸은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어깨가 뻐근하다더니, 주사 맞은 곳도 아프지 않았다. 한쪽에선 걱정이 일었고, 한쪽에선 좌절감이 생겼다. ‘이렇게나 반응이 없으면 접종기에 쓸 게 없는데…’라는 걱정, ‘이렇게나 항체가 생기기 어려운 저질 몸이 된 건가’라는 좌절감이었다. 그러면서 접종 초기 백신을 맞고도 아무런 증상이 없다며 ‘늙어버린 몸’을 자조하던 감염내과 의사들의 한숨이 떠올랐다.
걱정과 좌절은 섣불렀다. 접종 당일 밤부터 주사 맞은 어깨가 스멀스멀 결려오기 시작했다. 일단 투석병원에서 받은 펜잘을 한 알 먹고 잠들었다. 밤사이 몸이 조금씩 뜨거워지기 시작하더니, 새벽에는 자다가 뭔가에 깜짝 놀라 깨는 일까지 생겼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미열이 있어 온도계로 체온을 재어보니, 37.5도가 나왔다. 그렇게 격렬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무시할 수도 없는 두통이 오기 시작했다. 주사 맞은 어깨는 점점 근육통의 범위가 넓어졌다. 가장 참기 힘든 건 역시 그렇게 격렬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무시할 수도 없는 몸살 기운이었다. 그것은 그냥, 무기력증 같은 것이었다. 몸이 “나는 지금 항체 형성에 올인하고 있으니까 다른 일을 할 거라고는 꿈도 꾸지 마”라고 끊임없이 다그치는 기분이었다. 하루 종일 침대와 소파에 누워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었지만, 더욱더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종일 챙겨보던 뉴스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들여다보고 싶다는 생각조차 1도 나지 않았고, 심지어 그렇게나 즐기던 탄수화물 섭취조차 만사 귀찮았다. 밥알을 씹는 치아에 온몸의 뼈가 연결돼 한 번 씹는 데 206개의 뼈가 한꺼번에 욱씬대는 느낌이었다. 펜잘은 점심때 한 알을 먹었고, 자기 전 또 한 알을 투여했다. 그렇게 하루 종일 하나도 격렬하지 않게 끙끙댔다. 그러더니 접종 사흘째인 28일 오전, 잠에서 깨니 거짓말처럼 몸이 가벼워졌다. 체온은 36.2도가 됐고, 무시할 수 없던 두통과 몸살 기운은 깨끗이 사라졌다. 주사 맞은 어깨 근육통만 다소 남았다. 그리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접종 7일째인 2일까지, 미세하게 남아 있는 주사 맞은 어깨 근육통을 빼면 아무런 이상반응이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백신 1차 접종으로 1차 면역 형성을 마친 <한겨레> 1호 접종자가 되었다.
코로나19 예방접종 뒤 이상반응이 있을 경우 이 전화번호로 신고하면 된다.
백신 접종에 모든 신경을 쏟은 일주일을 겪으며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하나는 ‘백신 휴가’의 필요성. 최소한 접종 당일과 면역 반응이 일었던 이튿날은 국가와 기업이 접종자를 무조건 쉴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백신 접종은 나 하나의 면역을 위한 게 아니라 ‘집단 면역’을 위한 도전이기 때문이다. <한겨레>도 노사가 합의해 백신 휴가를 도입한다.
다른 하나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에 대한 불신 관련이다. 유럽에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이 젊은층을 중심으로 혈소판 감소를 동반한 희귀 혈전증 증세가 나타나 일부 사망자도 발생했다. 하지만 한국에는 2일 현재까지 183만명이 아스트라제네카를 접종했어도 아직 희귀 혈전증으로 인해 숨진 사례는 없다. 서너명 증세가 나타난 이가 있지만, 이들 모두 치료를 받고 있는 현재까지 다행히 상태가 더는 악화하지 않고 있다. 국가가 백신과의 연관성 여부와 관계없이 이들의 치료비와 생활비 등을 전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부는 사망자가 발생하기 전 30살 미만에게 아스트라제네카 접종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다행히 최근 젊은층에 대체 접종할 화이자 백신도 2천만명분 추가로 확보했다. 이런 상황이면 더는 아스트라제네카 접종을 피할 까닭이 없어 보인다. 그리고 그게, 1년 넘는 시간 동안 코로나19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우리 주변 영세 자영업자들과 언제 감염으로 기저질환이 악화할 지 모르는 공포 속에 사는 ‘건강 약자’들, 학교에 가지 못해 관계와 돌봄의 교육에서 배제되고 있는 사회적 취약층 학생들을 위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도전일 것이다. 공존과 연대라는 이름을 위한. 글·사진 이재훈 기자
n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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