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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개혁으로 레임덕 시작? 반전카드 있나 - 경향신문

2004년 참여정부 4대 개혁입법 추진 실패 답습하나

“여론이 좋지 않은 건 우리도 안다. 지지율이 30%로 내려간 것도.”

12월 2일 통화한 청와대 인사의 말이다. 법무부 차관 인사 발표 전이다. 이 인사는 이미 신임인사는 월요일 결정되어 있었다고 말했다. “어떻게 하나. 이렇게라도 가야지. 공수처장을 뽑고 갈 길은 가야 하지 않을까. 법을 바꾸고 기소권을 (검찰로부터) 가져오는 게 핵심이다. 검찰이 저항하는 것도 그것 때문이다.” 이후 전개될 상황은 이미 각오했다는 뜻이다.

유창선 정치평론가는 현재의 검찰개혁 형국에 대해 청와대·여권으로서는 “이겨도 지는 게임”이라고 말했다. “결국 추미애의 늪에 빠져버렸다고 본다. 민주당이나 문재인 대통령 모두.” 유 평론가는 “추 장관의 폭주를 적절한 선에서 통제하고 관리했어야 하는데 그냥 수수방관하다가 편을 안 들 수 없어 들어주다가 함께 늪에 빠진 모양새”라고 덧붙였다. 그런 걸까.

문재인 대통령이 12월 1일 오전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영상 국무회의에서 회의시작을 알리는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12월 1일 오전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영상 국무회의에서 회의시작을 알리는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추미애의 늪에 전체 진영이 빠졌다”
검찰개혁을 둘러싼 사태의 전개를 보는 사람들이 떠올리는 일이 있다. 기시감이다. 2004년 참여정부 시절 이른바 4대 개혁입법 추진이다. 탄핵 후 치러진 17대 총선에서 신생 열린우리당이 압승했다. 새로 국회에 진출한 인사들을 두고 ‘탄돌이’라는 별명이 나왔다. 탄핵 덕분에 배지를 단 의원들이라는 것이다. 86그룹 인사들이 민주당의 간판으로 대거 당선됐다. 당시 이들이 앞장서 추진한 것이 4대 개혁입법이었다. 국가보안법, 사립학교법, 과거사진상규명법, 언론관계법의 폐지나 제·개정이다. 2004년부터 3년간 계속된 4대 개혁입법 투쟁은 실패한 것으로 평가된다. 국가보안법의 독소조항은 손도 못 대고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당시 보수 야권의 격렬한 저항을 받은 사립학교법은 결국 누더기개정안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100년 정당을 목표로 창당된 열린우리당은 참여정부 임기가 끝나기도 전에 해산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문재인 대통령의 <문재인의 운명>이나 <1219 끝이 시작이다> 등의 저서, 조국 전 장관이 펴낸 <진보집권플랜> 등을 보면 4대 개혁입법에 올인했던 ‘전략적 실수’를 거론한다. 권력개혁 작업은 정권이 가장 힘을 가진 초기에 착수해서 정권 중반기 이전에 완료를 했어야 한다는 요지다. 모두 다 알고 있는 교훈이다. 그런데 뻔히 알면서도 왜 비슷한 실수가 되풀이되는 걸까.

12월 3일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발표한 문재인 정부 국정지지율 여론조사 결과 37.4%였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래 리얼미터는 매주 국정지지율 조사결과를 발표해왔다. 적어도 리얼미터 조사상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40% 밑으로 떨어진 것은 처음이다. 정당지지율에서도 오차범위 이내지만 골든크로스가 나타났다. 국민의힘이 31.2% 민주당이 28.9%다. 국민의힘이 30%대로 올라가고, 민주당이 20%대로 내려선 것도 이번 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벌어진 현상이다.(신뢰수준 95%, 표본오차 ±2.5%p, 자세한 사항은 리얼미터 홈페이지 참조)

“어젠다를 잘못 세운 것은 아니었다. 추진하는 방식이 서툴렀다. 선택과 집중을 하지 못하고 4개를 늘어놓고 전선이라고 하면서 전략적 대응으로 나오는 기득권세력의 저항을 막지 못했다.” 이철우 전 의원의 말이다. 이철우 전 의원은 1987년 6월항쟁 당시 서울시립대 총학생회장이었다. 17대 때 국회에 진출한 86세대 코어그룹이었다. 그는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고 덧붙였다. “물론 그때의 386과 지금의 586은 다르다. 상당히 세상을 보는 눈도 넓어졌고, 연륜도 쌓였다. 2004년부터 17년이 지나는 동안 개혁과제도 달라졌다. 국정원법 개정을 그때 했으면 난리나지 않았을까.” 87년 6월항쟁이 만든 형식적 민주주의 마지막 과제가 검찰개혁이라며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검찰은 예전부터 똑같았다. 정권 후반기가 되면 어떤 형태로든 살아 있는 권력을 죽이고 수사권을 가지고 정치를 해왔다. 법은 정치와 다르지 않은 문제다. 안타까운 것은 국민이 압도적 지지율을 줬을 때 했어야 하는데 뜸을 들이고 유야무야하다가 여기까지 왔다는 것이다. 핵심은 기소권과 수사권을 독점하고 있는 검사동일체 원칙을 해체하는 것이다. 공수처는 오히려 곁가지다. 결국 시간이 지체되면서 제도가 아닌 인물이 검찰개혁의 핵심인 것처럼 변질된 것 같다.”

2006년 국가보안법이 지금 공수처법?
원내 인사인 정청래 의원도 17대 때 초선이 된 86코어그룹 인사다. 정 의원도 2004년 4대 개혁입법을 거론했다. 하지만 현재 상황에 대한 평가나 집중과제에 대해서는 상반된 결론을 내리는 것으로 보인다. 12월 3일 그는 페이스북에 이렇게 글을 올렸다. “지지율 하락에 대한 민주당의 대답은 며칠 남지 않은 기간에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 17대 국회 열린우리당 시절, 국가보안법 처리를 잘못해서 지지율이 떨어지기 시작해 회복하는 데 많은 에너지를 쏟고도 별 무소용이었다. 2016년(2006년의 오기인 듯)의 국가보안법이 지금의 공수처법이다.(중략) 올 데까지 왔고 올 것이 왔다. 2020년 12월 공수처법은 피할 수 없는 필연이다. 지금은 선택과 집중을 할 때다. 당이 지지층의 열망에 대답할 때다. 지금은 미움받을 용기를 낼 때다.” 검찰개혁에 대한 ‘지지층의 열망’에 화답하면 지지율은 회복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지지율 하락은 “지지층이 더 열심히 하라고 보내는 회초리”다.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얼핏 보면 정권 4년차에 레임덕이 시작된 것으로 보이지만 과거 국정운영 지지율을 보면 4차례 정도 짧게 하락했다 회복되는 국면이 있었다”라고 말한다. 신 교수에 따르면 그 4번의 국면은 각각 2018년 여름 1차 북미 정상회담과 2019년 가을 조국 사태, 그리고 올해 미래통합당 창당과 부동산 논란이 촉발된 시기였다. 그는 권력 남용과 부동산, 코로나19 방역대처라는 세가지 변수가 레임덕 여부 판단에서 핵심이 될 것으로 봤다. “보다시피 권력 남용은 최근 추미애 법무부 장관 문제가 터졌고, 부동산은 남은 정권 기간 내에 해결하긴 어렵다. 특히 올해 들어 벌어진 지지율 하락을 저지하고 회복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이 정부의 코로나19 방역대처였는데 최근 분위기는 그마저 심상치 않다. 이 세가지 요인이 한꺼번에 결합되어 터지면 그때는 진짜 레임덕 상황일 것이다.”

신 교수에 따르면 정면돌파, 즉 ‘지지율 하락을 감수하며 정면돌파’ 이외의 대안이 없는 것이 아니다. “알다시피 추미애 장관과 윤석열 총장의 강 대 강 대치 국면이다. 일단 현재 문 대통령의 선택은 추미애 장관의 손을 들어주는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을 강하게 징계하면 정말 검찰개혁이 완수될까. 문재인 대통령에겐 아직 좋은 카드가 남아 있다. 문 대통령 자신이 추미애를, 그리고 또 윤석열이나 다른 사회원로를 만나 양자대결을 넘어서 그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역할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아직 늦지는 않았다. ‘추미애 프로세스’를 적절한 선에서 마무리 짓고, 문 대통령이 이니셔티브를 쥐고 주도하는 방향으로 가면 레임덕 위기는 오지 않을 것이다.” 곰곰이 새겨들을 필요가 있는 고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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