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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은폐가 76일 도시 봉쇄 불렀다 : 책&생각 : 문화 : 뉴스 - 한겨레

중국 소설가 팡팡, 우한에 갇혀 쓴 일기 60편 책으로 묶어내
‘정보봉쇄’ 속 진실 전한 유일한 창구…“끝까지 책임 물어야”
우한일기
팡팡 지음, 조유리 옮김/문학동네·1만6500원 “재난이란, 예전에는 화장터에서 관에 담긴 한 구의 시신을 한 대의 운구차로 옮겼다면, 지금은 비닐로 싼 시체 몇 구를 포개어 쌓아서 화물트럭에 실어가는 것이다.” <우한일기>는 루쉰 문학상을 받은 중국 소설가 팡팡이 우한 봉쇄 사흘 뒤인 지난해 1월25일부터 봉쇄 해제가 선포된 3월24일까지 두 달 동안 쓴 일기 60편을 묶은 책이다. 일상과 상념을 매일 기록했다는 점에서 이 글은 분명 ‘일기’다. 그러나 재난 상황에서 그의 글은 단순 일기로만 기능하지 않는다. 당국이 감추는 정보까지 전하는 발빠른 통신이자, 집에 갇힌 인민의 불안과 우울을 다독이는 문학으로 구실하고, 훗날 이 참혹한 재난의 책임 소재를 가리는 데 필요한 ‘사료’의 역할까지 해내기 때문이다. 늙은 반려견과 단둘이 남은 집. 집에 갇힌 작가는 시곗바늘을 한 달 전으로 돌린다. 코로나19의 그림자는 2019년 12월31일부터 우한에 얼씬거렸다. “큰오빠는 우한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폐렴 환자가 발생한 것으로 의심된다는 글을 (가족 대화방에) 올리며 괄호 치고 ‘사스’라고 써두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중국 정부에서 방침이 내려온다. “人不傳人 可控可防.”(사람 간에는 전염되지 않는다. 막을 수 있고 통제 가능하다) 베이징대 호흡기 전문의 ‘왕광파’의 입에서 나온 이 여덟 글자가 “도시를 피와 눈물로 적셨다”고 작가는 분노한다. 그의 확언을 들은 의료진은 방호 장비를 제대로 갖추지 않은 채 환자를 접촉했고, 이로 인해 의료진 다수가 사망했으며, 병원이 마비되고, 환자들이 제때 치료받지 못해 죽는 연쇄 피해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초반 20일의 은폐가 76일의 도시 봉쇄를 부른 셈이다.
&lt;우한일기&gt;를 펴낸 작가 팡팡. 그는 정은경 질병관리청장과 함께 비비시(BBC)가 뽑은 ‘올해의 여성’에 선정됐다. 문학동네 제공
<우한일기>를 펴낸 작가 팡팡. 그는 정은경 질병관리청장과 함께 비비시(BBC)가 뽑은 ‘올해의 여성’에 선정됐다. 문학동네 제공
팡팡의 몸은 아파트 단지 안에 묶여 있지만, 그의 행동반경은 우한 전역을 아우른다. 60년 넘게 우한에서 산데다 작가라는 직업 덕에 그는 언론인, 경찰, 여러 의사와 두루 친분이 있다. 이 인맥들은 모두 ‘팩트체커’가 되어 관영 언론이 제공하는 뉴스를 교차 검증하고, 정보의 빈틈을 메운다. “의사들은 사람 간 전염된다는 사실을 진즉에 알고 있었어. 하지만 누구도 인민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지. (…) 집단의 침묵이 가장 무서운 거야.” 관영 매체에서는 결코 접하지 못했을 의사의 양심 고백, 사태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팡팡의 일기에 등장하자 우한 사람들은 매일 애타게 그의 글을 기다린다. 그럴수록 정부의 검열은 심해지는데, 이를 피하기 위해 팡팡의 글을 단락으로 쪼개 댓글에 이어 붙이는 ‘댓글 릴레이’까지 펼쳐질 정도다. 팡팡의 글이 온통 적대감으로 가득 찬 것은 아니다. 작가는 “우리가 버텨야 당신들도 버틴다”며 바이러스의 위협 속에서도 끝끝내 문 닫지 않은 작은 채소 가게, 사람이 오가지 않아 충분히 깨끗한데도 묵묵히 거리를 쓰는 환경미화원, 독거노인에게 간장 뚜껑을 열어주기 위해 이웃의 현관문을 조심스럽게 두드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우한에 팽배한 불신과 분노를 희석한다. 각자의 자리에서 자기 일을 꿋꿋이 해내는 이들이 보여주는 직업윤리만큼 공동체의 불신을 빠르게 잠재우는 것은 없다. 우한은 강도 높은 76일의 봉쇄 끝에 코로나19를 통제했다. 그러나 팡팡은 축포를 터뜨리는 대신 끝까지 ‘기억’을 주문한다. “만일 우리가 책임 묻는 일을 포기한다면, 우리가 이 시간들을 잊어버린다면, (…) 우한 사람들이여, 당신은 재난뿐만 아니라 치욕까지 짊어져야 할 것이다. 망각의 치욕 말이다!” 최윤아 기자a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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