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이 내정자를 정해둔 산하 기관 임원 공모 절차에서 탈락한 후 극단적 선택을 한 인사에게 법원이 업무상 재해를 인정했다. 불공정한 탈락과 뒤이은 좌천성 인사가 극단적 선택의 원인이 됐다고 보고, 산재를 인정하지 않은 근로복지공단의 판단을 뒤집은 것이다.
서울행정법원 7부(재판장 김국현)는 한국환경산업기술원 단장으로 일하다 극단적 선택을 한 A씨의 유족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급여 부지급 처분 취소소송에서 유족 측의 승소로 판결했다고 20일 밝혔다.
A씨는 2018년 5월 환경산업기술원의 상임이사 직위인 본부장직 공모에 지원했다가 탈락하자 같은 해 12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서류심사와 면접을 거쳐 최종 후보자 3인에 포함됐지만 공모 절차가 갑작스레 중단됐다. 김은경 당시 환경부 장관이 본부장직에 추천한 환경컨설팅업체 대표 B씨가 청와대 인사검증에서 탈락하자 채용절차가 중단된 것이다. 기술원 내부에서는 ‘노조로부터 존경받는 리더로 선정되는 등 조직 내 신망이 두텁고 기여도가 탁월하다’며 A씨의 본부장직 임명을 건의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당시 A씨는 기술원 간부회의에서 ‘환경부 장관은 본부장직에 외부 전문가를 영입하는 것이 목적이고, 원내에는 충족하는 사람이 없어 다시 임용절차를 추진할 계획’이라는 말을 들었다. 직후 A씨는 자신의 수첩에 “자괴감을 느낀다. 지난 12년간 기술원에서 일할만큼 일했다. 이해할 수가 없다”고 적었다.
김 전 환경부 장관이 기술원 본부장직에 특정 인사를 사전 내정한 의혹은 이후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 재판에서 사실로 밝혀졌다. 1심 재판부는 지난 2월 “기술원 본부장직에 자신이 내정한 추천자 B를 임명하기 위하여 후보자 추천 절차를 형해화해 서류심사 및 면접심사 업무를 방해했다”며 김 전 장관에게 징역 2년6개월을 선고했다.
재공모 절차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A씨는 과거에 담당한, 업무량이 많은 보직으로 자신의 인사이동이 검토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A씨는 이를 좌천성 인사로 받아들이고 인사팀장에게 “그곳에 다시 가는 것은 사람을 완전 무시하는 것”이라며 거부의사를 표시했다.
A씨는 2018년 11월쯤부터 출근을 하지 못할 정도로 수면장애를 겪었다. 극도의 우울감을 느껴 입원치료를 받기도 했다. 결국 A씨는 “열심히 일했고 나름대로 성과도 냈다고 생각했지만 인사권자와 내 생각은… 자괴감, 모멸감, 자책감, 스스로 열등의식이 어우러져 내 정신건강 체계를 피폐하게 만든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극단적 선택을 했다.
A씨의 유족은 산재인정을 신청했지만 근로복지공단은 “공모과정에서 탈락에 따른 충격과 고통은 어느정도 감내해야 할 부분”이라며 업무상 재해를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법원은 공모 탈락이 극단적 선택의 결정적 원인이 됐다고 보고 업무상 재해를 인정했다.
재판부는 “고인이 지원한 본부장직 심사절차가 통상적인 절차에 따라 공정하게 진행되었다고 보기 어렵고, 좌천성 인사까지 예상되자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며 “가정적·경제적 문제 등 자살에 이를 다른 이유가 있었다고 볼 자료가 없다”고 밝혔다.
이어 “한국환경기술원 내부에서는 A씨를 임명하자고 건의했는데도 환경기술본부장은 공석으로 남았다”며 “A씨는 외부 전문가를 영입하려 임용을 다시 추진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괴감과 실망감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https://ift.tt/3AVSxYI
대한민국
Bagikan Berita Ini
0 Response to "'환경부 낙하산 인사' 피해자 극단 선택…법원 “업무상 재해” - 경향신문"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