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기자회견 땐 사실상 시인 '선회'
계약서에 거주지와 다른 주소지 기재
서류엔 1월로… 실제론 3개월 뒤 작성
다른 부동산 팔고 세종시 땅 매입한 듯
"아버지가 농사를 지으며 여생을 보내겠다는 마음으로 농지를 취득한 뒤 어머니 건강이 안 좋아져 한국농어촌공사를 통해 임대차 계약을 했다."(8월 25일 기자회견)
"농지법 위반이라는 것은 조사를 잘 해봐야 한다. (불법 행위를 했다면 그럴) 의도가 있었는지, 의도는 없었지만 위법 행위를 했는지는 조사를 해봐야 알 수 있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책임지겠다."(8월 27일 기자회견)
부친의 농지 투기 의혹과 관련한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의 입장이 이틀 만에 180도 바뀌었다.
윤 의원은 국민권익위원회 조사로 부친의 부동산 불법 거래 의혹이 불거지자, 지난 25일 기자회견을 열어 투기와는 무관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의원직 사퇴까지 선언했는데도 의혹이 가라앉지 않자 27일 다시 기자회견을 열었다.
윤 의원은 문제가 된 부친의 세종시 농지 인근 국가산업단지 관련 내부 정보 이용 의혹은 부인하면서도 투기 가능성은 사실상 시인했다. 농지법과 주민등록법 위반 정황이 잇따라 드러나자 의혹을 어느 정도 인정한 셈이다.
한국일보는 27일 윤 의원 부친 소유 논에서 직접 농사를 짓는 임차인 김모(66)씨를 통해 해당 농지의 임대계약서 2개를 입수했다. 임대계약서 내용과 김씨 설명을 종합해보면, 윤 의원 부친은 농지를 매입할 때 자경(自耕) 의사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윤 의원 부친은 2016년 5월 세종시 전의면 신방리의 논 1만871㎡(3,300평)를 8억2,200만 원에 샀다. 그는 매입 한 달 뒤 농어촌공사를 통해 김씨와 임대차 계약을 했다. 계약기간은 2016년 6월 8일부터 2021년 6월 7일까지 5년으로, 김씨가 농어촌공사를 통해 윤 의원 부친에게 지급하는 임대료는 연간 110만 원이었다.
농어촌공사를 통한 임대 계약 만료일이 다가오자, 윤 의원 부친은 농어촌공사를 배제하고 김씨와 직접 두 번째 계약을 했다. 계약기간은 올해 1월부터 2024년 1월까지 3년으로, 임대료는 100만 원으로 정했다.
임대차 계약서에 따르면 윤 의원 부친은 계약 직전인 작년 12월 서울 동대문구 주거지에서 세종시 전의면의 김씨 집으로 주소지를 옮겼다. 윤 의원은 이에 대해 권익위에 "아버지가 전의면으로 전입한 건 자경을 위한 것으로 임시로 셋방살이를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자경을 위해 세종시로 전입신고를 했다면서 김씨와 임대차 계약을 한 것은 앞뒤가 안 맞는 이야기다. 임차인 김씨 역시 "(전입신고 기간인 7개월 동안) 윤 의원 부친이 우리 집에서 두세 번 자고 갔을 뿐"이라고 말했다. 윤 의원 부친이 신고만 해놓고 상주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윤 의원 부친과 김씨 사이의 계약서에는 정확한 계약 날짜도 적혀있지 않았다. 계약기간은 2021년 1월부터 2024년 1월로 기재돼 있었지만, 실제로 계약서는 올해 4월 작성됐다고 한다. 김씨는 "4월에 면사무소에 직불금 신청서를 낼 때 임대차 계약서를 첨부해야 하는데, 윤 의원 부친과 합의 하에 새 계약 발효시점을 올 1월로 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직불금은 직접 농사 짓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나라에서 지급하는 보조금이다. 윤 의원 부친이 김씨가 직불금을 받도록 계약서를 작성했다는 것은 자경 의사가 없었다는 걸 의미한다. 더구나 1996년 농지법 개정으로 윤 의원 부친처럼 농어촌공사를 통하지 않은 당사자끼리의 임대차 계약은 명백한 농지법 위반이다.
윤 의원 부친은 지난해 12월 세종시로 전입신고한 지 반 년쯤 뒤인 올 7월 다시 서울 동대문으로 주소지를 옮겼다. 이는 권익위 조사로 위장전입 사실이 드러날 것을 우려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권익위는 지난 6월 국민의힘 의원들의 투기 의혹을 조사하기 위해 부동산 전수 조사에 착수했다.
윤 의원 부친의 부동산 거래는 처음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윤 의원 부친은 대출 없이 8억 원이 넘는 돈을 내고 세종시 농지를 샀다. 부동산업계에선 이 정도 금액을 근저당권 없이 마련해 땅을 매입하는 경우는 굉장히 드문 일이라고 입을 모았다. 기존에 보유한 다른 부동산을 팔아 세종시 농지를 사들였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김씨는 "윤 의원 부친이 다른 지역 농지를 팔고 세종시 농지를 산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윤 의원 부친 역시 한국일보와 통화에서 "그런 셈"이라고 밝혔다.
부동산 투기 정부 합동특별수사본부(특수본)은 윤 의원 사건을 세종경찰청에 배당해 수사하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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