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유족 전국 51곳 1인 시위
30일 오후 정부 서울청사 정문 앞에서 정수용 천주교 서울대교구 신부가 가습기 살균제 참사 10주기 동시다발 1인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연합뉴스
“다른 사람들은 가습기 살균제 문제가 다 해결이 된 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시작도 안 했습니다.” 아내와 장모, 처남을 폐 질환으로 떠나보낸 조병렬씨가 말했다. 30일 서울시청 앞 횡단보도에서 가습기 살균제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1인 시위를 연 조씨의 아내와 장모는 2014년, 처남은 지난 3월 세상을 떠났다. 모두 폐 질환으로 목숨을 잃었다. 조씨는 가족과 친척이 숨진 원인으로 가습기 살균제를 꼽았다. 하지만 정부는 아내, 처남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로 인정했지만 장모는 피해자로 인정하지 않았다. 조씨는 “장모님도 당연히 (피해자로) 신청했는데 (정부가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폐 손상)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판단했다”며 “정부의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인정, 기업의 배·보상, 책임자 처벌 모두 미진하다”고 말했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 10주기(2011년8월31일 정부 가습기 살균제 피해 역학조사 발표)를 하루 앞둔 이날, 가습기살균제참사전국네트워크(가습기넷)는 전국에서 동시다발로 1인 시위를 열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유족 등이 참여한 이번 1인 시위는 전국 51곳, 해외 6곳에서 전개됐다. 가습기 살균제로 누나를 잃은 이창희 씨도 이날 거리로 나섰다. 이씨의 누나는 1995년, 태어난 지 50일 만에 폐 질환으로 숨졌다. 10년 전 가습기 살균제 참사가 세상에 드러난 뒤에야 가족들은 가습기 살균제가 원인이었음을 알게 됐으나, 피해 사실을 증명하는데 애로를 겪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를 산 영수증이 없다며 정부가 누나를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로 인정하지 않았다. 이씨는 “영수증은 없었지만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하는 사진이 있어서 이를 제출했음에도 피해 인정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인 김종우 씨도 입원 중인 병원에서 “정부 책임에 대한 진상규명과 가습기 살균제 판매 기업의 피해 보상을 요구한다”는 문구를 담은 팻말과 함께 찍은 사진을 보내왔다. 1인 시위 참가자들은 가습기 살균제 제조·판매 기업의 배·보상과 정부 책임에 대한 진상규명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은 “정부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를 찾지 않고 신고된 7500명, 사망자 1700명에 대한 피해대책도 세우지 않고 있다”며 “국내 굴지 생활용품 기업도 가습기 살균제를 팔아 돈을 벌고도 피해자 대책은 없다”고 했다. 일부 시위 참가자들은 지난 1월 법원이 에스케이(SK)케미칼, 애경산업 등 가습기 살균제 판매 기업 대표와 책임자에게 무죄를 선고한 결정을 비판하기도 했다. 백도명 서울대 환경보건학과 교수는 “화학물질을 가습기 물통에 집어넣어서 사용자가 흡입하는 방식이 문제가 있음에도 이를 확인할 수 있는 실험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며 “문제 제품을 다른 회사에서 만들 때 원료를 공급하면서 모니터링과 기본 자료도 제공하지 않았던 문제가 있는데 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했다”고 지적했다. 이승욱 기자
seugwook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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