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S] 다음주의 질문
지난 6월26일 숨진 채로 발견된 청소노동자의 휴게공간. 연합뉴스
“학교 판단(사과)이 조금이라도 빨랐으면 저희 가정이 거짓말과 우격다짐으로 무언가를 얻어내려는 불쌍한 사람들로 비치지 않았을 것입니다.” 5일 오전 서울대 청소노동자였던 아내 ㄱ(59)씨가 일터에서 목숨을 잃은 지 40일 만에 오세정 서울대 총장의 사과를 받은 남편 이아무개씨는 침통한 표정이었다. 이씨의 가슴에 못을 박은 사람은 서울대 구민교 전 학생처장이었다. 그는 지난달 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한 분의 안타까운 죽음을 놓고 산 사람들이 너도나도 피해자 코스프레 하는 것이 역겹다”며 “(노조는) 현재의 객관적인 사실만으로는 ‘산재’ 인정을 받는 것이 어렵겠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썼다. “억지로라도 산재 인정을 받아내기 위해 학교의 귀책사유가 있어야 하고 중간 관리자의 갑질 프레임에 좌표가 찍혔다”고도 했다. 해당 글이 논란이 일자 구 전 처장은 지난달 12일 보직사퇴했다. 그는 “거친 말에 거친 말로 대응했다”는 사퇴의 변을 남겼다. ‘거친 말’만 문제가 아니었다. 더 큰 문제는 산업재해(산재)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었다. 구 전 처장은 ㄱ씨의 죽음에 대해 왜 산재 인정이 어렵다고 확신했을까? ㄱ씨의 사망 원인은 과로로 목숨을 잃는 노동자에게 흔한 급성심근경색이었는데 말이다. 노동부 고시를 보면 단기과로에 대해 ‘발병 전 1주일 이내의 업무 양이나 시간이 이전 12주(발병 전 1주일 제외) 간에 1주 평균보다 30% 이상 증가되거나 업무 강도·책임 및 업무 환경이 적응하기 어려운 정도로 바뀐 경우’로 정의하고 있다. <한겨레> 취재 내용을 보면 ㄱ씨는 엘리베이터도 없는 4층 건물에서 100리터들이 대형 쓰레기봉투로 매일같이 일반쓰레기, 음식물쓰레기 등을 옮겼다. 세상을 떠나기 전 ㄱ씨는 부쩍 주변 동료들에게 “힘들다”고 토로하는 일이 많았다. 충분히 산재 여부를 다퉈볼 수 있는 사건으로 보인다. 물론 최종 판단은 근로복지공단의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질판위)가 한다. 구 전 처장은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법)의 취지도 오해하고 있다. 산재법은 ‘근로자의 업무상 재해를 신속하고 공정하게 보상하며, 근로자 보호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1조)고 입법 취지를 밝히고 있다. 노동자의 죽음이 얼마만큼 노동환경의 영향을 받았는지 살펴보고 ‘죽음의 원인’을 의·과학적으로 규명해야 하지만 그것이 산재법의 궁극적인 목적은 아니다. “업무와 질병 사이의 인과관계는 명백히 증명돼야 하는 것은 아니다. 법적·규범적 관점에서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고 인정되면 증명됐다고 봐야 한다.” 2017년 대법원은 삼성전자 엘시디(LCD) 공장에서 일하다 직업병을 얻은 노동자 소송에서 이렇게 판시하며 노동자의 손을 들어줬다. 업무를 하는 도중 생긴 질병이 ‘업무로 인해서’ 생겼다는 점이 명백하지 않아도, 노동자 보호를 위해 산재보상을 적용할 수 있다는 취지다. 이 판결 이후 업무상 질병 인정률은 매년 높아지고 있다. 2017년 처음 50%가 넘었던 업무상 질병 인정률은 2019년엔 64%에 이르렀다. 서울대 청소노동자의 죽음에서 보듯 산재에 대한 우리의 인식 변화는 더디다. 여전히 노동자가 일터에서 다치고 목숨을 잃어도, 개인에게 책임을 전가하기 급급하다. 구 전 처장에게 묻고 싶다. ㄱ씨의 죽음은 왜 산재가 아닌가. 이재호 사건팀 기자
p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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