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공공개발 모델 제시
현장에서 찾은 기대와 우려
서울 동작구 흑석동 저층주거지 모습.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영리하다.” 2·4 공급대책에 대해 여러 전문가들이 내놓은 평가를 한마디로 요약한 것입니다. 파격적인 규제 완화를 했지만 공공 참여를 조건부로 내걸어 개발이익이 사유화되는 것을 막았고, 도심 개발을 촉진하면서도 대책 발표일 현재 소유자한테만 아파트 우선공급권을 부여해 투기수요 접근을 차단하는 등 두마리 토끼를 다 잡은 ‘신의 한수’라는 평가죠. 사실 2·4 공급대책은 ‘도심 공공개발’이라는 새로운 공급 모델을 제시한 것으로 현재로서는 일종의 ‘이상향’에 가깝습니다. 구체적인 후보지가 발표된 것도 아니고, 공급 물량도 지금으로서는 추정치에 가깝습니다. 실제 공급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아서 ‘신의 한수’는 커녕 ‘악수’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이죠. 도심 공공개발은 정말 한국 부동산 정책의 역사에 ‘신의 한수’로 남을 수 있을까요. 현장에서 답을 찾아봤습니다.
①공공 개발이 시장을 대신하는 방법을 찾는다면
지난 1월 공공재개발 후보지로 선정된 종로구의 신설1구역과 영등포구의 양평14구역을 찾았습니다. 두 구역은 여러모로 비슷한 점이 많았는데 우선 ‘쪽방’이 있을 정도로 주거 환경이 열악했습니다. 양평13구역에는 공동화장실을 쓰는 오래된 쪽방촌이 있었고, 신설1구역에도 공동화장실까지는 아니지만 집 하나를 화장실이 딸린 3평 남짓한 방 8개로 쪼개 사실상 쪽방처럼 임대를 주는 곳이 있었습니다. 이 집주인은 방 8개 중 하나에 살고 있었는데, 나머지 방은 세입자조차 구하지 못해 텅 비어 있었습니다. 또 하나 공통점은 재개발을 추진하는 주민들이 여든에 가까운 고령이라는 점이었습니다. 신설1구역에서 만난 재개발추진위원회 총무와 공공재개발 추진에 가장 적극적이라고 소개받은 한 주민은 1940년대생으로 올해 80대에 접어든 분들이었고, 양평14구역 재개발추진위 직무대행을 하고 있는 분도 1940년대생으로 70대 후반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직무대행을 하게 된 이유에 대해 “이전 위원장이 돌아가시고 나서 연장자 순으로 위원장을 맡기로 했다”고 말했습니다. 기존 민간 재개발은 주민들의 협의체인 조합이 주도하는 방식인데, 두 구역 모두 주민들 자력으로 추진위, 조합 설립, 사업시행인가, 시공사 선정, 이주대책 수립, 관리처분인가 등의 복잡하고 전문적인 절차를 수행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민간 재개발은 보통 입주까지 13년이 걸리는데, 지금으로부터 13년 뒤인 2034년은 고령의 주민들에게 너무 먼 미래입니다. 이들이 재개발을 ‘공공’에 맡기는 이유입니다. 서울 도심엔 이렇게 고령의 주민들이 사는 노후 주거지가 많습니다. 신설1구역과 양평14구역은 정비사업 구역으로 지정돼 있어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입니다. 부동산 경기 침체로 2012년 이후 뉴타운 사업 및 정비사업(재개발·재건축) 구역에서 해제된 ‘미지정’ 393곳은 사정이 더 열악합니다. 서울연구원의 2018년 보고서 ‘뉴타운 재개발 해제 지역 실태분석과 주거재생방향’을 보면, 2012년 이후 뉴타운 및 정비사업(재개발·재건축) 구역에서 해제된 393곳의 노령화지수(0~14살 유소년층에 대한 65세 이상 노년층 인구 비율)는 239.2%로 서울시 평균 97.2%보다 크게 높습니다. 393곳 중 140여곳은 30년 이상 노후 건축물이 60% 이상인 노후 주거지였습니다. 변창흠 국토부 장관은 4일 브리핑에서 “좁은 도로 등 기반시설이 제한되어 통합적인 개발이 어려우나 주민들 간 합의가 어렵고 사업성이 부족해서 개발 가능성이 낮은 지역”을 공공 개발 후보지로 언급한 바 있습니다. 시장이 거들떠 보지 않는 낙후된 곳이 공공 개발을 통해 양질의 주거 공간이 된다면, 2·4 공급대책은 ‘신의 한수’가 될 수 있습니다.
②토지주 수익만 보장하고 세입자 보호 소홀히 한다면
지난 1월 신설1구역을 찾았을 때 만난 주민 ㅇ씨(81)의 바람은 ‘쫓겨나지 않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18평 갖고 있으면 18평 아파트, 20평이면 20평 아파트를 준다는 보장만 있으면 반대하는 주민들을 다 설득할 수 있다”고도 했습니다. 옆에 있던 추진위 총무 ㄱ씨(80)는 “은평뉴타운만 봐도 보상비로 아파트 분양받고 남겠지 했는데, 돈을 더 토해내야 했다”며 “여기 주민들한테 그렇게 쫓겨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2000년대 뉴타운 사업은 재개발이 되면 토지소유자(토지주)가 부자가 된다는 과거의 문법이 순진한 환상이라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뉴타운 지역 원주민 재정착률이 17.1%에 불과하다는 서울시정연구원(옛 서울연구원) 연구 결과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은평뉴타운의 경우 전용면적 84㎡ 이하 비중이 29.8%로 101㎡ 이상 중대형 평형 비중 70.2%의 절반에도 못 미쳤는데 이 때문에 고분양가를 감당하지 못한 원주민들이 재정착하지 못한 채 내몰림(젠트리피케이션)을 당했다는 분석이 나왔습니다. 뉴타운 사업에 ‘주민 교체 사업’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이유입니다. 정부는 2·4 공급대책을 통해 토지주 스스로 사업 추진 때보다 공공개발을 통해 10~30%포인트 높은 수익률을 보장하고 아파트와 상가 우선공급권도 준다고 밝혔습니다. 개발비용을 부담할 능력이 없는 실거주 토지주들에 대해서는 분양주택보다 낮은 부담으로 아파트를 소유할 수 있는 공공자가주택을 공급한다는 계획도 내놨습니다. 뉴타운 때처럼 토지주들이 쫓겨나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세입자 보호 대책은 토지주 수익 보장 대책만큼 구체적이지 않습니다. 세입자에 대해 이사비, 주거이전비, 임시 거주지, 재정착 공공임대 등 개발 전 과정에서 보호 대책을 내놨지만, 가장 중요한 재정착 공공임대 물량이 부족해 보입니다. 정부는 세입자 몫으로 공공임대 공급 물량의 최대 50%를 확보한다는 입장이지만 공공임대 물량 자체가 20~30%에 그칩니다. 게다가 20~30%에는 저소득 토지주에게 공급되는 공공자가주택이 포함된 비율이라 공공임대 비중은 더 줄어들 가능성이 높습니다. 공공임대두배로연대 등 주거시민사회단체가 70~80%를 공공분양으로 돌리고, 공공임대를 20~30%만 공급하는 것을 강하게 비판하는 이유입니다. 공공 개발 대상이 될 노후 주거지는 세입자 비율이 높을 수밖에 없는데, 20~30%로는 이들을 전부 수용할 수 없다는 것이죠. 실제 뉴타운 해제지역인 용두3구역은 세입자 비율이 85%에 달합니다. 2차 뉴타운 시범지구 전체 가구 14만7천가구 가운데 세입자 가구는 10만7천가구로 70%를 차지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공급된 임대주택은 세입자 가구의 19%를 수용한 수준에 그쳤다는 연구 결과가 나온 바 있습니다. 현재로서는 2·4 공급대책의 공공임대 비율 20~30%는 뉴타운 때보다 조금 나은 수준입니다. 이런 식이라면 세입자 입장에서는 ‘신의 한수’가 되기 어렵지 않을까요.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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