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묘락 씨(60·여)의 말투는 담담했지만 목소리에선 아픔이 느껴졌다. 그는 경북 경산시 서린요양원의 간호부장이다. 그는 26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을 받았다. 심 씨를 비롯해 이날 백신을 맞는 요양원 종사자들은 만감이 교차했다.
1년 전인 지난해 2월 27일 서린요양원에는 코호트(동일집단) 격리 조치가 내려졌다. 어르신 18명과 종사자 8명 등 26명이 한꺼번에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것이다. 요양원 안에 격리된 채 보낸 48일은 심 씨를 포함해 모두에게 평생 잊지 못할 악몽 같은 시간이었다. 서로가 서로를 응원하며 터널을 빠져나오려 했지만 코로나19에 감염된 어르신 4명은 끝내 세상을 떠났다.
26일 오전 9시 전후로 전국 200여 개 요양병원과 요양시설, 재활시설에서 코로나19 백신접종이 일제히 시작됐다. 이날 하루에만 1만6813명(오후 6시 기준)이 영국 아스트라제네카사 백신을 맞았다.
충북 진천군에 있는 본정요양원도 그 중 하나다. 이 곳 역시 지난해 집단 감염으로 코호트 격리됐던 곳이다. 이날 어르신 등 6명과 함께 접종을 받은 배양민 원장(41)은 “직원들도 힘들지만 제일 안타까운 건 어르신들”이라며 “2차 접종까지 빨리 끝나서 몇 달째 가족도 못 보고 있는 어르신들이 하루 빨리 자녀들과 자유롭게 만나실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대구·경북 지역의 분위기도 남달랐다. 지난해 이맘 때 신천지예수교 집단 감염을 시작으로 대구·경북에서 코로나19가 유행했다. 1년 전만 해도 하루 900명 가까운 확진자가 쏟아져 나왔다. 시민 모두가 아픔을 공유한 만큼 첫 백신을 맞는 사람도, 이를 바라보는 시민들도 감격스러워했다. 이날 오전 9시 22분경 대구 1호 접종자였던 북구 한솔요양병원 황순구 원장(61)이 왼팔 소매를 걷어붙이고 접종을 받자 주변에 있던 이들은 크게 환호했다. 황 원장에 이어 두 번째 접종을 마친 아내 이명옥 부원장(60·여)은 “아무 느낌 없다. 독감주사보다 안 아프다”며 밝게 웃었다.이날 오전 문재인 대통령은 정은경 질병관리청장과 함께 서울 마포구 보건소를 방문했다. 현장에서 김윤태 넥슨어린이재활병원 원장(60)이 첫 접종을 받는 모습을 지켜봤다. 김 원장은 “그동안 마스크 잘 쓰고 개인위생 잘 지키라는 방역수칙을 볼 때마다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짱돌’ 들고 싸우는 느낌이었는데, 이제야 방탄복 입고 총 들고 제대로 싸우게 된 것 같다”고 반가워했다. 김 원장은 “접종을 했어도 방역수칙을 지키며 조심해야 하겠지만 조금은 더 자유롭고 적극적인 생활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말했다.
공식적인 1호 접종자는 없었지만 시간으로만 보면 서울 노원구 상계요양원 요양보호사 이경순 씨(62·여)가 첫 번째 접종자였다. 이 씨는 이날 오전 8시 45분 접종을 받았다. 이 씨는 생각지도 못한 유명세에 얼떨떨해 했다. 그는 “이른 출근을 위해 빨리 보건소를 방문했을 뿐”이라며 “요양보호사들이 감염되면 어르신들에게 언제든 전파할 수 있는 만큼, 이제 불안한 마음을 좀 덜었다”며 밝게 웃었다. 이 씨는 접종 후 잠시 이상반응 여부를 확인한 뒤 요양원으로 출근했다.
이날 코로나19 백신 접종은 당초 우려와 달리 전국적으로 순조롭게 진행됐다. 다만 일부 지역에서는 이상반응이 보고됐다. 26일 포항에서 백신 접종을 받은 50대가 접종 후 혈압이 오르고 어지러운 증세를 보여 응급실로 이송됐지만 치료를 받고 퇴원했다. 인천에서도 간호사 2명이 접종을 받은 뒤 숨이 차고 혈압이 올라 병원으로 옮겨졌다. 이들은 수액주사를 맞은 뒤 귀가했다. 서울 구로구 제중요양병원의 최경숙 간호국장은 “직원 10명이 접종을 받았는데 1명은 혈압 상승, 다른 한 명은 어지러움증을 호소했다”며 “한동안 휴게실에서 상태를 관찰해야 했다”고 전했다. 이날 일부 요양병원은 접종을 2일로 미뤘다. 접종 개시가 하필 연휴 직전에 이뤄진 탓에 휴일 동안 이상반응이 있을 것을 우려한 조치다. 보건당국은 휴일 동안 39도 이상의 고열이나 호흡곤란, 두드러기가 나타날 경우 119 또는 질병관리청 콜센터(1339)에 문의하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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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영 기자 ksy@donga.com
대구=명민준 기자 mmj86@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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