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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에도 마스크 못 쓰는 장애인 아들…“제발 백신 우선접종을” - 경향신문

지난해 6월10일 발달장애인을 자녀로 둔 부모들이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정부가 발달장애인과 가족에 대한 아무런 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강윤중 기자

지난해 6월10일 발달장애인을 자녀로 둔 부모들이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정부가 발달장애인과 가족에 대한 아무런 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강윤중 기자

마스크 끈을 귀에 걸어주자마자 벗어버린다. 다시 마스크를 씌워줘도 빼버린다. 평소 모자나 장갑처럼 몸에 무엇인가를 걸치고 끼우는 것 자체를 싫어하는데 마스크라고 다를 리 없다. 교육도 먹히지 않는다. 마스크를 착용하지 못하니 집 밖엔 나갈 수가 없다. 길을 가다 마스크 낀 어린 아이를 봤다. “3살 된 아이도 마스크를 끼는데 ‘0’이 하나 더 붙은 우리 애는 마스크를 안 끼고 있으니…. 나는 뭘 했는지, 뭘 잘못한 것인지 좌절감이 올 때가 있어요.” 30세 발달장애인 아들을 둔 50대 엄마 A씨 이야기다.

A씨가 지난달 20일 청와대 국민청원에 글을 올렸다. 제목은 ‘마스크를 낄 수 없는 발달장애인에게 우선적으로 코로나19 예방접종을 실시해주세요’다.

코로나에도 마스크 못 쓰는 장애인 아들…“제발 백신 우선접종을”

A씨는 직장을 그만두고 지난 1년간 집에서 아들과 함께 있었다. 코로나19가 터지기 전까지 아들은 낮 시간대에 복지관에 갔기 때문에 A씨는 직장에 다니며 돈을 벌 수 있었다. 그러나 코로나19 확산 후 복지관은 문을 닫거나, 마스크를 쓴 장애인만 이용이 가능했다. 마스크를 못 쓰는 A씨 아들은 복지관에 갈 수 없었다. 감염 위험을 우려한 다른 장애인의 부모들이 항의를 했다.

A씨 아들은 2세 때 원인 모를 열병을 앓아 뇌에 문제가 생겼다. 인지능력은 그때 수준에 머물러있지만, 신체적으로는 키 175㎝에 힘이 센 성인 남성이다. 행동이 조절되지 않고 충동적으로 움직여 아들을 돕겠다는 활동보조인도 구하기가 어려웠다. A씨가 일을 관두고 직접 아들을 돌보기 시작했다. 발달장애인에 대한 지원 부담을 온전히 가족이 떠안게 된 것이다. 엄마라고 할지라도 자신이 하고 싶은대로 해야 직성이 풀리는 아들과 함께 있는 일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경제적으로 쪼들리는데, 육체적·정신적인 힘듦이 겹쳤다.

A씨의 말이다. “긴급지원 알죠. 그런데 우리 아이를 한번 보면 아무도 안 하려고 해요. 활동보조인을 구할 수가 없어요. 저만 해도 일주일에 한두번씩은 저녁에 나가서 물리치료 받아야되거든요. 팔, 어깨 다 나갔어요. 24시간을 이렇게 하다보니까 지금은 지친 상태예요. 아무 생각이 없어요. 아이하고 죽자는 생각을 계속 해요. 어떻게 죽을까….”

아들 입장에서도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집에서 거의 ‘감금’ 생활을 해 사람들과 단절돼 지내면서 사회적으로도 고립된 상태다.

A씨는 백신에 희망을 걸었다. 아들이 백신만 맞으면 고생을 덜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정부는 백신 접종 계획에서 장애인에 대해 ‘거주시설·이용시설 입소자와 종사자’에 한해 2분기에 접종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그 접종 대상 인원을 38만명으로 추산했다. 전체 장애인 수가 250만명 가량이라는 점에 비춰보면 한참 적은 숫자다. 정부는 구체적인 접종대상 기준을 아직 공개하지 않았고, A씨 아들의 경우 가정 돌봄 형태라 접종대상에 해당되는지 모호하다. A씨가 청와대 국민청원에 글을 올리게 된 배경이다.

▶발달장애인 백신 우선 접종을 호소하는 A씨의 청와대 국민청원 글 링크: 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595854

지난해 2월26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장애인 인권이 없는 차별적인 코로나 대응’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2월26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장애인 인권이 없는 차별적인 코로나 대응’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에선 이미 장애인에 대한 백신 우선 접종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마스크 착용은 물론 사회적 거리두기와 손 씻기 같은 기본적인 코로나19 예방법도 적용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장애인을 백신 우선 접종대상에 넣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장애인은 기저질환을 많이 앓고 있기 때문에 코로나19와 합쳐져 중증이 될 수 있다고 본다. 특히 다운증후군은 고위험군으로 분류된다. 미국에선 발달장애인의 경우 코로나19에 걸릴 확률이나, 걸렸을 때 사망할 확률이 몇 배 높다는 연구도 나오고 있다. 한국 자료에서도 지난해 12월 기준 코로나19 전체 확진자 중 장애인 비율은 4%인데, 전체 사망자 중 장애인 비율은 21%로 나타났다.

일부 주에서는 의료종사자와 장기요양원 거주자, 고령자와 필수직종 노동자 등 한국에서 우선접종 대상으로 일컫는 영역에 장애인을 포함시키고 있다. 또 가정에서 장애인을 돕는 활동보조인과 부모, 가족에게도 장애인과 함께 접종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논의도 진행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8일 오후 전북 군산시 코로나19 백신접종용 최소잔여형(LDS) 주사기 생산시설인 풍림파마텍에서 관계자의 설명을 들으며 일반 주사기와 최소잔여형 주사기를 비교 시연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8일 오후 전북 군산시 코로나19 백신접종용 최소잔여형(LDS) 주사기 생산시설인 풍림파마텍에서 관계자의 설명을 들으며 일반 주사기와 최소잔여형 주사기를 비교 시연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3월 제주도, 6월 광주에서 발달장애인과 어머니가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는 등 코로나19 시대에 가족에 전가되는 돌봄 책임이 극단적인 사고로까지 이어지는 상황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해 11월 발달장애인 부모 1174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장애인복지관·발달재활서비스·방과후활동서비스·직업재활서비스·주간활동서비스 등 기관이나 시설을 통해 제공되는 서비스의 경우 휴관 등으로 이용을 못한 비율이 적게는 62%(발달재활서비스), 많게는 97%(장애인복지관)에 달했다.

이 때문에 부모 중 한 명이라도 직장을 그만뒀다는 응답자는 20.5%나 됐다. 정부는 복지기관이 휴관할 경우 긴급활동지원 급여를 제공하는 등 지원방안을 마련했지만 홍보가 제대로 되지 않아 응답자 3명 중 2명은 모른다고 답변했다. 최용걸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정책국장은 “한국은 애초에 외국보다도 발달장애인 지원체계가 열악한데, 코로나19로 그 체계조차 마비돼 부모들이 책임을 다 떠맡게 됐다”며 “장애인에 대한 백신 접종이 중요한 부분”이라고 했다.

A씨는 국민청원 글에 이렇게 썼다. “진정 장애인의 권리와 인권은 실종된지 오래고 언제 올지 모르는 (코로나19) 종식만을 기다리고 있지만 너무나 기약 없는 기다림입니다. (…) 대통령님, 저의 바람은 백신이 나오게 된다면 저희 아이와 같은 장애우들에게 우선적으로 접종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저희 아이 그리고 가족이 사회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주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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