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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민의 정치 인사이드]‘서울’에서 만나기도 전에 헤어진, 안철수와 김종인 - 경향신문

박성민 정치컨설턴트
2021.02.06 06:00 입력 2021.02.06 06:0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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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만나기도 전에 헤어진, 안철수와 김종인

안철수가 ‘제3지대 선단일화’ 제안을 받겠다고 한 날,
김종인의 ‘선후보선출, 후단일화’는 저항 없이 추인됐다

국민의힘 입당이나 합당을 결단하지 못한 안철수나
‘통합’을 걷어차는 김종인의 속내나,
결단 없는 퇴행임은 마찬가지다

2월3일 안철수와 국민의힘은 ‘만나기 위해 헤어지는’ 결단(?)을 했다. 안철수가 금태섭의 ‘제3지대 선단일화’ 제안을 받겠다고 한 그날 김종인의 ‘선후보선출 후단일화’ 주장은 놀라울 정도로 아무런 저항도 없이 추인받았다. 금태섭의 ‘거절할 수 없는 제안’에 대해 정진석 국민의힘 공관위원장은 “복잡했던 야권 단일화 방정식이 조금 더 단순하고 명확하게 정리되는 느낌”이라고 했는데 내 눈에는 ‘단순했던 야권 단일화 방정식이 조금 더 복잡하고 어지러워진 느낌’이다.

1월6일 국민의힘 김종인 비대위원장은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에게 ‘입당’ 외에는 경선에 참여할 방법이 없다고 최후통첩을 했는데 ‘당적’이 없으면 경선에 참여할 수 없다는 당헌·당규가 이유였다. (민주당이 당헌·당규를 바꿔 후보를 내기로 한 것은 차치하더라도) 그런 식이라면 다른 당 후보와 단일화는 어떤 논리로 할 것인가. 경선과 단일화는 뭐가 다른가? 그렇다면 안철수가 ‘원 샷 경선’이 아니라 ‘원 샷 단일화’를 제안했으면 그건 받았을 텐가. 궁색하다.

왼쪽부터 나경원·오세훈·금태섭

왼쪽부터 나경원·오세훈·금태섭

나경원은 “당헌·당규로는 당원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합당이나 입당하지 않고는 가능하지 않다. 들어오지도 않고 밖에 있으면서 무조건 그냥 같이하자, 이건 안 맞는 것 같다”고 했는데 사실 ‘통합’을 가로막은 사람은 김종인 아닌가. ‘입당’은 되고 ‘합당’은 안 되는 논리는 도대체 뭔가. 오세훈·정진석·나경원 모두 합당이 단일화를 위한 ‘단순하고 명확한’ 방법이라는데 반박할 논리가 있나.

1월7일 오세훈은 “안철수 후보님께 간곡히 제안한다. 국민의힘으로 들어와 달라. 합당이면 더 좋다. 그러면 저는 출마하지 않고 야권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1월10일 정진석은 “국민의힘과 국민의당이 통합 전당대회를 열어 새 둥지를 트는 방식으로 중도 통합론을 완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양당 지지자의 공감대 속에 통합 정당을 꾸린 뒤 안철수가 참여하는 경선을 치르자는 것이다. 그는 “내년 3월 대선까지 볼 때 중도 통합의 둥지보다 좋은 곳이 어디 있느냐. 윤석열 총장도 자리에서 내려온 후 광야를 떠돌 필요 없이 이 둥지를 선택하면 된다”며 대선을 위해서라도 ‘중도 플랫폼’은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딱 여기까지였다. 바로 다음 날인 11일 김종인 위원장은 “국민의힘이 자기 후보를 내기도 전에 밖에서 찾는 게 기회주의 아니냐. 당 중진들이 안 대표와의 당 대 당 통합을 주장하는 건 콩가루 발상이다. 우리 당에서 후보 내는 것에 집중해야지 왜 안 대표를 염두에 두느냐”며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드러냈다. 그걸로 끝이었다. 김종인의 기에 눌려 모두 입을 닫았다. 심지어는 안철수의 출마를 종용했던 중진들조차 말 한마디 못하는 지경이다.

정치는 타이밍과 결단의 예술이다. 빠르고 담대하게 모든 것을 던지는 사람이 이긴다. 대중이 100을 기대할 때 150을 던질 줄 알아야 승자가 된다. 60~70 정도의 주장을 백번 해봐야 대중의 마음을 얻을 수 없다. 마중물 한 바가지를 부으면 펌프물이 나오지만 종이컵으로 백번을 부어봐야 아무런 효과가 없다. 만약 안철수가 1월19일에 ‘오픈 경선 플랫폼’ 대신 ‘합당’이나 ‘입당’을 제안했다면 주도권을 확실히 잡았을 것이다.

안철수가 국민의힘 입당이나 합당을 결단하지 못한 것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당 대표에게 개별 입당은 오만한 기득권의 모욕적 요구니 받아들일 수 없었을 테고 합당은 지지층의 이탈이 걱정되었을 것이다. 그는 “생각이 다를 수 있는 여러 야권 지지자들이 이탈하지 않고 단일후보를 지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단일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며, 일부 지지자들이라도 이탈하면 단일후보는 될 수 있지만 선거에서는 패배한다는 것에 모두 동의할 것”이라며 우려했다.

사실 단일화의 시너지가 그리 쉬운 것이 아니다. 화학적 결합에 실패하면 단일화 효과가 크지 않을 수 있다. 특히 단일화만 되면 승리가 보장되는 ‘전략적 단일화’가 아니라 지금처럼 단일화가 되어야 겨우 승부를 겨룰 수 있는 ‘전술적 단일화’일 때는 아주 섬세하게 단일화를 관리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합당’ 카드를 좀 더 적극적으로 검토했어야 한다. 대중은 이슈보다는 ‘이슈를 다루는 태도’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만약 안철수가 “나는 제3지대에 있을 때도 ‘중도’였고, 민주당에 있을 때도 중도적 입장에서 당의 혁신을 끊임없이 요구했다. 이제는 국민의힘에 들어가 문재인 정권을 심판하고 정권교체에 동의하는 모든 분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도록 혁신을 주도해 반드시 집권시키겠다”고 했다면 지지층 이탈은 우려보다는 적었을 것이다.

다른 방법도 있었다. “제가 제안한 ‘오픈 원 샷 경선’을 국민의힘이 받는다면 제가 단일후보가 될 경우 기호 2번 국민의힘 후보로 출마하겠습니다. 시간이 부족해 제가 먼저 입당하더라도 이것은 ‘통합’을 전제로 한 입당입니다. 이 방식이 국민의당과 국민의힘 모두 명분을 얻고 지지자들이 상처를 가장 적게 받는 방법입니다.” 선입당 후경선이 ‘결과를 위한 연대’라면 선경선 후입당은 ‘결과에 의한 연대’다.

어느 방식이든 김종인은 바로 거부했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안철수는 명분과 실리 모두 얻을 수 있었다. 단일화에 대한 진정성에서도 우위를 점했을 것이다. 국민의힘 내부는 제안 수용을 두고 사분오열될 가능성이 높았다. 환영하는 후보도 꽤 있었을 것이다. 국민의힘이 받든 안 받든 지지율은 더 올라갔을 것이다. 제3후보가 거대정당을 상대로 단일화 국면에서 밀리지 않으려면 더 빠르고 더 담대하게 국면을 주도해야 한다. 끌려다니는 순간 쭉 밀린다.

안철수는 그렇다 치고 정말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은 통합을 거부한 김종인의 속내다. 2014년 민주당의 김한길 대표와 극단적으로 대비된다. 2014년 3월2일 민주당 김한길 대표와 ‘새정치연합’ 중앙운영위원장 안철수는 신당 창당을 통한 합당을 전격 선언했다. 당시 새정치연합은 국회의원이 2명에 불과했지만 놀랍게도 50 대 50의 대등한 통합이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야권 분열을 막기 위한 민주당과 김한길의 결단이었다. 3월26일 ‘새정치’를 상징하는 안철수와 ‘민주’를 상징하는 민주당의 반새누리당 ‘연합’ 정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은 그렇게 태어났다. 이 연합으로 민주당은 2012년 총선과 대선의 패배를 극복할 반격의 교두보를 확보했다.

당시의 민주당보다 훨씬 절박한 김종인과 국민의힘이 무슨 이유로 통합을 걷어찼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국민의힘이 국민의당과 통합했다면 안철수가 단일후보가 되더라도 국민의힘 유니폼을 입고 뛰는 ‘우리 선수’가 됐을 텐데 왜 통합 논의를 막았는지 모를 일이다. 1 대 다자구도가 안철수에게 유리한 것을 당내 정서가 받아들이기 어려웠다면 (통합 후에라도) 2단계 경선으로 최종 후보 두 명을 놓고 결선투표를 할 수도 있었다. 이젠 다 끝난 얘기다. 야권 지지자들은 “일주일이면 끝난다”는 ‘3월 단일화’가 깨지지 않기를 기도하는 수밖에 없다.

촉박한 시간을 감안할 때 3월 단일화가 깨지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 몇 가지를 공개적으로 합의해야 한다. ‘지지정당에 상관없는 100% 국민여론조사’ 원칙은 정해졌으니 안철수·금태섭 경선 조사 설문과 국민의힘 후보와의 설문은 동일하도록 설계해야 한다. 당 대 당 실무협상을 통해 지금 결정해야 한다. 경쟁력·선호도·지지도·적합도 등 다양하게 물어볼 수 있지만 “여권 후보에 맞설 야권 단일후보로 누가 좋다고 생각하십니까?”가 합리적이다.

논리적으로 단일후보는 국민의힘·국민의당·무소속 모두 가능하다. 누가 후보가 되든 경선 이후에 입당을 요구하면 안 된다. 그때 가서 “입당하지 않으면 선거를 도울 수 없다”고 하는 것은 상도의(?)가 아니다. 2011년 박원순도 박영선과의 경선 승리 후 민주당의 엄청난 입당 압박을 견뎌야 했다. 만약 국민의힘이 후보를 내지 못하는 상황이 두렵다면 ‘오픈 경선 후 입당’이나 ‘합당 후 경선’을 먼저 요구했어야 한다. 3월15일까지 후보 선출도 못 박아야 한다. TV 토론·조사 기관도 일찍 섭외되어야 한다. 방송사 사정과 여론조사를 위한 ‘안심 번호’를 위해서다.

오만·오판·오기가 국민의힘을 휩싸고 있다. 호기롭던 ‘3자 필승’ 주장은 속속 발표되는 여론조사 이후 슬며시 수그러들었지만 단일화 경선 승리와 본선 승리에 대한 자신감은 여전하다. 지난 총선 때도 그랬다. 근거 없는 낙관이 당을 지배했다. 김종인 위원장은 “나는 무조건 이길 것이라고 보기 때문에 우리 힘으로 해야 한다”고 하지만 지금까지 발표된 여론조사는 ‘중도 확장성’이 있는 안철수가 우위다. 야권 지지자들은 문재인 정권을 심판하기 위해 ‘이길’ 후보를 찾고 있다. 국민의힘 후보가 경쟁력을 입증하지 못하면 안철수를 넘기는 쉽지 않다.

물론 안철수도 넘어야 할 만만치 않은 벽이 있다. ‘잃을 게 없는’ 금태섭과의 부담스러운 TV 토론이다. 잘 알다시피 안철수는 TV 토론 트라우마가 있다. 철저한 준비 없이 나섰다간 토론에 강한 금태섭에게 치명타를 맞을 수도 있다. 국민의힘 유력 후보인 나경원과 오세훈도 행정과 정책에 강한 조은희 서초구청장에게 카운터펀치를 맞을 수 있다. 둘 다 최종 경선과 본선을 위한 훌륭한 ‘스파링 파트너’(?)들이지만 ‘언더 독’의 반란이 심심치 않게 일어나는 곳이 승부의 세계다.

‘전략적 기능’이 고장 나고
승리를 위한 필수 조건인 ‘개방과 혁신’ 대신
‘자폐와 기득권’이 자리 잡은 국민의힘은

‘당보다 자신이 더 위대하다’고 믿는
노정객의 판단에 당의 운명을 맡길 것인가

정치 컨설턴트로서 전략적 판단을 할 때 세 가지 중 하나라도 사로잡혀 있는 참모의 판단은 배제하라고 정치인에게 조언한다. ① 특정인에 대한 증오가 있는 사람, ② 지나친 당파성으로 확증편향에 빠진 사람, ③ 당이나 보스보다 자기 이해관계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 냉정한 판단을 흐리는 요소들이다.

미국 정치드라마 <웨스트 윙>에는 여러 유형의 정치 참모가 등장한다. 기본적으로 매우 똑똑한 천재들이다. 그러나 정치는 머리만 좋다고 잘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당대의 천재’라 불리는 연설비서관 ‘샘 시본’을 D급 참모로 보는 이유다. 모르는 게 없는 박학다식한 천재지만 (로펌에서 잘 나가는 변호사로 일하다가 뒤늦게 정치에 합류했기 때문에) 정무적 감각은 형편없다. 공보수석 ‘토비 지글러’와 정무수석 ‘조시 라이먼’ 역시 엄청난 천재들로 어릴 때부터 정치에 참여하여 정무적 감각이 매우 탁월하지만 내 눈에는 C급 참모다. 자신들의 당파적 싸움에 대통령을 끌어들이기 때문이다. 대변인인 ‘C J 크랙’은 B급이다. 정무적 감각이 탁월하고 철저하게 보스인 대통령 중심으로 사고하지만 마지막에는 결국 ‘대통령의 뜻’을 거스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A급 참모는 대통령의 비서실장인 ‘리오 맥게리’다. 냉철한 판단력으로 대통령에게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정확히 제시한다.

국민의힘은 2016년부터 ‘전략적 기능’이 완전히 고장 났다. 승리를 위한 필수조건인 ‘개방과 혁신’ 대신 ‘자폐와 기득권’이 자리 잡았다. 2002년 이회창이 노무현에게 패할 때, 이회창이 챔피언이자 여당 후보 같았고 노무현이 도전자이자 야당 후보 같았다. 아마도 이회창이 노무현보다 나이도 많고 경기고 서울대 법대를 나온 주류 엘리트였다는 점도 그렇게 보이게 했을 것이다. 지금도 그렇다. 승리에 대한 간절함과 절박감이 보이지 않는다. 비주류로 전락했는데 여전히 주류인 줄 착각하고 있다.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는 스포츠의 불문율이다. 아무리 메시가 축구의 신이라 하더라도 ‘바르셀로나의 메시’지 ‘메시의 바르셀로나’일 수는 없다. 지금 국민의힘은 ‘당보다 자신이 더 위대하다’고 믿는 노정객의 판단에 당의 운명을 전적으로 맡기고 있다. 놀라울 정도로 순응한다. 좋지 않은 징조다.

▶박성민

‘서울’에서 만나기도 전에 헤어진, 안철수와 김종인


1991년 설립한 정치컨설팅그룹 ‘민’의 대표이자, 한국의 대표적인 정치컨설턴트다. 30년 이상 선거를 치르면서 익힌 감각과 예리하고 독창적인 시각을 평가받고 있다. 정치게임에서 승리하는 법칙을 담은 <강한 것이 옳은 것을 이긴다> <정치의 몰락>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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