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경제는 늘 위기인 것 같지만 지난해는 유독 심각했습니다. 코로나19가 휩쓸고 간 지난해 북한 무역은 ‘실종’ 수준입니다. 2021년 하반기까지 코로나19 위기가 지속될 것으로 예측되는 상황에서 올해 북한의 경제는 어떨까요. 일각에서 ‘체제 붕괴 위험’까지 우려하지만 국내 전문가들은 장마당이 건재하는 이상 북한 경제가 일정 수준 버틸 여력이 있다고 봅니다.
알렉산드르 마체고라 북한 주재 러시아 대사는 지난 8일(현지시간) 인테르팍스 통신과 한 인터뷰에서 “지난해 9월 태풍 이후엔 수입이 완전히 금지됐다”며 “(코로나19에 따른) 자체 봉쇄는 경제는 물론 주민들의 생활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코로나19로 이미 지난해 1월 국경을 폐쇄한 북한 내부에 심각한 물자 부족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사실 북한 경제는 2017년부터 본격화한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로 이미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중국이 북한 수출품을 덜 사주면서 북한에 돈줄이 말랐습니다. 주민들의 호주머니 사정도 나빠졌고 일명 ‘장마당’으로 알려진 비공식 경제활동도 타격을 받았습니다. 이 상황에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터진 게 바로 지난해 코로나19입니다.
전염병은 나라가 잘사는지 못사는지 가리지 않지만, 남기고 간 피해는 다릅니다. 2017년부터 시작된 대북 제재가 대중 수출에 영향을 미쳤다면 코로나19의 타격은 수출보다 무역에 상처를 입혔습니다. 2019년까지만해도 북한의 소비재 수입량은 거의 변화가 없었다고 전해졌습니다. 그러나 지난 1월 발표된 국개발연구원(KDI) 북한경제리뷰를 보면 코로나19가 터진 2020년은 전년과 비교해 수출은 78%, 수입은 81% 떨어질 만큼 무역 부분이 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북한의 대중 무역 수출은 5000만 달러, 수입은 4억9000만 달러로 무역 총액도 6억 달러에 못 미쳤습니다. 북한은 올해 예산수입 증가율을 0.9%로 잡았는데 이는 김 위원장 집권 이후 가장 낮은 수치이자 첫 0% 대 증가율입니다. 북한은 지난 1월 제8차 당대회를 열고 ‘새로운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확정했습니다. 당시 국내외 언론이 주목한 것은 자력강생, 지역 균형발전 등 5개년 계획으로 내세운 목표보다 김정은 위원장이 지난 5년간 추진해온 경제 계획이 실패에 돌아간 것을 인정 부분이었습니다.
■무역 실종으로 달러 부족한데 왜 달러 가치는 더 떨어질까?
그런데 말입니다. 2020년 북한은 매우 이례적 현상이 두드러졌습니다. 2020년 10월부터 북한 시장에서 원화 환율이 큰 폭으로 절상됩니다. 통상 달러가 부족하면 달러의 가치는 올라가고 그에 비해 원화 가치는 떨어지죠. 가뜩이나 무역이 쪼그라들면서 달러 씨가 마른 상황이었는데 달러 가치가 떨어진 기현상이 발생한 겁니다. 일본 북한전문매체 아시아프레스에 따르면 달러 대비 북한 원화 환율은 지난해 10월 23일 달러당 8170원 수준에서 11월 12일 6500원으로 20.4% 내렸습니다. 김정은 집권 이후 8000원 수준으로 유지되던 환율은 3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회복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북한 원화 가치가 단기간에 급상승한 정확한 원인은 파악되지 않았습니다. 북한 당국이 외화사용을 금지하고 주민들에게 걷는 재원을 원화로 일원화하는 등 ‘인위적 개입설’이 가장 유력합니다. 이러한 개입 때문에 일시적으로 달러화의 수요와 공급 균형이 시장에서 무너졌다는 얘기입니다. 원화 가치가 상승한 10월 이후 북한 식량 가격은 그간의 증가세를 멈추고 크게 하락했습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통화에서 “북한은 식량 가격과 환율을 중앙에서 통제한다. 외부에 나라 안 사정을 숨기는 목적이거나, 식량 가격을 끌어내리기 위함 등 이유는 다양하다. 지하경제 등 다양한 지표가 없기 때문에 외부에서 환율만 보고 북한 내부 상황을 정확하게 평가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기현상이 계속 유지될지는 의문입니다. 북한전문매체 데일리엔케이는 지난해 12월 북한 내부 소식통을 인용해 “북한 주민들이 달러가 떨어진 상황을 기회로 이용해 몰래 달러를 사들이는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북한 주민들이 상대적으로 안정된 달러를 가치가 떨어진 틈을 타 더 확보하려고 하면서 북한 당국의 인위적인 환율 조정 시도를 다시 정상화하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시장경제 씨앗 ‘장마당’…북한 위기 돌파구
북한 경제는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까요. 최근 국내외 보수 성향 학자들 사이에서 ‘북한 붕괴론’이 재등장했습니다. 빅터 차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는 지난 달 워싱턴 포스트에 쓴 기고에서 “북한 경제가 셧다운 상태에서 1년 더 살아남을 수 있을까? 아니라고 본다”며 “(코로나19에 따른) 질병과 나쁜 경제가 핵무기에 대한 북한 당국의 통제권을 흔들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국내 다른 전문가들은 2021년 북한 경제는 체재 붕괴를 가져올 만큼 위기가 될 수 없다고 봅니다. 명 교수는 “중국과 러시아에서 일정 부분 제공하는 식량도 있지만 북한 주민들이 빵이나 과일 등 식생활이 달라지면서 쌀에 대한 의존도도 낮아졌다”며 “식량 및 공급 부족으로 붕괴로 갈 수 있다는 의견은 설득력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북한 주민들이 경제 위기에 버틸 수 있는 ‘근육’을 갖췄다는 점도 과거와 다른 점입니다. 비공식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장마당은 코로나19가 가져온 물품 공급 부족 현상을 해소할 여력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통화에서 “상품의 원활한 유통이 제한되는 상황에서도 시장이 작동하면서 현재 북한은 최악의 상태가 아니다”며 “고난의 행군 시절인 90년대 중반에는 북한 내 시장이 없고 배급제가 붕괴하면서 주민들이 넉 놓고 경제 위기를 당했다면 현재 주민들은 시장과 함께 맷집이 생겼다”고 말했습니다. KDI도 1990년대 경제위기와 현재 북한을 다르게 봐야한다는 데 동의합니다. “2020년 북한 경제에서는 스스로 핵 국가임을 표방하는 김정은 정권이 건재하다. 그리고 현재의 북한경제는 그간 비약적으로 발전한 시장이 지배한다. 설사 2021년에 위기가 발생한다고 하더라도 이에 대응할 수 있는 당국의 정책적 여력과 시장의 반응 기제를 감안할 때 위기의 강도와 형태는 1990년대와 다를 것이라고 판단할 수도 있다.”
물론, 북한 당국의 강도 높은 방역 조치로 장마당이 코로나19 이전만큼 활발하게 운영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외신 등에 따르면 코로나19에 따라 북한 당국은 지난해 4월부터 장마당 운영을 하루 4시간, 격일로 제한했습니다. 정부도 장마당에 대한 통제가 어떤 방향으로 갈지를 주의 깊게 보고 있습니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지난 4일 국회 본회의에서 ‘북한의 시장경제 후퇴 전망’을 묻는 홍성국 의원 질의에 “장마당 경제에 대한 일정한 통제를 강화한 것은 사실인데 사회주의 계획경제로 회귀하는 것인지 장마당 경제 자체를 제도화하는 것인지는 진행 상황을 보고 결론을 내리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습니다.
전문가들은 방역 등에 따른 조치로 통제는 불가피하지만 북한 당국이 장마당을 활용해 위기에 대응하는 상황은 계속될 것으로 봅니다. 양 교수는 “400여개에 달하는 장마당을 통제 범위 내에서 허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습니다. 이종규 KDI 연구위원도 통화에서 “김정은 위원장 집권 이후 가장 큰 특징은 비공식 부분 경제를 통제하기 보다 활용한 것”이라며 “방역이나 인플레이션 우려로 정부가 장마당을 통제했다고 해서 없어질 수준으로까지 개입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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