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S] 이런 홀로
지역차별의 그림자
“전주에 사는 거 답답하지 않아?”
“서울서도 안 돌아다녀서 똑같아”
지역에선 재미없게 살 거란 선입견
오랜 친구마저 납작하게 평가했다
‘아름다운 순례길’에 위치한 전북 전주시 완산구 전동성당과 경기전.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중학생 때 처음으로 피시(PC) 통신이라는 것을 시작했다. ‘요즘 애들’은 인터넷에 연결할 때 전화 연결음 ‘삐 삐삐~~ 이이이이~~~ 이이이이~ 삐’ 소리가 나고 통신이 연결된다는 소싯적 이야기를 하면 안 믿겠지. 엄마에게는 <교육방송>(EBS) 강의를 들어야 한다고 뻥치고 피시 통신을 연결했고, 그중 별자리 동호회에 가입하게 되었다. 전북 전주 밖으로 나가본 적이 없는 중학생에게 서울, 대전 등 타 지역 사람들과 밤새 ‘닉네임’으로 채팅을 하는 것은 짜릿한 경험이었다. 내 닉네임은 좀 오글거렸는데,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아폴론을 짝사랑하다가 태양 빛에 말라 죽어버리는 요정 이름이었으므로 여기선 비밀로 하겠다.(중2병이 이렇게 무섭다.)
어쨌든, 그때 처음으로 너 어디 사느냐는 질문을 들었고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전주라고 답했다. “오, 전주. 거기 마이클 잭슨이 비빔밥 맛있다고 한 데 아니야?”(와, 이후로 이 말을 2천번은 들은 것 같다.) 그중 클럽장이었고 천문학에 박식했던 대학생 오빠가 물었다. “내가 전주 잘 아는데, 무슨 동이야?” 나는 순진하게 답했다. “팔복동이요.” 그 오빠는 다시 답했다. “거기 공장 많고 밤 되면 무서운 데 아니야?” 별자리는 잘 알아도 할 말 안 할 말 구분은 못 했던 ‘제우스’ 오빠는 그때 내가 얼마나 무안했는지 알까. 내가 사는 지역이 곧 나에 대한 정보값이 된다는 걸 그땐 몰랐다. 서울 소재지의 대학에 입학해 신입생 환영회 때에도 선배들은 집 위치부터 물었다. 누가 봐도 서울 애가 아니게 생겼는지, 나에게는 ‘어디 살아?’가 아니라 ‘고향이 어디냐?’는 질문이 돌아왔다. 내가 전주라고 하면 열이면 열 마이클 잭슨과 전주비빔밥, 전주콩나물국밥 등을 언급했다. 아, 전주비빔밥 한번만 더 들으면 저 선배 손모가지를 비벼버려야지, 라고 마음속으로만 생각하고 있을 때 또 어떤 선배가 말했다. “전주? 거기 최근에 다시 갔는데 진짜 그대로더라.” 그때 그 말도 왠지 모욕적으로 느껴졌다. 서울은 이렇게 빠르게 변화하는데, 늘 그대로인 도시. 물론 그 선배는 정감 가고 따뜻하다는 의미로 한 말이었는데 내게는 ‘언제나 침체되어 있는 지방 도시’라는 말로 해석이 되었다. 맞다. 괜한 열등감이었다. 전주에서 태어나 머문 기간과 서울에 올라와 혼자 산 기간이 엇비슷해졌음에도 누군가 너는 어디 사람이냐고 물어보면 나는 선뜻 ‘서울 사람’이라고 답하지 못한다. 그럼 나는 전주 사람인가? 1년에 전주에 머무는 날이 20일도 채 되지 않는데? 서울에서 직장을 전전하면서 너무 힘들어서 그냥 고향으로 내려갈까 생각한 적도 물론 있다. 150만원 월급을 벌어 월세를 내고 생활비를 쓰고 나면 남는 돈이 없어서, 내가 무엇을 위해 서울에서 살아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고향 집에는 10만원도 부쳐줄 수 없으면서, 집주인 할머니·할아버지에게는 매달 40만~50만원의 월세를 부쳐야 하는 현실. 그런데 엄마 집이 서울인 친구가 부러우면서도, 엄마 집을 떠나 얻는 자유도 있었기에 차츰 집세를 ‘자유의 가격’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얼마 전 섬 지역에 간 적이 있었다. 버스와 버스 사이의 배차 간격이 너무 멀었고 환승이 되지 않았다. 당연히 무료 환승이 서울과 경기권에서만 되는 걸로 알았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지방의 버스 시스템 관련 글이 올라왔길래 댓글로 ‘지방은 환승 안 되지 않나요?’라고 썼다가 무안을 당했다. “네, 지방은 인력거 타고 다녀요”, “네, 부산은 자갈치 타고 다닙니다”, “저 지방 사는데 말 타고 다녀요”. 지방의 교통이 낙후됐다고 비웃는 글로 오해한 사람들이 내 글 하나를 이리저리 공유하며 조롱하고 있었다. 아니, 저기요. 저도 지방 사람이라고요! 수도권 중심 발전으로 인한 지역 소멸을 누구보다 걱정하는 1인이라고요! 이런 말을 해봤자 이미 내 글은 지방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한 서울 사람의 무식한 글로 치부되고 있었다. 그 전부터 온라인상에서 지역 차별에 대한 분노가 높아지고 있는 걸 느꼈다. 정책 논의가 서울 중심으로 진행되고, 더럽고 거추장스러운 설비들만 지역으로 내려보내는 상황, 자연재해나 사고 뉴스마저도 지역은 소외되는 현실에 성이 나는 것이다. “서울 놈들은 서울이 세상 중심인 줄 안다”는 우스갯소리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이처럼 지역 차별과 불평등에 대한 분노를 느끼고 있던 차에 내가 그 분노의 대상이 되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가족과 친한 친구들이 전주에 거주하고 있으며, 고등학교까지 전주에서 졸업했고 서울이 지긋지긋하다 여기는 나를 왜 ‘무식한 지방 차별러’라 호도하는 거지? 버스 환승 체계를 몰랐다는 이유만으로? 억울하다. 억울해! 가끔 고향 친구들을 만나면 친구는 신기하다며 감탄한다. “야, 그 복잡한 서울에서 어떻게 사냐, 나는 가끔만 가도 정신이 없더라.” 나는 별거 없단 식으로 답하지만 목소리에는 왠지 잘난 척이 묻어 있다. “사는 거 다 똑같지, 뭐. 나도 아직 지하철 잘못 탈 때 많아.” 전주에 내가 원하는 일자리가 있다면 나는 거기서 자리잡을 수 있을까? 현재 전주에 사는 친구들은 공무원이거나 주부다. 일일이 설문조사를 해보지는 않았지만, 대부분의 친구들은 나보다 넓은 집에서 안정적인 삶을 꾸리고 있다. 지방이 서울보다 부동산 가격이 저렴하기에 그곳에서 직업 안정성만 찾을 수 있다면 결혼을 하고 집을 사기엔 형편이 나은 것이다. 일자리를 구해 20대에 서울에 왔던 친구 한명은 박봉과 열악한 주거, 가혹한 야근에 지쳐 “이건 사람 사는 게 아니”라며 1년 만에 전주로 내려갔다. 전주가 서울보다 월급이 더 낮아도 부모님 집에서 출퇴근하니 생활비가 적게 든다는 친구에게 ‘전주 사니까 어때? 답답하지 않으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친구는 답했다. “서울 살아도 많이 돌아다니고 문화생활 즐긴 거 아니라서 똑같아. 전주라서 답답한 게 아니라 나이 들어서 엄마랑 사니까 답답하지.(웃음)” 답답하지 않으냐는 나의 질문에는 이미 그 지역에 대한 가치 판단이 들어 있다. 가는 곳이 항상 거기서 거기고, 공연·뮤지컬·영화 등 다양한 문화적 선택지를 고를 수 없는 곳이라는 나의 편견이 거기 있다. 더 넓은 곳에 나와보지 않고 태어나 자란 곳에서만 살아본 사람은 재미없게 살 거라고. 나는 오래된 친구마저도 납작하게 평가한 걸지도 모르겠다. 내가 서울에 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늘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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