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가다 밥’ 4년쯤 먹어 보니, 사람 사는 세상 다 똑같다는 걸 느낀다. 일반인들은 잘 모르는 공사장, 그 담장 안 이야기를 해볼 생각이다. 게티이미지뱅크게티이미지뱅크
난, ‘노가다꾼’이다. “너 공부 열심히 안 하면 커서 저 아저씨처럼 된다!”에서 주로 ‘저 아저씨’를 담당하는, 바로 그 사람이다. 시작은 잡부였다. 1년 가까이 인력사무소를 드나들었다. 그러다 우연한 계기로 목수가 됐다. 정확히는 형틀목수다. 목수면 목수지, 형틀목수는 또 뭐냐고? 내장목수들은 나무 구조물을 만들지만, 형틀목수는 콘크리트 건물의 뼈대를 만들기 위해 ‘거푸집틀’을 짜는 콘크리트 목수라고 생각하면 된다. 더 자세히 설명하려면 끝도 없다. 그냥, 망치질해서 집 짓는 ‘노가다꾼’이라고 생각하는 게 쉽다. 망치 잡은 지는 한 3년 됐다.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긴 하지만 여기서 잠깐, 질문 하나 해볼까. “으잉? 노가다꾼이 <한겨레>에 칼럼을 쓴다고?” 이런 생각 한 사람이 당연히 있겠지? 첫번째 연재니까 우선은 그런 얘길 좀 해볼까 한다. 노가다꾼을 바라보는 일반적인 시선에 관해서 말이다. 이를테면 노가다꾼이 칼럼 쓴다고 했을 때 “으잉?”이라는 반응이 먼저 나올 수밖에 없는 그 지점 말이다. 21세기 문화 강국 대한민국에서 누가 특정 직업을 색안경 끼고 보느냐고? 그러게 말이다. 우리 사회가 그렇게 도덕 교과서만 같았으면 얼마나 좋으련만, 현실이 안 그렇다. 인터넷만 봐도 ‘노가다판’에 대한 조롱과 멸시가 가득하다. 심지어는 가족조차 부끄러워하는 경우가 있는 직업이 노가다꾼이다. 같이 일하는 형님들한테 자주 들었다. 자식들이 아빠 직업 창피해해서 고민이라는 얘기. 최근 나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엄마(나는 아직은 ‘엄마’가 편한 30대 중반이다)랑 먼 친척 장례식에 다녀왔다. 예를 표하고 자리에 앉는데 상주가 왔다. “아이고 와줘서 고마워요. 둘째 아들? 기자라고 했었나?” “으응. 잡지사 기자…. 얘가 어릴 때부터 머리가 좋았잖아. 호호호.” 머리 좋았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지만, 그건 둘째 치고 기자라니? 깜짝 놀라, 엄마를 쳐다봤다. 엄마는 나에게 무언의 협박, 아니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아, 네…. 글 쓰고 있어요.” 차마 기자라고는 할 수 없었다. 잡지사 기자 그만둔 게 언제인데. 그렇다고 “아뇨! 노가다꾼입니다”라는 말은 더더욱 할 수 없었다. 엄마 눈에서 레이저가 나오고 있었다. 그래서 글 쓴다고 했다. 그건 사실이니까. 장례식장 나오며 엄마한테 버럭 화를 냈다. “아, 뭔데! 엄마는 아들이 부끄러워? 노가다꾼이라고 왜 말을 못 해? 웃긴다, 진짜?” “아휴! 됐어. 넘어가. 거기서 뭘 일일이 설명하냐.” “기자 때려치운 게 언젠데 아직도 기자라고 해. 엄마 다른 데 가서도 그렇게 말하지?” “아, 몰라.” 엄마 마음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다. 아들이 극적으로(?) 직업을 바꾼 것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하기엔, 장소와 상황이 마땅치 않았겠지. 그래도, 그래도 그렇지. 왜 그런 걸까. 도대체 왜 노가다꾼은 가족조차 부끄러워하는 직업이 된 걸까. 내가 내린 결론은 크게 두가지다. 우선은 ‘노가다판’을 잘 모른다. 일상적으로 공사장 주변을 지나다니고, 매일매일 건물이 무너졌네, 몇 사람이 죽었네, 부실 공사가 어떻고 안전 대책이 저렇고 하는 뉴스가 나오지만, 실제 그 속에서 밥 벌어먹고 사는 사람이 누구인지, 그들은 어떤 생각 하고 어떤 일 하는지, 관심도 없고 알려고도 안 한다. 뭐, 꼭 알아야 하는 것도 아니지만. 모르기만 하면 그나마 다행이다. 영화나 드라마 같은 대중매체가 망쳐버렸다. 왜곡된 방식으로 노가다꾼을 묘사한다. 한결같다. 말 나온 김에 한번 묘사해보자면, 사업에 실패한 뒤 빚쟁이한테 쫓기는 남자가 당장 밥 먹을 돈이 없어 꼭두새벽 인력사무소를 찾는다. 먼지가 풀풀 날리는 공사 현장에서 거친 쌍욕 먹어가며 벽돌을 힘겹게 나른다. 여기서 꼭 한 번 자빠진다. 벽돌이 와르르, 남자 눈에선 눈물이 주르륵. 해 질 무렵, 현장 소장에게 연신 머리를 조아리며 만원짜리 몇장을 받는다. 집으로 와 소주를 벌컥벌컥 들이켠다. 안주는 언제나 라면. 그러면서 신세 한탄을 한다. 지갑에서 자식 사진을 꺼내 든다. 사진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그러다 지쳐 잠든다. 지금 머릿속에서 저마다 그림이 그려질 거다. 왜? 분명 한두번은 본 장면일 테니까. 이렇듯 대중매체가 끊임없이 노가다꾼을 왜곡하다 보니, 잘 모르는 일반인은 으레 그런 줄로만 안다. 그렇게 나는 ‘공부 안 하면 저렇게 되는 아저씨’를 담당하게 된 거다.
노가다꾼의 일터, 밥벌이 현장 물론 대중매체에서 묘사하는 게 전부 ‘뻥’은 아니다. 실제로도 사업에 실패했거나, 개인적인 사정으로 떠밀리듯 이 바닥 온 사람, 많다. 담배 뻐끔뻐끔 피우면서 망치질하고, 가래침 아무 데나 팍팍 뱉고, 값싼 농담 하면서 낄낄거리는 것도 사실이다. 나도 처음엔 ‘와, 이래서 노가다 노가다 하는구나’ 싶었다. 근데 말이다. ‘노가다 밥’을 4년쯤 먹다 보니, 여기도 똑같다는 걸 새삼 느낀다. 당연한 얘기지만, 노가다꾼도 누군가의 남편이고 아버지다. 아내 사랑하고 자식 걱정하는 마음, 다르지 않다. 그냥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보통 아저씨들이다. 그런 아저씨들의 평범한 밥벌이 현장이다. 이곳 또한. 그래서 앞으로 “노가다꾼에 대한 편견을 모조리 깨부수겠다!” 뭐 그런 얘길 쓸 참이냐고? 하하, 그런 거창한 사명감 같은 건 없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지나다니는 공사장, 그 담장 안의 이야기를 해볼 생각이다. 일반인은 잘 모르는 그 담장 안 풍경과 사람들에 관해서 말이다. 그리하여 다만 몇 사람이라도 몸 쓰고 땀 흘리는 삶에 매력을 느낄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그나저나, 우리 엄마는 언제까지 아들 직업을 숨기려나? <한겨레>에 칼럼 쓰기 시작했으니 이제 더는 못 숨기겠지?
송주홍 글 쓰는 노가다꾼. 낮에는 집을 짓고, 밤에는 글을 짓는다. 대전과 서울에서 기자로 일했다. 처음엔 머리나 식힐 요량으로 시작했던 노가다판에서 삶을 배운다. <노가다 칸타빌레>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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