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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님은 원래 비대면? 61% “제사 안 지내거나, 간소하게 지내” - 한겨레

코로나19 이후 온 식구 모이는 명절 희미해지며
‘가사노동 해방’ 경험…“이전으로 돌아가기 힘들 듯”
<한겨레> 자료 이미지.
<한겨레> 자료 이미지.
직장인 박아무개(35)씨는 어렸을 때부터 경남 지역의 시골 큰집을 찾아 꼬박 명절 차례를 지내고 돌아가신 조상의 기제사도 지냈다. 그러나 지난해 코로나19 유행 이후론 차례·제사 때문에 큰집에 가지 않게 됐다. 코로나19 이후 기제사는 아버지와 삼촌(아버지의 형제)들만 모여서 조용히 지내는 방향으로 ‘간소화’됐기 때문이다. 박씨는 “코로나19 유행이 길어지고 있어 이번에도 큰집에는 가지 않을 것 같다”며 “코로나19 유행이 잦아들어도 예전처럼 온 식구가 모여 제사를 모시지는 않을 것 같다. 아마 우리 세대로 내려오면 제사가 없어지거나 더 간소화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유행이 길어지면서 차례·제사 문화 간소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코로나19 이전에도 전통적 ‘가족’의 의미가 변화하면서 차례·제사 문화가 바뀌어왔지만 감염병 유행으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변화를 더 가속하는 모양새다. 블록체인 기반 여론조사 플랫폼 ‘더 폴’에서 지난달 23∼29일 3만5551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34.3%(1만2180명)가 ‘차례를 지내지 않는다’고 답했고, 26.3%(9344명)는 ‘간소화된 차례를 지낸다’고 답했다. 명절 차례를 지낸다고 답한 사람은 39.5%(1만4027명)로 절반이 되지 않았다. 차례를 지내지 않는 이유로는 응답자의 30.6%(1만879명)가 ‘가족들과 간소한 명절을 보내기로 합의해서’라고 답했고, 15.3%(5442명)가 ‘종교적인 이유’를 꼽았다. ‘경제적인 이유’로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고 답한 사람도 5%(1775명)였다. ‘명절에 차례를 지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묻는 말에 ‘우리의 전통이기 때문에 예법에 맞춰 지내야 한다’고 답한 사람은 11%(3919명)에 불과했다. 44%(1만5649명)가 ‘차례를 지내되 시대가 변했으므로 간소화된 차례를 지내야 한다’고 답했고, 33.7%(1만1970명)가 ‘차례를 지내지 않아도 된다’고 답했다.
지난 5월 여성가족부와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발표한 ‘제4차 가족실태 조사’에서도 제사에 대한 인식변화를 확인할 수 있었다. 전국 1만여 가구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45.6%가 ‘제사를 지내지 않는 것에 동의한다’고 대답했다. 다만, 세대별로 인식 차이가 있었는데 70살 이상 응답자는 27.8%가 제사 폐지에 동의한 반면, 20대 응답자는 63.5%가 제사 폐지에 찬성하는 입장을 보였다. 실제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제사’나 ‘제사 없음’ 등의 키워드로 검색하면 명절에 차례를 지내지 않고 여행을 가거나 각자의 여가생활을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대신 간단하게 명절 음식을 차려 가족·친지들과 모이는 가족도 늘었다. 제사·차례 문화 축소 현상은 코로나19가 종식된다 해도 이전으로 복구되지 않고 변화를 겪을 가능성이 크다는 의견이 나온다. 박종천 고려대 민속문화연구원 교수는 “코로나19 이후 교회나 사찰에도 사람들이 직접 가지 않고도 신앙생활을 이어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의식의 전환이 있었다”며 “최근 2년 동안 비대면 명절을 경험하고 가사노동 해방을 사람들이 경험했기 때문에, 다시 대면사회로 돌아가더라도 형식적인 변화를 수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일부 가족들은 전통적으로 지내왔던 제사 지속을 놓고 가족 구성원들이 갈등을 일으키기도 한다. 하지만 전통문화를 연구하는 전문가들은 제사 문화의 축소 현상은 자연스러운 사회현상으로 진단하면서, ‘제사’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현재 살고 있는 가족 구성원들의 ‘모임’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역사민속학회 심일종 연구이사(서울대 인류학 박사)는 “우리 역사를 들여다보면 조선 말기에는 지금처럼 제사가 많지 않았었다. 20세기에 인구가 늘면서 일시적으로 제사의 수가 늘고 규모가 커진 경향이 있다”며 “가족 문화의 허리 역할을 하는 형제의 수가 줄어들고 형제간의 교류가 줄어들면 제사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짚었다. 심 이사는 “민족 역사에서 일시적으로 늘었던 제사가 간소화되는 것은 바람직한 방향이기도 하다. 제사를 중심에 두지 않더라도 명절에 가족이 모여서 관계를 확인하고 교류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제언했다. 이재호 기자 p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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