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선 여사 10주기
용균 엄마, 한빛 엄마, 세월호 유가족
민주화 열사 아버지 등 한자리 모여
노동자 죽음 방관하는 사회 변화 촉구
“자식 죽음 알리는 일 고통스럽지만
이웃 아이 내가 지킨다는 마음으로
공동체 생명 보호 함께 노력해야”
전태일 열사 어머니 이소선 여사 10주기 토론회 ‘내가 너의 뜻을 이룰게’가 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전태일기념관에서 열려 참석한 유가족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박래군 4·16재단 상임이사, 발제자인 전주희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연구원, 장남수(장한구 열사 아버지), 유경근(세월호참사 가족), 김혜영(이한빛 어머니), 김미숙(김용균 어머니)씨. 이종근 선임기자 root2@hani.co.kr
“저는 평범한 사람으로 살았지만 이제는 ‘한빛 엄마’로 살아가려 합니다. 이소선 여사의 나눔과 연대를 기억하며 한빛의 뜻을 이뤄가겠습니다.”(고 이한빛 피디 어머니 김혜영씨) “많은 곳에서 용균이의 사고를 이야기해야만 하는 게 너무 힘든 일이었지만, 그런데도 계속 말하는 이유는 같은 사고를 막기 위해서입니다.”(고 김용균 어머니 김미숙씨) 처음부터 ‘투사’는 아니었다. 김혜영씨는 중학교 선생님으로, 김미숙씨는 비정규직 노동자로 평범하게 살아왔다. 그러나 드라마 조연출로 일한 아들 이한빛이 2016년 열악한 드라마 제작 현실을 죽음으로 고발하고, 비정규직으로 일해온 아들 김용균이 2018년 안전장비도 없이 혼자 일하다 산업재해로 숨지자 두 사람은 숙명처럼 ‘한빛 엄마’, ‘용균 엄마’라는 이름으로 거리로 나섰다. 전태일의 어머니에서 노동자의 어머니로 거듭난 고 이소선 여사처럼, 노동자의 죽음에 책임지지 않으려는 사회를 고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1일 서울 종로구 전태일기념관에서는 이소선 여사 10주기를 맞아 ‘내가 너의 뜻을 이룰게’라는 제목의 토론회가 열렸다. 사회적 참사와 구조적 문제로 자식을 잃고 세상을 바꾸고자 사회운동가로 거듭난 ‘이소선’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김미숙씨, 김혜영씨, 유경근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예은 아빠), 장남수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회장(장현구 열사 아버지)이 토론자로 참여해 ‘유가족 운동’의 의미를 되짚으며 “사람이 우선인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촉구했다. 유가족들은 자식의 죽음을 계속 알려야만 하는 슬픈 상황 속에서도 운동을 이어가는 이유에 대해 “우리 모두의 자식이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김혜영씨는 “슬프고 동정받는 것 같아 유가족이나 피해자라는 말을 쓰고 싶지 않았다”면서도 “우리 가족은 한빛의 죽음이 개인적 죽음이 아니고 사회적 타살이라는 확신을 가졌고, 한빛이가 나만의 아들이 아니라 모두의 아들이기 때문에 유가족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피해자 운동의 주체로 나섰게 됐다”고 말했다. 유경근 위원장도 “‘내 딸은 내가 보호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내 이웃의 아이를 내가 지킨다’는 마음을 먹었다면 예은이를 지키는 수십명의 아빠가 있었을 텐데, 안전이라는 문제는 개인의 안전 의식을 벗어나 공동체의 생명과 인권을 지키기 위해서 함께 노력해야 하는 것”이라고 했다. 산업재해로 아들을 잃은 김혜영씨와 김미숙씨는 아들의 죽음을 노동운동으로 승화시킨 이소선 여사의 정신이 ‘유가족 운동’의 원동력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김혜영씨는 “절망하고 힘들 때마다 우리를 이끌어준 것은 이소선 어머니로부터 내려온 유가족 정신이었다”고 말했다. 김미숙씨는 “<전태일 평전>을 읽으며 열사의 요구가 아직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암담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전태일과 어머니 이소선씨가 있었기에 저와 노동자들이 싸움이 가능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두 어머니의 활동은 방송·미디어 산업 종사자들의 권익을 대변하는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와 산업재해 피해자들을 돕는 ‘김용균재단’이라는 결실로 이어졌다. 토론회 발제를 맡은 전주희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연구원은 한국의 ‘유가족 운동’은 1970년 전태일 열사 분신 뒤 이소선 여사에서 시작됐다며 “죽음은 삶의 종결이 아니라 남겨진 사람들이 해독해야 할 메시지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장필수 기자
fe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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