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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도 지금도…태일이가 살 수 있는 세상은 아니었어요” - 한겨레

전태일 친구들이 돌아보는 50년
김영문·이승철·임현재·최종인
노동구술기록집에 기억 털어놔
“친구의 유언은 인생철학이 됐고
청계노조 세우며 뜻 이루려 노력
여전히 노동자들에 만만찮은 현실
태일이가 있었어도 살 수 없을 것”
전태일 열사 50주기를 5일 앞둔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전태일다리에서 `예배공동체 능선·광야에서' 교인들이 전태일 열사 추모 50주기 거리기도회를 열고 `비정규직 철폐연대가'를 부르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전태일 열사 50주기를 5일 앞둔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전태일다리에서 `예배공동체 능선·광야에서' 교인들이 전태일 열사 추모 50주기 거리기도회를 열고 `비정규직 철폐연대가'를 부르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평화시장 한구석에서 불덩이가 튀어나와요. (…) 제가 어머니(이소선) 돌아가시기 전까지 어머니에게 그 상황을 이야기해본 적이 없습니다. (…) 제가 잠바를 벗어서 (불을) 끕니다. 그러니까 바로 벌떡 일어나서 또 외쳐요. ‘나의 죽음을 헛되이 말라’고. 그런데 그 모습이 눈썹은 다 타고 입술이 튀어나오고. 머리는 나일론 천으로 범벅이 됐는데….”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50년 전 청년 전태일의 마지막을 회상하던 최종인씨는 목이 메었는지 “더 이상 얘기 못 한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노동구술기록집 <전태일의 친구들 태일>’(기록집)의 한 대목이다. 기록집은 이수호 전태일기념관장이 전태일 열사 곁을 지킨 친구 4명(김영문·이승철·임현재·최종인)을 올해 2월부터 4월까지 여섯 차례 한자리에 모아 나눈 이야기를 기록한 책으로 전태일 50주기를 앞두고 지난 5일 공개됐다. 참가자들이 조영래 변호사가 지은 <전태일 평전>을 함께 읽고, 평전의 시간적 흐름에 따라 전태일에 대한 기억을 털어놓는 방식으로 서술됐다. 이제는 70대가 돼 자영업, 보험모집인 등을 하며 각자의 삶을 살고 있지만, 친구들에게 ‘전태일’은 평생 지울 수 없는 이름이다. 애초 이들 역시 ‘전태일’이었다. “전라남도 나주에서 아무것도 없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고, 서울 평화시장에 들어온 건 68년도 봄…”(이승철) “전라남도 고흥에서 태어났는데 먹을거리가 별로 없어서 고생을 했고… 평화시장에 들어왔다가 쓰라린 해고를 당하고…”(임현재) 대구에서 태어나 가난 속에서 전국을 전전하다 평화시장으로 들어온 전태일과 친구들은 그 시대의 ‘장삼이사’였다. 열악한 평화시장의 노동 조건 속에서 이들은 자연스레 전태일을 중심으로 뭉쳤고, 바보회와 삼동회로 ‘다른 세상’을 꿈꿨다. 하지만 11월13일 운명의 사건이 발생하고 이들의 삶도 출렁였다. 불에 타면서도 “나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고 절규하던 전태일의 마지막 외침은 남겨진 친구들의 뇌리에 깊숙이 박혀 해결해야 할 숙제로 남았다. 전태일 장례 뒤 청계피복노조 첫 위원장을 맡았던 최씨는 기록집에서 “항상 죄스러운 마음이 있다. 두번째 죽어야 될 사람이 저라고 생각하고 살아왔다”고 말하면서도 “지나고 보니 자기 몸을 던져야 이 사회를 고발한다는 게 너무 서글프다”고 지난 50년을 돌아봤다. 이승철씨 또한 죄책감에 안정적인 재단사 일을 관두고 청계노조에 참여했다. “그의 유언을 인생철학으로 삼고 있어요.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하려다가 하지 못하고 지금까지 사는 저 자신이 어떻든 부끄러워요.” 그럼에도 이들은 차비를 아껴 어린 ‘시다’들에게 풀빵을 건넸던 ‘전태일 정신’을 놓지 않고 살아왔다. 옛 청계노조 조합원들 모임 ‘청우회’ 회장인 최씨는 2015년 1억원을 전태일재단에 기탁했고, 재단은 2016년부터 ‘전태일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의복액세서리 도매업체 대표가 된 이씨도 누군가를 돕는 일에 계속 힘써왔다. “전태일이 만약 분신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살고 있었을까?” 이수호 관장의 질문에 친구들은 쉽게 답을 하지 못했다. 50년이 지났지만 노동자들에겐 여전히 현실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저는 (태일이가) 죽었으리라고 생각해요. (분신) 이후에도 세상은 지금까지 결코 전태일이가 생각하고 살 수 있는 세상은 아니었어요.”(이승철) 기록집을 낸 이수호 관장은 “전태일 50주기를 맞아 전태일과 관련된 구술기록을 체계적·종합적으로 기록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작업이었다”고 밝혔다. 기록집은 비매품으로 연구와 작품 제작 목적 등에 한해 배포될 예정이다. 문의: 전태일기념관(02-2273-0906). 장필수 기자 fe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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